[클래식]‘2005 쇤베르크상’ 수상 在獨 작곡가 진은숙 씨

  • 입력 2005년 3월 4일 18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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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발이 날리다 햇살이 비치기를 거듭하는 변덕스러운 독일의 3월 첫째 날. 옛 서 베를린의 중심가인 쿠담 대로의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작곡가 진은숙(44) 씨가 모습을 나타냈다. 코트를 벗은 그는 자그마하고 무척 말라 보였지만 눈빛은 반짝였다. 이날 그는 오스트리아 빈의 쇤베르크 센터로부터 ‘2005년 아널드 쇤베르크 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공식 통보를 받았다. 2004년 세계적 권위의 작곡상인 ‘그라베마이어상’을 수상한 데 이어 세계 최고 반열의 현대작곡가로서 위치를 재확인 받은 겹경사다.

―축하드립니다. 생존 작곡가에게 주는 최고 권위의 상으로 알고 있는데요.

“2002년 제정됐으니 역사는 짧은 상이죠. 그렇지만 도이체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쇤베르크 센터가 워낙 권위 있는 기관이고, 제가 수많은 현역 거장들을 제치고 네 번째 수상자가 된 만큼 더 없는 영예로 느낍니다.”

올해 그는 통영국제음악제 상주 작곡가로 초청돼 모처럼 고국 팬들 앞에 모습을 선보인다. 3년 만의 고국 방문이다. 17일 열리는 개막연주회에서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관현악곡 ‘칼라’를 연주하고, 18일에는 피아노 연습곡 4, 5번이, 19일에는 현악4중주곡 ‘파라메타 스트링’이 연주된다. 모두 진 씨가 작곡한 작품들이다. 그는 25일 서울 금호아트홀에서 렉처 콘서트도 갖는다. ‘말의 유희’ ‘기계적 환상곡’ 등 도이체 그라모폰(DG)사가 최근 발매한 그의 음반수록 작품들을 소개하는 무대다.

―세계적 명성의 작곡가인데, 고국 무대가 너무 홀대해 온 것 아닌가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현대음악 없이도 행복하게 살잖아요(웃음). 작품 연주와 방문 제의는 그동안 종종 있었어요. 제시하는 연주자가 제 기대에 못 미친다거나 해서 성사되지 않았던 거죠….”

최근 그가 몰두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다. 그가 ‘대중적으로 가장 성공한 작품’이라고 자평하는 ‘말의 유희’도 이 이야기에서 주요 모티브를 가져왔다. 2006년에는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LA오페라단이 초연할 예정이다. 이번 렉처 콘서트에서도 그는 이 주제의 심화와 발전에 대해 설명한다.

“앨리스는 당초 제 은사인 죄르지 리게티가 큰 관심을 갖고 있던 주제였어요. 우리는 그저 단순한 동화로만 여기지만, 이 이야기 속에서는 일상의 논리가 완전히 전복돼버리죠. 이를 음악으로 표현하는 작업이 굉장히 매혹적입니다.”

그는 현대음악이라면 무조건 ‘난해하지 않을까’ 경계하는 음악팬들을 안심시켰다. “1950, 60년대에는 작곡가 자신의 개성만을 강조해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음악이 난무했죠. 저도 초기에 그런 작품을 썼고요. 그러나 이제는 현대음악도 점차 서로간의 공통분모를 찾아 모여들고 있습니다. 제 경우 전통적인 방법과 비슷하게 화성(和聲)을 쌓아나가는 방식을 사용하죠. 물론 19세기식의 화성과는 큰 차이가 있지만….”

잘 알려진 대로 그의 동생은 미학과 정치를 넘나들며 평론가로 활동하는 진중권 씨, 언니는 음악평론가 진회숙 씨다. 자랄 때 특이한 점은 없었을까.

“어려서 싸움질한 기억밖에 없어요(웃음). 형제 중 둘씩이나 음악을 했으니 유복한 집이었을 거라고들 상상하는데,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매우 어려웠죠. 형제끼리 뭉쳐서 무슨 일을 꾸민다든가 하는 건 저희 체질에 맞지 않았어요. 중권이가 오늘 아침까지 베를린에 있다가 돌아갔는데, 그러더군요. ‘누나가 요새 유명해졌대. 하지만 서울에선 아직 진중권의 누나로 더 알려져 있을걸’ 이라고요.”

베를린=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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