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올해 최고의 영화?

  • 입력 2004년 12월 22일 17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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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200편 남짓한 국내외 영화들이 상영됐다. 한 해를 마감하면서 1년간 꼼꼼히 기록했던 메모장을 살핀다. 흥행이나 작품성을 떠나, 내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는 인상(혹은 상처)을 남긴 영화들을 부문별로 꼽아봤다.

○최악의 대사가 넘실대는 영화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를 들 수 있다. 경진(전지현)은 바람만 불라치면 죽은 애인 명우(장혁)를 생각하며 또 외친다. “지금 이 바람이 너니? 너 정말 바람이 된 거야? 명우야, 지금 이 바람이 너니? 명우야!” 이 비현실적이고 유치하고 내숭 100%인 대사가 끊임없이 반복될 때는 정녕 참기 힘들다. ‘반전(反轉) 강박증’에 걸린 공포영화 ‘령’에서 어머니가 딸(김하늘)에게 던지는 마지막 한 마디(“넌 내가 아직도 네 엄마로 보이니?”)도 가공할 상투성을 보여준다. ‘도마 안중근’에서 배신자를 처단한 안중근(유오성)이 때마침 마주친 꼬마아이에게 동전을 탁 퉁겨주며 던지는 대사(“다음 세상을 너에게 주마”)도 근래 보기 드물게 생뚱맞다.

○최고로 졸린 영화

단연, 제목부터 심상찮은 ‘영원과 하루’다. 그리스 감독 테오 앙겔로풀로스가 연출한 이 영화는 ‘불멸의 시어를 찾아 평생 헤매는 노(老)시인의 여행’이라는 홍보문구를 보는 순간부터 잠이 쏟아진다. 카메라는 거북이보다 느리게 움직인다. 노시인이 새롭게 발견한 시어라면서 ‘코폴라(작은꽃)’ ‘세니띠스(이방인)’ ‘아르가디니(너무 늦었다)’ 등 이름모를 단어들을 끝도 없이 늘어놓는 클라이맥스는 수면제의 융단폭격에 가깝다. 한국말로 진행되는 일본영화 ‘호텔 비너스’도 빼놓을 수 없다. 쿠사나기 츠요시(한국명 초난강)가 알아듣기 힘든 한국말로 “아즈도 잔드기 있어(아직 잔뜩 있어)” “버스노스 바그니에(벗은 옷은 바구니에)” 등의 몽롱한 대사를 전방위로 구사한다.

○최고로 야한 영화

멕 라이언이 파격 변신한 ‘인 더 컷’을 들 수 있다. 이 영화 속 프래니(멕 라이언)는 자위행위의 진수를 보여준다. 이 영화는 여성의 성적 욕망이 결코 논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에 더 도발적이다. 프래니와 관계를 맺는 형사 말로이의 애무는 단연코 ‘올해의 애무’다. 프래니의 발바닥과 각종 부위를 입으로 어루만지는 그의 실력은, 영화 ‘밀애’(변영주 감독)에서 여자(김윤진)의 발가락을 집중 공략했던 남자(이종원)의 내공에 필적한다. 이밖에 ‘팻 걸’은 남자의 발기된 성기가 100% 노출되지만 왠지 성기의 호연지기가 부족해 보이며, 김혜수가 파격 노출한 ‘얼굴 없는 미녀’는 야하지만 영화 자체가 졸려서 엄지손가락을 올리긴 어렵다.

○최고로 처량한 영화

이란 영화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은 ‘갈수록 태산’ ‘엎친 데 덮친 격’ ‘설상가상’ ‘점입가경’의 실체를 보여준다. 어머니가 막내를 낳다 죽고 △밀수 길에 나선 아버지는 지뢰를 밟아 죽고 △12세 꼬마 가장 아윱은 하루벌이에 나서고 △저성장증을 앓는 동생 마디는 노새 등에 대롱대롱 매달려 눈보라 속을 헤매며 △여동생은 팔려가다시피 시집가고 △보다 못해 밀수에 나선 아윱은 무장 강도의 습격을 받고 △마지막 재산인 노새는 때마침 술에 취해 일어나질 못한다. 너무 슬프다. 한국영화 ‘가족’도 범죄와의 끈을 끊지 못하는 딸을 위해 살신성인하는 아버지의 사연을 담았지만, ‘취한 말들…’에 비하면 ‘행복한’ 것에 가깝다.

○최고로 지저분한 영화

워낙 많아 하나를 꼽긴 힘들지만, ‘돈 텔 파파’가 돋보인다. 화장실에서 아기를 낳는 여고생은 물론, 갓난아기를 퀵 서비스를 통해 아빠 고등학생이 있는 교실로 배달하는 장면까지. ‘목포는 항구다’도 있다. 용변이 급해 변기에 앉으려는 순간 변기 뚜껑이 닫히면서 뚜껑 위에 실례를 하는 당혹스런 모습은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여고생 시집가기’도 빼놓을 수 없다. 수업시간에 임신한 여고생의 양수가 터지는가 하면, 여고생 평강이 남학생 칠수의 엉덩이에 발로 ‘똥침’을 놓은 뒤 발톱까지 묻은 ×을 솔로 씻어내는 장면은 눈뜨고 보기 힘들다. 더욱이 그녀가 ‘성냥팔이 소녀’ 임은경이라니!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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