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저녁 풍경…이 안

  • 입력 2004년 12월 19일 19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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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풍경…이 안

이웃집 언년이는 나와 놀다가

어김없는 저의 할매

똥구녕 타령에 돌아가고

왜 그래유 글쎄

하던 언년 어매와

이놈의 집구석

하던 언년 아배는

애옥해도 금슬 하난 알짜였는데

찢어져라 찢어져라 언년 할매는

저놈의 청지기 똥구녕에서 금이 나와, 은이 나와!

삿대를 퍼붓고

언년 할배 취한 걸음이

집에서 한 뼘 한 뼘 멀어질수록

나는 언년 할매 소리 따라

저놈의 청지기 똥구녕에서 금이 나와, 은이 나와!

저녁 굴뚝 연기를 울컥울컥 뱉어내며

청솔가지 꺽어 쇠죽 쑤던 저녁

-시집 ‘목마른 우물의 날들’(실천문학사) 중에서》

하루 종일 잘 데리구 놀다가 왜 내 속에 불을 질르냔 말이야. 니는 옥수수수염 턱밑에 붙이고 에헴, 나는 봉숭아 꽃잎 연지 붙이고 발그레, 신랑 각시 소꿉놀이할 때는 언제고? 남의 할배 똥구녕에서 금이 나오든 은이 나오든 어른 말씸을 따라하냔 말이야. 청지기 집 손녀라고 내리 보는 거야 뭐야. 지나 내나 삼시 세끼 검은 보리밥에 무장아찌, 감자알 나온 발꿈치, 쇠죽불 들이면 연기 솟는 방고래, 손톱만치 나은 것도 없으면서. 날이면 날마다 날 울려놓고 내일 또 부를 거면서. 청지기 손녀래두 마음은 알토란인 날.

반 칠 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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