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이전 위헌]국민여론 외면한 정부의 ‘일방통행’ 제동

입력 2004-10-21 18:25수정 2009-10-09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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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철 헌법재판소장(왼쪽)과 헌법재판관들이 21일 신행정수도건설에 관한 특별법 헌법소원 사건에 대한 결정을 선고하기 위해 법정으로 걸어가고 있다. -연합
▼위헌결정 의미-파장▼

헌법재판소의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위헌 결정은 ‘국민의 기본권’을 확대해석함으로써 국민이 헌법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적극적인 헌법해석을 통해 재확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헌법 130조 국민투표권 침해(다수의견)=헌재의 결정은 크게 세 가지 판단을 전제하고 있다. 첫째, 특별법이 규정한 신행정수도 이전은 일부 행정 기능을 옮겨가는 수준이 아니라 국가의 중추 기능을 이전하는 사실상의 ‘수도 이전’이다. 특별법이 이전 대상 기관을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지 않지만, 이전 범위가 국가 정치 행정의 중추기능을 담당할 수 있는 수준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도를 정하는 것은 국가정체성을 표현하는 실질적이고 핵심적인 헌법 사항이자 국가생활에 관한 국민의 근본적 결단이다.

둘째, 헌법상 ‘서울이 수도’라는 명문 조항은 없지만 서울은 1392년 조선왕조가 들어선 이후로 지금까지 수도였다. 이는 전통과 관습에 의해 모든 국민이 확고하고 자명하게 인식하는 사실로 불문(不文)의 헌법규범화 된 ‘관습헌법’이다. 서울은 또 헌법 제정 이전부터 수도로 존재해 왔으며 오랜 세월 동안 국민들의 폭넓은 합의를 얻은 것이다.

셋째, 이러한 관습헌법을 폐지하는 헌법 개정을 하려면 헌법 절차에 따라야 한다. 예를 들어 충청권의 특정 지역이 한국의 수도라는 조항을 헌법에 신설하면 서울이 수도라는 관습헌법은 폐지될 수 있다. 헌법 130조 2항은 이러한 헌법 개정안은 국회 의결 이후 30일 이내에 국민투표를 하도록 정하고 있는데 특별법은 이런 절차를 밟지 않아 국민의 기본권에 속하는 국민투표권을 침해해 위헌이다.

헌법 130조 위반에 의한 위헌이므로 72조 등 다른 쟁점에 대한 판단이 필요 없다.

▽헌법 72조 국민투표권 침해(김영일 재판관의 별개의견)=수도 이전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국가안위에 대한 중요 정책에 해당한다.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이런 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는 재량권이 있지만 재량권을 일탈 남용하는 것은 72조의 입법 목적과 정신에 위배된다. 대통령이 수도 이전 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치지 않는 것은 자의(恣意)금지 원칙과 신뢰보호 원칙에도 위반되는 위헌적인 것이다.

수도의 위치가 관습헌법에 관한 사항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설혹 다수의견과 같이 관습헌법규범이라고 보는 경우에도 이 특별법이 헌법 72조의 국민투표권을 침해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따라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130조보다는 72조에 의해 특별법의 위헌성을 확인하는 것이 타당하다.

헌재의 위헌 결정에서 가장 눈에 띄는 법리적 특징은 ‘관습헌법’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헌재는 ‘서울이 수도’라는 사실 자체가 관습헌법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사상 처음으로 관습헌법의 존재를 인정한 것이다.

또 헌재는 이처럼 법전에 문자로 표현되지 않은 불문 헌법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찾아내 인정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의 범위를 확장시켰다는 의미가 있다. 즉 헌재가 법률의 위헌 판단을 하려면 법률로 인해 청구인의 기본권이 침해돼야만 하는데 개헌시의 국민투표권이 침해됐다는 논리를 구성한 것.

현행 헌법은 헌법을 바꾸기 위해서는 반드시 국민투표를 거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은 ‘헌법제정권력자’이면서 동시에 ‘헌법개정권력자’이므로 불문헌법을 바꾸려 할 때도 국민이 결정해야 한다는 것.

헌재 결정에 따라 정부는 국민의 의사를 무시하고 정치적 목적에 따라 무리하게 수도 이전을 추진하려 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또 국민 사이에 갈등의 씨앗이 되고 있는 국가보안법 폐지와 언론개혁법 등 4대 개혁 입법 추진에도 영향이 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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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기자 sooh@donga.com

이상록기자 myzodan@donga.com

▼관습헌법이란▼

일반적으로 사회생활 속에서 관행에 의해 발생한 관습이 사회규범으로서 사회생활을 규율할 때 그것을 관습법이라고 한다.

관습법의 존재는 법 이론과 법 해석에서 일반적으로 인정된다. 성문법으로 모든 사회현상을 빠짐없이 규정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지만 혼인의 의사를 갖고 같이 사는 부부에게 인정되는 사실혼의 법적 효력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민법 제1조는 ‘민사에 관하여 법률에 규정이 없으면 관습법에 의하고 관습법이 없으면 조리에 의한다’라고 규정해 관습법도 법원(法源)임을 명백히 인정하고 있다.

나아가 상법 1조는 ‘상사(商事)에 관하여 상법에 규정이 없는 때에는 우선 상관습법에 의하고 상관습법이 없으면 민법의 규정에 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성문화된 민법보다는 관습법을 우선시한 것이다.

헌법에서도 관습헌법의 개념이 있다.

허영(許營·헌법학) 명지대 석좌교수는 ‘관습헌법’과 ‘헌법관습법’을 구분해 설명한다. 관습헌법은 영국처럼 성문(成文·문장으로 나타냈다는 의미) 헌법전이 없는 나라에서 갖고 있는 불문(不文)헌법이다.

반면 헌법관습법은 성문헌법을 채택한 나라에서 헌법에 명문화하지는 않았지만 오랜 기간에 걸쳐 헌법적 가치로 확립된 것을 가리킨다는 설명이다. 예를 들어 국기, 국가(國歌), 수도 같은 것이 이에 해당한다.

허 교수는 성문헌법을 갖고 있는 나라에서는 헌법관습법이 인정되고 있으며, 이는 성문헌법의 보충적 기능을 한다고 밝혔다. 헌법관습법은 이를 바꾸려 할 경우 헌법적 절차를 거쳐야 하며, 헌법의 하위에 있는 법률로는 변경이 불가능하다고 허 교수는 설명했다. 따라서 수도 이전을 위해서는 성문헌법처럼 헌법개정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관습헌법과 헌법관습법이라는 용어가 혼용(混用)되기도 하는데, 헌재가 사용한 ‘관습헌법’은 엄밀히 말하면 헌법관습법을 가리킨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헌법학자들은 “헌법 130조의 국민투표권 규정은 성문헌법의 개정을 전제로 한 것이지 관습헌법의 개정을 언급한 것이 아니다”는 이유로 헌재의 법리 전개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이수형기자 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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