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261>卷四. 흙먼지말아 일으키며

  • 입력 2004년 9월 19일 19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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펼침과 움츠림(14)

“관중은 진나라의 포악한 임금들과 시황제(始皇帝) 부자(父子)를 거치는 동안 곳곳에 백성들이 드나들 수 없는 땅이 생겼습니다. 진귀한 꽃과 나무를 심어놓고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동산[원]과 천자의 사냥에 쓸 날짐승과 들짐승을 기르는 숲[(유,육)]과 궁중에 쓸 과일을 딸 과수를 기르는 들[園]과 제멋대로 물고기를 잡지 못하는 못[池]이 바로 그렇습니다. 이는 원래 백성들의 것이었으니 마땅히 백성들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그와 같은 장량의 말을 한왕이 전혀 알아듣지 못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궁금한 게 있다는 듯 물었다.

“방금 전란에 시달리는 백성들에게는 보다 시급한 일이 많을 것이오. 그런데 하필이면 그리 넓지도 않은 왕실의 동산과 숲과 들과 물이겠소? 그리고 백성들에게 돌려준다 한들 논둑 밭둑도 없고 도랑도 쳐 있지 아니한 산과 들과 물을 어떻게 백성들에게 나눠준단 말이오?”

“옛적에 제선왕(齊宣王)이 맹자(孟子)에게 묻기를 ‘주(周) 문왕(文王)은 사방 70리가 되는 숲을 유((유,육))로 가져도 백성들은 오히려 그걸 좁다 여겼는데, 나는 겨우 사방 40리의 유를 가졌건만 백성들이 너무 넓다 하니 어찌된 일이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맹자가 말하기를 ‘문왕의 유는 사방 70리가 되어도, 풀 베고 나무하는 백성들이나 토끼를 쫓고 꿩을 잡는 백성들이 마음대로 드나들며 왕과 함께 쓰니 백성들은 오히려 그걸 좁다 여긴 것입니다. 그런데 대왕께서는 비록 사방 40리밖에 안 되는 유를 두셨으나, 그 안에서 사슴이나 고라니를 잡으면 사람을 죽인 것과 같이 벌한다 하니, 이는 나라 안에 사방 40리나 되는 함정을 판 것과 다름없습니다. 백성들이 어찌 그걸 넓다 여기지 않겠습니까?’라고 했다 합니다.

그런데 진나라의 군주들이 한 짓이 바로 제선왕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 동산과 숲과 들과 물을 엄한 법으로 얽어 마치 나라 안에 커다란 함정을 파놓은 듯하니, 비록 그 땅이 넓지 않아도 그 때문에 관중 백성들이 겪는 괴로움은 컸습니다. 거기다가 그 동산과 숲과 들과 못은 구태여 나누지 않고도 얼마든지 백성들에게 돌려줄 수 있습니다. 곧 엄한 진나라의 법이 금하던 바를 풀어 백성들로 하여금 함께 쓰게 하면 그게 바로 백성들에게 둘려주는 것이 됩니다.”

장량이 그렇게 차근차근 말해주었다. 듣고 난 한왕이 깊이 고개를 끄덕이다 문득 좌우를 돌아보며 큰소리로 명했다.

“이제부터 관중의 모든 원(苑) 유((유,육)) 원(園) 지(池)는 모두 원래의 임자인 백성들에게 돌려주도록 하라! 백성들은 모든 산과 들에서 꼴과 장작을 얻을 수 있고 날짐승과 들짐승을 사냥해도 좋다. 또 관중의 모든 못과 소에서 마음대로 물고기와 자라를 잡아도 된다.”

도필리(刀筆吏)들이 그와 같은 한왕의 명을 방(榜)으로 써서 사방에 붙이자 관중 백성들은 또 한번 한왕의 인정 많고 너그러움에 감격했다.

한왕은 또 하상군(河上郡)에 있는 요새와 진지들을 크게 수축하였다. 하상은 뒷날 풍익(馮翊)이라 불리게 되는 땅으로 역시 뒷날 경조(京兆)를 거쳐 장안(長安)이라 불리게 될 위남(渭南)의 왼팔 같은 곳이다. 당장 급하지도 않은 그곳의 방비를 그 어디보다 굳건히 한 것으로 미루어, 어쩌면 한왕은 그때 이미 장안을 뒷날의 도읍으로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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