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글로벌 코리아]<1>주민등록번호가 없어서…

  • 입력 2004년 7월 4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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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내 거주 외국인의 수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를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생활관련 법과 제도 관행 등은 아예 국내거주 외국인이 고려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국제화시대에 외국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보편화되는 추세이지만 우리의 경우 여전히 장벽을 치고 사는 셈이다. 본보는 주거, 취업, 출입국 등 12개의 분야에 걸쳐 이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짚어보고 도쿄 홍콩 싱가포르 등 아시아의 다른 국제도시의 경우를 현지취재를 통해 소개한다.》

카자흐스탄 국적의 부인을 둔 회사원 이남철씨(31)는 지난달 부인 이름으로 차량을 한 대 사기 위해 중고차 매매상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외국인등록번호로는 구입할 수 없다”는 말을 들어야만 했다. 이씨는 “외국인은 우리나라에 살지 말라는 것이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한국에 온 지 1년 반이 된 스페인인 A씨(38)는 “얼마 전 도시가스 신청을 했는데 외국인등록번호로는 받아주지 않았다”며 “결국 아는 한국인을 수소문해 그 주민등록번호로 대신 등록했다”고 털어놨다. 외국인들이 주민등록번호가 없어 겪어야 하는 이 같은 불편함은 생활 전반에 퍼져 있다.

91일 이상 장기 체류한 외국인에게 부여되는 외국인등록번호는 주민등록번호와 마찬가지로 생년월일을 뜻하는 앞번호 6자리 등 13자리로 구성돼 있다. 다만 성별과 출생연도에 따라 뒷자리 번호가 5∼8번으로 시작한다.

미국 국적을 갖고 10년 전 한국에 온 교포 최민석씨(41)는 얼마 전 신용카드 비밀번호를 문의하기 위해 카드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자동응답기에서 주민등록번호를 누르라는 요구를 받아 외국인등록번호를 눌러 봤지만 ‘잘못된 번호’라는 음성만 반복됐다.

최씨는 “따로 본사에 전화를 걸어 비밀번호를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며 “여기저기서 크고 작은 불편함이 쌓이다 보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다”고 짜증스럽게 말했다. 그뿐만 아니다. 극장이나 교통수단 예약 등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증권거래에 이르기까지 한국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상거래는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한다. 외국인등록번호로 해결이 가능한 것도 있지만 그런 경우도 보통 부가적인 시간과 노력이 든다.

한국으로 유학 온 미국인 마이클 허트(33)도 “카드회사의 할인행사에 참여 신청을 했지만 주민등록번호가 없어 포기했다. 한국 소비문화에서도 소외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법무부 출입국관리국 관계자는 “이번 달부터 외국인등록번호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실명확인제를 실시 중”이라며 “이 제도로 적어도 외국인들의 인터넷 이용은 상당 부분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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