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포럼]정갑영/지금은 투자가 먼저다

  • 입력 2004년 5월 30일 18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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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경제는 위기에 처해 있는가. 아니면 일시적인 침체에 불과한 것인가.

불안감이 확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통령도 임기 중 경제는 걱정 안 해도 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KBS 등 언론의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의 90% 이상이 위기라고 생각하고 있다. 재계 역시 ‘컴컴한 터널에 있는 느낌’이라며 ‘시장에 역행하는 시장개혁’에 불안해하고 있다. 경제에 대한 인식이 크게 양분되고 있는 것이다.

▼수출 호황속 내수는 침체▼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에 왜 이렇게 큰 차이가 날 수 있을까. 우선 성장과 국제수지, 물가 등 거시 지표를 보면 우리 경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성장률은 1·4분기에 5%를 넘었고 수출도 연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환율과 외환보유액, 주가지수도 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어떻게 이런 지표를 보고 ‘위기’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소비와 투자, 고용 등 부문별 지표를 보면 평가는 크게 달라진다. 설비투자는 침체를 거듭해 생산시설마저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빚이 많은 가계가 씀씀이를 줄여 소비 역시 썰렁하다. 고용 없는 성장도 체감경기를 싸늘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경제가 성장하면 고용이 늘어나야 하는데 지금은 1% 성장할 때마다 고용이 0.05%씩 감소하고 있다. 내수경기가 침체된 상황에서 일자리마저 줄고 있으니 서민의 체감경기는 외환위기 때보다 더 심각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다시 말하면 우리 경제는 지금 해외경제의 호황에 힘입어 겨우 수출로 연명해 가는 셈이다. 내수의 극심한 침체 속에 수출에만 의존하는 기형적인 성장이 문제의 본질이다. 수출도 반도체와 휴대전화 등 몇 품목에만 의존하고 있어서 경제 전반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예전과 같지 않다. 수출이 증가하면 시차를 두고 내수경기도 활성화되는데 지금처럼 수출과 내수의 양극화가 오래 지속되는 것은 새로운 현상이다.

왜 이런 양극화 현상이 오래 지속되고 있는가. 수출의 호황이 설비투자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투자는 해외로 빠져 나가고 있고, 국내 투자는 수년째 침체 상태다. 내국인도 외국인도 한국을 멀리하고 있다. 투자가 줄어드는데 어떻게 일자리가 생기고 내수부문의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예전처럼 소비나 부동산 경기를 부추길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이렇게 보면 현재의 경제난국을 타개할 핵심 고리는 투자활성화에 달려 있다. 그렇다고 애국심이나 사명감으로 투자를 강요할 수도 없다. 일시적인 세금감면이나 자금지원도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투자재원이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기업의 현금보유가 사상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지 않은가.

가장 절실한 것은 투자자의 마음을 우리 땅으로 되돌려 놓는 것이다. 한국 땅이 불안하지 않고, 귀중한 자산을 투자해도 미래가 보장되며, 안정된 노사관계와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영위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어야 한다. 일류기업을 만든 기업인이 존경받는 사회정서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정책 우선순위 재고해야▼

그러나 기업인의 관점에서 한국시장은 과연 어떤가. 자본시장 개방으로 경영권마저 위협받고 있는데, 정부는 지속적으로 기존의 소유 지배구조를 와해시키고 있다. 기업의 불안은 아랑곳하지 않고 분배와 인기의 정치가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해묵은 이념논쟁으로 사회정서는 더 왼쪽으로 줄달음치고 있다. 이런 요인이 바로 투자를 위축시키는 정책의 불확실성이 아니겠는가.

투자부진의 여파는 오늘에 그치지 않는다. 투자부진이 계속된다면, 비록 오늘은 위기가 아닐지라도 내일은 분명 터널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정책은 우선순위를 선택하는 기술이다. 투명성과 공정성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투자가 먼저다. 성장을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분배의 차원에서도 투자가 더 절실한 시점이다. 모처럼 조성된 유화적 분위기를 바탕으로 정부와 기업이 상생(相生)하는 투자 유인정책이 시급하다.

정갑영 연세대 정보대학원장·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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