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포럼]허영/개혁 독점욕을 버려야 한다

  • 입력 2004년 5월 23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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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사회 분위기도 활기를 잃고 가라앉아 있다. 주한 미군의 감축 소식이나 경기불황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17대 총선 결과 여당이 과반수 의석을 얻었고 대통령 탄핵심판도 헌법재판소의 경고성 기각 결정으로 끝이 났다. 파장이 컸던 대선자금 수사도 형평성 논란 속에 미진한 채 일단락되었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불안해하고 신명이 나지 않는 것일까. 준비 안 된 대통령의 분파정치로 1년 반을 허송세월했고 앞으로 3년 반 동안 나라를 이끌고 갈 분명한 정책 비전을 내놓지 않은 채 실체를 알 수 없는 개혁을 내세우면서 모든 일을 땜질식으로 처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체 알수 없는 개혁 국민들 불안▼

안보정책 경제정책 노동정책은 편향적이고 혼란스럽다. 사조직과 일부 시민단체에 의존하는 인기영합적인 정책추진 모습도 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집단의 힘을 앞세우는 ‘떼법’이 여전히 모든 법을 압도하는 분위기다. 대통령의 헌법 준수 의무와 법치주의 존중 의무를 강조한 헌재의 분명한 메시지에 대해서 대통령은 전혀 언급이 없다. 헌재의 지적을 마음에 담아 앞으로 솔선해서 헌법과 법률을 철저히 지키겠다고 말하는 것이 대통령으로서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일일까. 국무총리의 제청도 없이 입각 예정자가 거명되고, 통합의 정치를 말하면서도 야당이 극구 반대하는 인물을 애써 총리로 지명하겠다는 것은 대통령의 오기인가, 또 다른 헌법 무시인가.

남은 임기 동안 무엇을 어떻게 개혁할지는 모르겠으나 수술실에 들어서는 의사는 언제나 자기 몸부터 먼저 청결하게 소독하는 법이다. 개혁만을 앞세우는 여당이 국회를 장악하고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을 계승 발전시켜’ 이 땅에 ‘새로운 해방공동체’를 세우겠다는 민주노동당이 국회에 진출해서 자유민주적 가치와 법치문화 및 시장경제질서에 익숙한 우리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말들을 쏟아 내고 있는 판에 누군들 불안하지 않겠는가.

부정과 비리를 몰아내고 모든 것이 법과 원칙에 따라 투명하게 돌아가는 사회를 만드는 일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일도 합리적인 절차와 과정을 따라야 한다. 목적이 모든 것을 정당화한다는 마키아벨리즘의 유혹에 빠지는 것은 헌법과 법률을 존중하는 법치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대통령과 여당은 개혁 독점욕을 버려야 한다. 대통령과 여당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은 결코 영원한 것이 아니다. 혁명적인 변혁을 하라고 준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 헌법이 추구하는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 그리고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를 실현해서 국민이 안정 속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라고 맡긴 것이다. 정책을 추진할 때 독주하지 말고 헌법이 마련한 권력통제의 절차와 과정을 반드시 지키라고 제한된 권능을 위임했을 뿐이다. 위임받은 권력의 이러한 시간적 내용적 한계를 잊어서는 아니 된다. 야당과의 타협, 절차적인 통제를 무시하고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채 추진하는 개혁은 진정한 개혁이 아니다. 그것은 다수의 독재이고 정책적인 독선에 지나지 않는다.

▼헌법 파괴시도 단호히 물리쳐야▼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개혁은 하지 말아야 한다. 더욱이 우리 헌법의 기본이념을 손상시킬 수 있는, 다수가 공감할 수 없는 것을 추구하는 개혁은 헌법 파괴이고 사회혁명이지 개혁이 아니다. 헌법에 의해서 얻은 권력으로 헌법을 파괴하려는 세력은 헌법의 이름으로 국민이 단호하게 물리쳐야 한다.

가장 시급한 개혁과제는 집권층부터 나와 다른 생각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극단적인 아집과 독선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남의 탓으로만 돌리려는 책임전가적인 몰염치한 의식구조도 시급하게 고쳐야 한다. 대통령과 여당은 논란이 많은 언론개혁 등 무리한 제도개혁에 앞서 수도자의 심정으로 솔선해서 이러한 의식개혁부터 하는 것이 바른 순서일 것이다. 그럴 의지와 용기만 있다면 국민의 존경과 공감 속에서 나머지 개혁은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허영 명지대 초빙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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