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카페][책의향기]'산책의 숲' 저자 이순우씨

  • 입력 2004년 5월 21일 17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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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햇빛이 잠깐 머무는 다소 그늘진 숲 서편 어디쯤인가에 의외로 소복하게 무리를 이루고 있는 풀꽃이 은방울꽃이다. 깔끔한 차림새가 야생꽃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는 듯 보이지만 외딴 숲 속의 빈 터를 좋아하는 야생초다.’

풀꽃들을 세밀화로 꼼꼼히 그리고 그 풀꽃과 관련된 느낌과 사연을 담은 ‘산책의 숲:봄·여름·가을·겨울’(도솔). 이 책의 저자 이순우씨(51·사진)는 ‘저자’라는 호칭이 쑥스럽다며 단번에 얼굴이 빨개지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그냥 러시아워를 피해 조금 일찍 출근해 사무실 근처의 구룡산을 산책하며 보이는 대로 그리고 적고 했을 뿐이에요.”

2003년 초봄, 아무 설명 없이 출판사로 불쑥 배달된 원고를 보고 흥미를 느낀 편집자가 이씨를 찾아갔을 때 그가 내민 것은 작은 노트 십수권이었다. 마치 화가지망생의 습작 화집 같은 노트에는 2년여에 걸쳐 정성들여 그린 그림과 글이 담겨 있었다.

저자가 그린 쑥부쟁이 꽃.

“그림을 따로 배운 적은 없어요. 그냥 풀꽃이 좋아서 보이는 대로 색연필로 그렸는데, 부끄럽죠, 뭐.”

그는 평일 아침에는 서울 서초구 염곡동 직장(한국국제협력단) 부근의 구룡산, 주말에는 경기 의왕시에 있는 집 부근의 청계산과 관악산엘 갔다. 꽃이 좋아 꽃박람회나 식물원도 꼬박꼬박 찾아가 사람들 틈에서 그림을 그리고 메모를 했다.

“처음에는 투덜거리던 아내도 이제는 자연을 바라보는 눈이 저와 비슷해진 것 같아요. 제가 그림을 그릴 때는 양산을 받쳐주기도 하고, 때로는 함께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색칠을 도와주기도 하지요.”

5, 6년 전까지는 그도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풀꽃들을 그냥 무심히 스쳐지나갔다. 그런데 자주 숲을 찾다 보니 이제는 풀꽃 하나하나에 관심을 갖고 가까이서 바라보게 됐고, 직접 그려보면서 그들과 친구가 됐다.

“숲은 가까이 다가가 보면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정겹게 자신을 반가이 맞아주는 동무 같아요.”

그는 “이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자연을 바라보며 숨겨진 아름다움을 느꼈으면 한다”며 미소 지었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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