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민의 야한여자-당찬여자]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 입력 2004년 5월 13일 16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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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은은 생선을 뒤집어 먹지 않는다.

“생선을 뒤집으면 배가 뒤집힌다”는 옛날 어부들의 미신을 믿기 때문일까.

그녀가 이끄는 현대그룹의 계열사인 현대상선의 이미지 때문인지는 몰라도 사람들은 그녀를 배의 선장으로 비유한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시삼촌과의 경영권 분쟁, 그리고 현대라는 기업이 지니는 상징적 의미 때문에 그녀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 있다.

이제 그녀는 현대그룹의 회장이다. 고단한 시기에 현대호의 선장이 된 것이다. 승자와 패자로만 구분되는 기업 경영의 비정한 세계에서 여성 총수라는 불리한 조건을 이겨 내고 경영권을 지켜 낸 모습을 보면서 철의 여인 잔다르크에 비유해 ‘현다르크’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의 그녀는 주변에 언제나 사람들이 많다. 그녀를 보면 “덕은 외롭지 아니하니 언제나 이웃이 함께 있다”는 옛말이 떠오른다.

그녀는 삼쾌(三快)한 여인이다.

그녀는 유쾌하다. 천성적으로 밝고 긍정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그녀의 얼굴에는 동네 아줌마 같은 편안함이 있다. 멋을 내지 않은 듯 멋을 부린 그녀에겐 명품도 짝퉁 같고, 짝퉁도 명품 같다. 그렇게 자연스럽다. 영화나 라틴댄스를 좋아하고 소박하게 삶을 즐길 줄 아는 여유가 있다. 질투하는 태양빛을 닮은 라틴 아메리카 여인의 유쾌함이 있다.

그녀는 상쾌하다. 그녀는 세 명의 자녀를 둔 어머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겠지만, 여성의 가장 위대하고 훌륭한 업적은 출산이다. 그래서 그녀는 작약 꽃을 닮았다. 크고 아름다운 꽃을 느끼게 하는 섬세함이 어머니 젖가슴의 달콤한 기억만큼이나 자극적이다. 작약의 뿌리가 약초이듯이 치유의 성질을 가진 모성 본능이 일과 생활 속에 묻어 있다.

그녀는 통쾌하다. 그녀는 분노를 폭발시키는 성향을 가졌지만, 냉철하고 사려 깊은 전략가다. 열한명이 한 팀을 이루는 축구경기의 코치와 같다. 그녀는 우정과 충성심으로 사람을 붙잡아 둘 줄 안다. 기다림과 신중함이 바탕에 깔린 사람에 대해서는 전폭적으로 신뢰한다. 각각의 플레이어들을 조율하고, 게임에 매료되며, 화끈한 골의 절정을 즐길 줄 안다.

엘리자베스 1세 치하의 잉글랜드는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부흥을 함께 누리는 전성기를 맞았다. 거칠고 난폭한 시대에 왕위에 올라 평온하게 시대를 달랜 위대한 여왕 엘리자베스 1세. 모두들 스페인의 무적함대, 아르마다를 무찌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겼지만 그녀는 가슴에 꿈을 품고 결국은 이루어 냈다.

그런 엘리자베스 1세처럼 현정은도 자신의 재능을 지혜롭게 발휘했으면 한다.

남편을 묻고 돌아오며 굳게 다문 그녀의 입술을 나는 기억한다. 가슴에 무엇을 품었을까. 그녀에게는 과부의 우울한 모습이 어울리지 않는다. 내가 느끼는 현정은의 진정한 힘은 모든 여성이 지니는 모성의 힘이다.

이런 점에서 그녀는 그리스 신화의 레토 여신과 닮았다. 제우스의 사랑을 받은 여신 레토는 모진 박해와 멸시를 받으며 의지할 곳 없이 떠돌았지만 지혜와 용기로 태양신 아폴론과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를 훌륭하게 키워냈다. 그녀는 혼자 힘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여 올림푸스의 막강한 세력을 구축한 신들의 어머니가 된다.

어쩌면 이러한 해피엔딩이 현정은에겐 없을 수도 있다.

그녀는 부잣집 딸이고, 부잣집 며느리다. 그래서 돈에 대한 감각은 동물적인 본능처럼 그녀의 혈관에 흐르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직 검증되지 않은 경영인이다.

몇 달 전만 해도 그녀는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30년 가까운 세월을 튀지 말라고, 나서지 말라고 교육 받았다. 이렇게 굳어진 사고는 그녀를 타인의존형으로 만들 수도 있다. 또 그녀가 자식에게 자리를 물려주기 위해서 수렴청정 하는 늙은 어미의 모습으로 보인다면 그녀를 지지했던 모든 사람들은 그녀에게서 떠날 것이다.

그녀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 국민에게 사랑 받는 기업이 되겠다는 의지는 끝까지 지켜져야 한다.

그녀가 전업주부에서 펩시콜라의 최고 경영자로 돌아온 브랜다 바니스나 HP를 위기에서 건진 칼리 피오리나 회장 같은 훌륭한 여성 경영인이 되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세상을 꿋꿋하게 헤쳐 나가는 여성들의 희망이 되어 주었으면 한다.

보석디자이너·패션 칼럼니스트 button@ke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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