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 대담]<1>‘386의 가치’ 여전히 유효합니까?

  • 입력 2004년 5월 9일 17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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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제 귀를 막은 채 서로를 향해 고함만 질러대는 놀이에 지쳤다. 한때 ‘혼자 말하기’가 시대적 화두였다면 이제는 ‘마주보고 말하기’를 배워야 하지 않을까. 사회 문화 각 분야에서 갈등과 대립의 차가운 벽을 녹이는 뜨거운 토론의 장으로 매주 월요일 ‘쟁점 대담’을 마련한다.》

4·15총선을 거치며 명실상부한 사회주도세력으로 떠오른 386세대. 그 향후 역할을 점검하기 위해 386세대 두 사람이 만났다. 1980년대 학생운동의 경험을 옹호하며 시민운동론을 연구해 온 조대엽 교수(고려대·사회학·44), 노동운동현장에서 1980년대를 보냈지만 최근 386세대의 사상을 ‘불량품’이라고 비판한 책 ‘한 386의 사상혁명’(시대정신)을 펴낸 김대호 한국노사관계발전연구소 책임컨설턴트(41). 두 사람은 386세대의 특성에 대한 의견부터 달랐다.

● 386의 ‘자주 민주 통일’, 세계화에 적응할까

▽조대엽=386은 80년대 민주화를 진전시킨 핵심 세력이었고 대중적으로 저항의 가치를 확산시켰습니다. 1990년대부터 정치권에 들어간 몇몇 386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풀뿌리 민주주의를 키우기 위해 노력하며 노동운동단체와 시민운동단체를 만든 세대라는 것이 중요해요.

▽김대호=그런데 자주, 민주, 통일 등의 가치는 각각 외세, 반민주 세력, 반통일 세력을 전제로 하는 방어적 의미의 가치입니다. 이런 가치를 중시할 때 경쟁과 협력, 상호의존성을 중시하는 오늘날 세계화 시대에 부정적으로 대응하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조=1980년대의 가치를 지금의 386에게 그대로 대입시킬 수는 없지요. 1980년대에도 386은 저항과 적응이라는 양면적 가치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존 권위주의에 대한 강력한 저항을 체질화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스스로 적응의 가치를 만들어 세계화, 정보화 등의 거대한 구조변동에 적응할 수 있었던 거죠. 386은 컴퓨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1세대였고, 벤처기업에도 겁 없이 먼저 나섰습니다.

▽김=386은 공공적 가치를 내세우며 체제 변화를 위해 정권에 저항했을 뿐 아니라 승리의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이 승리의 경험이 위험해요. 앞선 반공세대나 산업화세대도 한국사회 발전에 기여했다는 자부심 때문에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잖아요. 386도 그럴 위험이 큽니다.

● 386과 중도실용노선

▽조=386이 과거에 가졌던 자주, 민주, 통일이란 공적 가치는 버려야 할 것이 아니라 거대한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지키며 적응시켜 나가야 할 가치입니다. 이 가치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의 보호, 공존적 세계화의 추구 등으로 나아가는 데 기여할 겁니다.

▽김=신자유주의의 핵심은 시장의 힘을 키우고 시장이 주도해 경제 사회적 결정을 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인데 386세대는 이런 신자유주의에 대해 방어적으로 사고합니다. 신자유주의가 마치 미국과 초국가적 자본의 음모에 의해 이뤄지는 것처럼 여기는 거죠.

▽조=1980년대 급진적 이념을 추구했던 이들이 이미 기업, 시민단체, 정당 등 여러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386조차도 시장의 힘을 키우는 데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건전한 시장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김=하지만 신자유주의를 현대 제국주의의 변화된 형태로 여기는 386도 있어요.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경제특구 건설, 교육에서의 소비자선택권 강화 등을 찬성하면 곧 뿌리 깊은 반제(反帝) 감정과 맞부닥치게 되는 게 현실입니다.

▽조=물론 여전히 반미 자주화 의식을 가진 386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제도영역에 등장해서 한국 사회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386은 자유무역체제를 이뤄 나가는 데 긍정적입니다. 여당에 참여했든 야당에 참여했든 중도실용노선을 내세우고 있어요. 이는 지난 총선에서 나타난 한국 사회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기도 합니다.

● 민노당 원내진출, 시대착오인가 사회적 성숙인가

▽김=이번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13%나 지지를 얻었는데 민노당 강령을 보면 멸종된 줄 알았던 공룡이 나타난 듯합니다. 1980년대 지하서클에서 보던 반미 자주화의 내용이 되살아난 듯해요. 그리고 이런 우려할 만한 시대착오성은 386과 상당한 친화성이 있어요.

▽조=민노당의 지지율이 높았던 것은 기성정치에 대한 환멸이 가져온 반작용이지 반미 입장의 정당에 날개를 달아 준 것이라고 봐서는 안 될 듯합니다. 그간 민노당이나 민주노총이 제도화된 정치세력으로 등장하지 못함으로써 한국사회가 치러 온 사회비용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이들이 제도권에 들어간 것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은 이웃과 역사를 위해 자신을 기꺼이 던질 수 있는 의식을 가진 386이야말로 한국사회를 새로운 공적 가치를 재구성해 낼 수 있다는 점에 동의했다. 그러나 조 교수는 386이 이미 사회 각 분야에서 다양한 가치를 만들어 가고 있다고 평가한 데 반해, 김씨는 386이 추구해 온 가치가 반미-반시장-반세계화로 연결되는 성향이 짙다는 점에 시종일관 우려를 표시했다.

정리=김형찬기자 khc@donga.com


1987년 6월 항쟁 당시 고 이한열 열사의 영결식. 80년대 학생시절 민주화운동을 겪으며 자주 민주 통일 등 공적 가치를 중시하게 된 386세대는 현재 각 분야에서 변화를 주도하는 세력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사상은 반시장 반세계화 성향이 짙어 폐쇄적이란 우려도 낳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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