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 대담]<2>‘노무현 리더십’ 비전 있습니까?

  • 입력 2004년 5월 16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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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정국의 긴 터널을 지나 직무에 복귀했다. 이승만, 박정희 시대를 거쳐 3김(金)시대까지 이어진 권위주의적 리더십을 극복하고 탈권위주의 시대에 걸맞은 리더십을 보여주겠다던 노 대통령의 정치적 지도력은 탄핵 사태를 겪으며 적잖은 상처를 입었다. 그렇다고 해서 다시 권위주의 시대의 리더십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 박효종 서울대 교수(57·정치학)와 이수훈 경남대 교수(50·사회학)가 만나 탈권위주의 시대의 새로운 리더십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 리더십에 대한 모순된 기대

▽박효종 교수=과거처럼 권위주의로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리더십은 분명 변해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어떻게 변하느냐 하는 것이죠. 새로운 모델을 찾아가다 보면 혼란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현 정부를 보면 리더십에 관한 비전이 없기 때문에 더 문제가 되는 것 같아요.

▽이수훈 교수=정부조직뿐 아니라 가족과 같은 사적 영역의 모든 조직들까지도 수직적 위계 구조에서 수평적 네트워크 구조로 바뀌어가는 추세에 있습니다. 과거의 권위주의적 구조나 그에 따른 리더십이 이제 효율적이지 못한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이죠. 그런데 국민들은 한편으로는 전통적인 권위주의적 대통령상이 싫다고 하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묵직한 권위가 있는 아버지 같은 대통령상을 바라는 이중적 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박=아무리 수평적 사고를 하는 평등사회를 지향한다고 해도 집단 전체의 관점에서 판단이나 결정이 필요할 때가 있어요. 대통령은 바로 이런 일에 책임지고 권위를 행사해야 할 위치에 있습니다.

● ‘힘’ 놓는 것 아니다

▽이=경쟁체제와 시장경제 확산, 의사결정 관련 규칙이나 신념체계의 변화, 제도와 조직의 혁신 등 사회전반에서 변동이 급속히 일어나고 있어요. 그 양상은 여러 가지지만 핵심은 조직의 권위 행사를 축소시켜 간다는 거예요. “노 대통령이 권위를 실추시켰다”고들 말하지만 크게 보면 노 대통령의 리더십은 권위의 축소라는 변화의 흐름을 수용하려는 의도적 노력의 결과로 봐야 합니다.

▽박=강력한 권위는 그냥 없어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대체되거나 축소돼야 하는 것이지요. 다수결만으로 해결이 어려울 때 지도자의 권위가 필요합니다. 위계주의적 권위를 받아들일 필요는 없지만 ‘조정’의 역할을 하는 리더십은 필요하다는 거죠.

▽이=조정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정보원, 경찰 등과 같은 전통적 권력 행사의 수단을 놓아버렸기 때문에 예전과 다른 혼란, 고통, 비용이 생겨난 겁니다. 현 정부의 기조는 대통령의 권력을 많이 축소시키면서 분권, 분산 등을 강력히 추진하는 거예요. 부족한 점이 있지만 한 패러다임에서 다른 패러다임으로 넘어가는 과정상의 혼란은 불가피합니다.

▽박=정말 권력을 가진 사람이 권력을 축소하겠다는 의지를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군요. 정치가는 모든 역량을 동원해 자신이 바라는 방향으로 가고 싶어 하지 않나요. 현 정부 들어서 ‘분권’이라는 용어를 많이 쓰지만, 노 대통령의 리더십은 전체사회의 흐름을 바꿔보자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정말로 권위를 축소하는 프로그램을 갖고 있는지 의문이에요.

▽이=정치인의 권력욕을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권력’이란 말에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에 ‘힘’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어요. 노 대통령의 리더십이 힘을 놓아버린 것은 아닙니다. 힘은 추구합니다. 그런데 그 힘은 국민들을 설득하고 동의를 구하는 과정에서 정당성을 얻고, 정책을 추진한 성과로 다시 추동력을 확보합니다.

● 포용력 가진 열린 리더십 보여줘야

▽박=토론을 한다는 것은 넓은 포용력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 노 대통령의 리더십에는 자신을 비판하거나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설득하는 노력이 약합니다. ‘왜 내가 잘 해보려 하는데 자꾸 딴죽을 거느냐’는 식이죠. ‘열린 리더십’이 결실을 얻기 위해서는 실제로 모든 분야에서 넓게 열려 있다는 점을 많은 사람들이 느낄 수 있도록 해야겠지요.

▽이=저는 그게 현 정부가 너무 약체였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약체인데 의욕은 넘치고, 뭔가 해보려 하는데 발목 잡는 것 같고, 그러다 보니 서운한 감도 표출되고…. 이런 과정이 탄핵까지 간 듯합니다. 하지만 지난 총선을 통해 집권당이 다수당이 됐고 이제 탄핵도 기각됐으니 좀 더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겁니다. 다행히 2006년 6월 지방선거까지는 큰 선거도 없으니 여유 있는 리더십으로 수평적 네트워크를 잘 조정해 나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요.

▽박=탄핵 경험은 장기적으로 보면 반면교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승자도 패자도 없습니다. 대한민국 전체가 승리하느냐, 아니면 패배하느냐 하는 게 현실입니다. 시급한 일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죠. 유연하고 포용력 있는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 교수는 현 정부가 지방분권화뿐 아니라 중앙정부 내에서도 분권화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며 노 대통령의 리더십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박 교수는 현 정부가 탈권위주의 시대에 걸 맞은 리더십을 주장만 할 것이 아니라 이를 실현할 구체적 프로그램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 결정을 보며 노 대통령이 예전보다 더 여유 있고 포용력 있는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는 데는 의견이 일치했다.

정리=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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