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 대담]<3>초대형 ‘외국 뮤지컬’ 藥일까? 毒일까?

  • 입력 2004년 5월 23일 18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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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초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되는 미국 브로드웨이팀의 뮤지컬 `캬바레`. 내년까지 100억원대 `블록버스터급`해외뮤지컬 공연이 잇따라 선보이지만 만약 흥행에 실패할 경우 시장 자체가 얼어붙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7월 초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되는 미국 브로드웨이팀의 뮤지컬 `캬바레`. 내년까지 100억원대 `블록버스터급`해외뮤지컬 공연이 잇따라 선보이지만 만약 흥행에 실패할 경우 시장 자체가 얼어붙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국내 뮤지컬 시장이 폭발적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002년 ‘오페라의 유령’이 관객 24만명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는 ‘맘마미아’가 20만명의 관객을 불러 모았다. 올 하반기에는 ‘브로드웨이 42번가’ ‘미녀와 야수’ ‘카바레’가 무대에 오르며 내년에도 ‘아이다’ ‘프로듀서들’ ‘사운드 오브 뮤직’ 등 대형 외국 뮤지컬 공연들이 잇따를 예정이다. 반면 창작뮤지컬은 관객과 기업투자로부터 외면당하고 있어 대조적이다.

‘오페라의 유령’에 이어 ‘미녀와 야수’ ‘프로듀서들’의 라이선스 수입공연을 준비 중인 설도윤 설앤컴퍼니 대표(45)와 ‘난타’에 이어 창작뮤지컬 ‘달고나’를 제작 중인 송승환 PMC프로덕션 대표(47)가 외국 뮤지컬들의 잇단 수입에 대해 논쟁을 벌였다.

● 뮤지컬 시장의 명(明)과 암(暗)

▽설도윤=현재 국내 뮤지컬시장은 본격적인 산업화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연간 200억원 규모에 불과하던 뮤지컬시장은 2002년 ‘오페라의 유령’ 공연으로 500억원대 규모로 성장했죠. 2005년 말경 1000억 원대 규모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되면 뮤지컬산업의 경제유발 효과는 4000억∼5000억 원대에 이를 전망입니다.

▽송승환=수입 뮤지컬이 국내 뮤지컬시장의 파이를 엄청나게 키운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시장 불균형과 편향이 문제지요. 블록버스터 형 외국뮤지컬이 대형극장에서 몇 개월씩 장기 공연되는 바람에 창작뮤지컬은 극장 대관조차 힘든 실정이에요. 흥행이 보장된 외국작품에는 수백억원대의 투자금이 몰리는 반면 국산 창작뮤지컬은 수천만원도 구하기 어려운 형편입니다.

▽설=저도 창작 뮤지컬을 제작해봤지만 한계를 느꼈어요. 국내 뮤지컬시장을 키우기 위해선 뭔가 자극이 필요했습니다. 자본에 의한 충격요법이었어요. 한국 영화도 할리우드 영화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충무로에 들어온 대기업 자본이 역할을 하면서 경쟁력의 기반을 마련한 것 아닙니까? 공연계도 그런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봅니다.

▽송=‘맘마미아’가 100억원을 투자해 6개월 만에 30억원을 벌었다고 하니까 기업들이 난리예요. 10여개의 기업들이 대형 외국뮤지컬들을 수입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습니다. 마치 80년대 후반 ‘다이하드’ 등 외국영화가 대박이 터지면서 수입업자와 직배사가 득세하고, 한국 영화들은 극장잡기도 힘들었던 시기와 비슷하지요. 당시 영화업자들은 한국 영화 제작보다는 외화수입에만 열을 올렸지요. 칸 필름마켓에서 한국 사람들끼리 싸우다가 200만달러짜리 영화를 500만달러에 사는 과당경쟁이 벌어지기도 했어요.

▽설=현재 수입뮤지컬 시장에도 과당경쟁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해외로 빠져나가는 로열티(매출액의 12∼18%)도 점차 올라가고 있어요. 계약조건이 나빠지면 결국 피해는 소비자들이 봅니다. 8만원 받아도 될 티켓 가격이 12만원 넘게 올라가고 있지요. 곧 출범할 ‘한국 공연프로듀서 협회’에서 과당경쟁 지양방안을 논의할 예정입니다.

● 창작뮤지컬에 대한 정책 지원 필요

▽송=한국은 아시아에서 창작뮤지컬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거의 유일한 나라입니다. 일본의 경우 극단 ‘시키(四季)’가 외국뮤지컬 수입공연으로 돈을 많이 벌었지만, 우리의 ‘명성황후’나 ‘난타’ 같은 제대로 된 창작뮤지컬은 만들지 못했죠. 창작뮤지컬 지원을 위해 한국 영화의 ‘스크린쿼터’ 제도처럼 ‘스테이지 쿼터’같은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어요. 서울 예술의 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 국립극장처럼 정부가 운영하거나 지원하는 대형 극장은 창작극에 대해 연간 대관비율을 일정하게 지켜주도록 보장해 주자는 거죠.

▽설=뮤지컬 전용극장도 필요해요. 인구 1200만명의 서울에서 뮤지컬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공연장은 세종문화회관, 서울 예술의 전당, 국립극장, LG아트센터 등 4개 밖에 없어요. 서울 강북이나 경기도로 문화시설을 분산하는 것도 좋지만,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처럼 수요가 있고 극장이 자생할 수 있는 지역에 집중해주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또 창작의 핵심인 작가와 작곡가 양성을 위한 체계적 시스템도 갖춰야지요.

● 창작뮤지컬, 세계로 눈을 돌려야

▽송=창작뮤지컬을 해야 하는 이유는 문화예술적 측면뿐 아니라 비즈니스적 면에서도 있습니다. 97년 호암아트홀에서 ‘난타’를 처음 공연할 때 제작비로 1억원이 들었어요. 이후 7년간 ‘난타’가 올린 매출액은 총 400억원이고, 2007년까지 1000억원의 매출액을 올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난타’에서 느낀 점은 외국뮤지컬 수입보다 좋은 창작뮤지컬을 만들어 해외시장에 내다파는 것이 훨씬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설=공감합니다. 그러나 이제 ‘창작뮤지컬’의 개념도 조금 바뀌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어요. 나도 2년간 창작뮤지컬을 준비해오고 있습니다. 다만 그 무대가 뉴욕의 브로드웨이일 뿐이죠. 작가와 배우, 작곡가 등 모든 스태프들은 외국인이지만, 내가 전액 투자해 기획한 작품이기 때문에 로열티는 100% 우리가 받습니다. 작품이 완성되면 (오프)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하고, 그 작품의 해외 투어공연을 통해 거꾸로 국내로 들여올 계획입니다.

설 대표는 질 높은 외국뮤지컬 공연이 국내 뮤지컬 인력 풀을 풍부하게 만들어 국내 뮤지컬산업을 끌어올렸다고 평가했다. 반면 송 대표는 막 태동을 시작한 한국적 창작뮤지컬의 싹을 키우기 위해 영화처럼 ‘스테이지 쿼터제’ 같은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두 사람은 이제 창작뮤지컬산업도 국내시장을 겨냥하기보다 아시아 및 세계 시장을 상대해야 한다는 데는 의견을 같이했다.

정리=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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