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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시대 가로지르기]<10·끝>이병천 교수

입력 2004-04-25 18:30업데이트 2009-10-10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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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천 교수는 “교육혁신을 통해 인간능력의 ‘자발적 에너지’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이끌어 낼 수 있어야 창의를 기반으로 한 성장체제로 이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주일기자
《서민과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민주노동당이 17대 국회에 진출함으로써 1960년대이래 한국의 경제정책 기조인 ‘성장 제일주의’를 ‘분배와 참여’로 바꾸어야 한다는 요구가 더욱 거세지게 됐다. ‘성장’과 ‘분배’는 경제정책 수립의 기본축이지만, 이를 동시에 만족시키기 쉽지 않은 과제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과학계의 진보적 지식인의 한 사람인 이병천 강원대 교수(경제학·52)는 “발전 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해 충분히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善循環)’을 달성할 수 있다”며 ‘동반 성장과 균형 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안한다.》

● 공장 입구서 멈춘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이 교수는 최근 총선 결과를 보면서 “시대가 정말로 바뀌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한국사회에서 가장 낙후됐다고 비판받아 온 정치 분야조차 시대 변화를 받아들이게 됐다는 것. 하지만 이 교수가 보기에 경제 분야에는 여전히 변화를 가로막는 높은 장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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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이후 한국 민주주의는 공장의 입구에 멈춰 서 있습니다. 정치적 민주화가 사회경제 분야로까지 파급되기 어려운 단층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거죠.”

그는 국내의 소수 기득권 계층과 국제금융자본의 이익을 위해 국민 대중의 희생을 강요하는 성장 제일주의가 여전히 정당화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1980년대 중반까지 한국 경제는 개발독재시스템으로 움직였어요. 그런 경제시스템을 발전적으로 전환시켜야 할 시점을 놓친 채 1987년부터 97년까지 약 10년간 허송세월을 보냈지요. 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신자유주의 모델로 구조조정을 하긴 했지만 지금 그 결과 ‘빨간 신호등’이 켜졌습니다.”

이 교수가 지적하는 ‘빨간 신호등’이란 경기 침체 속에서 확연히 드러나고 있는 대내적 불균형과 불평등, 대외적 종속과 국민경제 불안정의 경향이다.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이 문제들은 기본적으로 1997년 이후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빚어낸 것이란 지적이다. 이 교수는 더 이상 이 개혁방향을 지속해서는 안 되며 성장과 분배, 성장과 참여, 성장과 고용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동반 성장, 혁신 주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 인간의 자발적 에너지가 성장 동력

이 교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방향을 우선 노동에 대한 획기적 발상전환에서 찾는다.

“노동을 결코 비용 관념으로만 봐서는 안 됩니다. 노동자를 인간으로 보고 대우하면서, 이 노동하는 인간능력의 ‘자발적 에너지’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이끌어 낼 수 있도록 해야 하지요.”

이 교수는 특히 노동자에 대한 ‘교육혁신’을 강조한다.

교육혁신을 통해 인간능력의 계발을 이뤄야 노동과 자본의 양적 투입방식을 넘어 ‘창의를 기반으로 한 성장체제’로 이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전환을 위해 “이제 희생의 교대가 필요하며, 경제적 기득권 계층이 일대 양보를 해야 할 때”라고 주장한다. 그동안은 성장 제일주의와 그 성장의 부산물인 ‘국물’에 대한 강조로 대중을 동원해 왔지만, 이제는 자본가와 노동자가 동반 성장하는 노사평화체제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 4일 일하고 4일 쉬는 유한킴벌리 모델

그는 이런 성공 사례로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안정성을 결합시켜 성장체제로 이행한 유럽의 네덜란드 핀란드 덴마크 스웨덴 등 4개국에 주목한다.

이들 국가에서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인정하되 노동자가 휴직 상태에 들어가면 복지제도를 통해 거의 정규직과 같은 수준의 생활을 보장해 준다.

이에 비하면 “미국의 신경제는 20 대 80의 양극분열 체제이고, 금융 거품이 극심한 시장독재-저(低)복지 시스템”이라고 이 교수는 지적한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국내 유한킴벌리의 ‘4조 2교대 근무제’도 이 교수가 꼽는 좋은 모델이다. 4일 일하고 4일 쉬는 이 방식은 일자리 창출과 생산성 증가를 동시에 달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기업모델로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러나 이 교수는 무엇보다도 “이 모델이 작동할 수 있는 조건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미 합작기업인 유한킴벌리는 비(非)상장기업이기 때문에 단기이익 창출 압박에 그다지 시달리지 않고 장기적 관점의 투자를 가능케 하는 이른바 ‘인내(忍耐) 자본’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중요 조건 중 하나로 “금융의 민족화와 사회성 및 공공성 확보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강소국 덴마크 성공비결

“노동시장 다양하게, 복지체제 관대하게”

많은 사람들이 유럽 경제실적 둔화의 주범으로 과다한 복지비용과 노동시장 경직성을 지적한다. 나아가 미국식 신경제를 그 대안으로 내세우며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적극 추진했던 아일랜드를 유럽의 성공모델로 내세우곤 한다. 그러나 최근 아일랜드에 투자했던 다국적기업들이 하나 둘 떠나고 내부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아일랜드도 바람직한 사례가 아니라는 평가가 내려지고 있다.

이병천 교수는 “유럽 경기침체의 보다 중요한 요인은 과다한 복지비용이 아니라 미래의 성장 동력에 대한 저투자와 그로 인한 저생산성”이라고 지적한다.

이 교수는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4개 강대국의 경기침체와는 대조적으로 지속적인 경제성장, 고용확대, 복지제도 확충, 노동시간 유연화, 유급 자유시간 증대 등 다방면에서 청신호를 나타내고 있는 4개 강소국 즉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네덜란드에 주목한다. 이 교수는 이들 강소국의 성공비결로 사적·공적 비용의 절감, 복지체제와 노동시장의 구조개선, 미래의 성장동력에 대한 투자를 든다. 이 중 가장 중요한 조건은 바로 연구, 교육, 정보기술 등 인간에 대한 투자라는 것.

이 교수는 이 중에서도 가장 성공적 사례를 보이고 있는 덴마크의 장점을 다음과 같이 열거한다.

첫째, 유연한 노동시장과 관대한 복지체제에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이 결합돼 노동시장 개혁에서 유연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달성하고 있다.

둘째, 노동시간 시스템의 유연성을 획기적으로 증대해 노동자들이 ‘노동하는 인간’을 넘어 다중적인 생활을 하며 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셋째, 광범위한 중소기업과 국내 시장의 확대를 기반으로 국민경제의 내적 발전을 이루고 있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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