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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시대 가로지르기]<9>박길성교수의 한국사회 재구조화論

입력 2004-04-18 19:30업데이트 2009-10-10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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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길성 교수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진보-보수 대결구도는 전근대적 권위주의 질서가 해체된 공간에서 양자 중 어느 쪽이 먼저 합리적 권위를 생간해내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미옥기자
《4·15 총선 결과는 2002년 대통령 선거 이후 첨예해진 진보-보수 대결과 세대갈등을 더욱 뚜렷이 드러냈다. 진보세력의 약진과 보수 세력의 선전(善戰)으로 요약되는 총선결과는 사실상의 양당체 구도라는 정치적 안정과 전방위적 갈등전선의 고착화라는 두 얼굴을 동시에 보여준다. 또 전쟁 체험 세대에서 전후세대로의 세대교체 양상은 역사의 연속성과 단절성 간의 불협화음을 예고하고 있다.》

세계화와 정보화 등 한국사회를 둘러싼 거시적 변화를 연구해온 박길성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47)는 이러한 변화양상을 서구적인 진보-보수의 이분법적 갈등구조로서가 아니라 ‘한국사회의 재구조화(再構造化)’라는 측면에서 독해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 권위구조의 패러다임 변화

“한국 사회는 종래의 군사주의 또는 일방적 권위주의 질서를 빠르게 해체하면서 이를 대체할 합리적 권위구조를 새로 모색하고 있습니다. 권위의 패러다임적 전환이라 할 이런 시기는 짧게는 지난 대선 이후, 길게는 1993년 YS 정부 출범 이후의 10여 년 간이라 할 수 있어요. 이는 매우 힘든 과정이지요.”

권위구조의 패러다임적 변화라는 관점에서 탄핵정국은 의회의 대통령 권위에 대한 도전인 동시에 시민사회가 지닌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해석될 수 있다. 전자가 대의민주주의에서 의회가 가진 절차상의 권리였다면 후자의 도전은 의회가 져야할 의무를 묵살한 것이었다. 탄핵이 국민적 반발을 산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설명이다.

박 교수는 세계화, 정보화, 민주화의 흐름 속에 한국사회를 지탱해온 기존 권위주의가 무너진 상황에서 386세대와 이에 연합한 N세대(Net generation·1970년대 후반 이후 태어난 세대로 컴퓨터와 인터넷에 친숙하며 쌍방향 의사소통에 능통)가 담론의 주도권을 장악했다고 보았다. 그 과정에서 보수는 기존 권위의 모든 것을 대변하는 세력이 돼버렸고, 진보는 거기에 맞설 수 있는 진지(陣地)로 받아들여졌다는 것.

“따라서 한국사회의 보수-진보 갈등양상은 유럽식 좌우 또는 이념대결의 개념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보수적 틀 안에서 좀더 개혁적인가 아닌가로 나뉘는 미국식 보수-진보의 개념에 더욱 가깝습니다. 열린우리당이 진보냐 하는 논쟁과 상관없이 한국의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간 보수 진보의 양당 구도가 한동안 계속될 것입니다.”

결국 현재의 양당 구도에서 어느 쪽이 먼저 ‘합리적 권위’의 모델 창출에 성공하느냐에 따라 민심(民心) 이동이 불가피해질 것이라고 박 교수는 설명했다.

“한나라당은 ‘합리적 보수’를 표방하고 열린우리당은 ‘개혁적 진보’를 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권위구조의 패러다임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한나라당은 당의 정책 정도가 아니라 자기 정체성 자체를 변화시키는 ‘개혁적 보수’로, 열린우리당은 게임의 룰을 지키는 ‘합리적 진보’로 거듭나야 합니다.”

● 정부 기업 시민단체의 관계도 재구조화 돼야

그는 새로운 정치는 이데올로기적 덫에 기생하는 보수의 ‘색깔론’과 도덕지상주의의 함정에 빠진 진보의 ‘도덕론’을 극복하는 양태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보수세력은 ‘개혁의 피로’ 운운하거나 ‘여전히 우리가 한국사회의 중심’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한국사회의 재구조화 과정에서 자신들이 과연 어떤 지점에 있어야 하느냐를 고민해야 합니다. 반대로 진보세력의 경우 자신들의 얄팍한 도덕적 우월성에 도취해 제도권의 ‘게임의 룰’을 존중하지 않는 섣부른 정치를 펼 경우 현재의 불안한 우위를 놓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현실정치권에서 보수-진보의 성찰적 양당구조가 필요하듯 그 하부구조에선 정부와 기업, 시민사회간의 성찰적 정립(鼎立)구조도 형성돼야 한다고 말한다.

“정부의 지나친 국가개입주의, 기업의 과도한 시장근본주의, 시민단체의 일방적 시민사회화는 우리 사회가 극복해야 할 과제지요. 이를 위해 정부, 기업, 시민단체간의 건전한 긴장과 협력관계가 재설정돼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개발독재시절 같은 배를 탔던 국가와 기업이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이나, 전통적으로 갈등관계였던 정부와 시민단체가 한 목소리를 내는 현상은 과도기적 상황이라는 해석이다. 그는 특히 시민단체의 변화가능성에 주목했다.

“시민 없는 시민운동의 문제점은 이번 낙천 낙선운동 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났어요. 시민운동에 자기성찰이 없다면 다음 선거에서 낙천 낙선운동은 철저히 외면 받게 될 겁니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逆세대화

박길성 교수는 최근 몇 년간 두드러진 세대갈등이 기존의 세대갈등과 전혀 다른 차원이란 점에서 ‘역(逆) 세대화’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정보화 이전에는 기성세대가 정치 경제 문화 전 영역에서 모든 자원을 생산, 유통, 소비하는 주체였어요. 젊은 세대는 겨우 소비에만 참여할 수 있었죠. 그러나 정보화를 통해 젊은 세대가 소비는 물론 생산과 유통의 주체로 떠올랐습니다.”

과거에는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사회적 자원에 대한 주도권을 갖게 됐지만 정보화 이후에는 나이가 어릴수록 자원에 더 접근하기 쉽고 주도권도 더 틀어쥘 수 있다는 점에서 ‘역(逆)세대화’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 박 교수의 설명.

현재의 세대갈등이 생물학적 연령차나 역사적 경험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자원을 둘러싼 갈등이라는 점에서 좀더 정치적 행태를 띨 수밖에 없으며, 기성세대의 박탈감도 더 심각하다고 박 교수는 분석한다.

그는 그러나 세대논쟁이 정치적 혹은 상업적 기획물로 이용되면서 무책임하게 확대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세대논쟁에서 명확히 실체로 존재하는 것은 386세대뿐이죠. 어떤 세대든 나이가 들면서 의식이나 가치관이 변화하기 마련인데 386세대는 이런 일반적인 ‘연령효과’와 동떨어진 정치사회적 의식을 보여줍니다. 이런 현상에 다른 세대까지 모두 끌어들여 설명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요.”

그는 한국의 N세대가 세계의 다른 모든 젊은 세대와 비슷하게 탈 정치적 ‘골방의 세대’라고 말한다. 그러나 월드컵과 촛불시위란 매우 특수한 경험을 통해 ‘거리의 세대’인 386세대와 만나면서 온 오프라인이 결합한 엄청난 동원력을 보이게 된다고 설명한다.

N세대의 진보성은 그만큼 유보적이고 제한적이다. N세대가 한국의 진보와 보수 중 어느 쪽의 주축이 될지는 순전히 지금의 보수-진보세력이 어떤 성과를 보여주느냐에 달렸다는 것이 박 교수의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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