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저우완야오/대만의 민주주의 진통

  • 입력 2004년 4월 4일 18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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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월초부터 도쿄에 있으며 3월 20일 투표하러 대만에 가지 않았습니다. 대만과 한국은 모두 민주화를 위한 과정에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로 가는 우리의 길이 참으로 위태롭습니다.

내가 모은 정보와 대만 사회에 대한 나의 이해에 의하면 투표 전날의 저격은 대만 사회의 문제가 또 다시 드러난 사건의 하나입니다. 외부 사람들에겐 의심스러워 보일지 모르나, 나는 여기에 정치적 음모가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불법 도박게임에서 선거 결과에 크게 판돈을 건 누군가가 저지른 짓일 수도 있습니다. 도박은 대만에서 커다란 사회문제이고 범죄조직도 관련돼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대만은 여러 분야에서 전문성이 결여돼 있습니다. 경찰은 제대로 훈련되지 않았습니다. 엽기적인 살인사건이 몇 건 일어났지만 수년간 수사하고선 “아무 단서를 찾지 못했다”는 결과를 내놓습니다. 나는 우리 경찰 조직을 극히 불신합니다. 천수이볜 피격사건에서 용의자를 체포하지 못한 것은 놀랄 일이 아닙니다.

나는 극도의 혼란을 느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난 10여년 동안 우리 대만은 사회적 에너지와 자원을 온통 정치적 이슈에 소비해 사회가 표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효표 논란은 재검표 결과를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보도에 의하면 무효표의 판정 기준이 이번 선거에서는 과거보다 한층 엄격해졌다고 합니다. 이에 따르면 의도적인 조작의 혐의는 적으나, 한편으론 정부가 새로운 기준을 투표자들에게 제대로 홍보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국민을 교육하고 그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는 아무도 관심이 없습니다. 모두의 관심은 오로지 정치, 정치, 정치일 뿐입니다.

저격사건이 천 총통의 표몰이를 도왔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그 사건은 참으로 ‘뜻밖의 횡재’였습니다. 그러나 개표에 조작이 없고 저격사건이 미리 짠 일이 아니라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투표 결과를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투표가 전부는 아닙니다. 민주주의는 양식과 이성적 태도와 품위를 필요로 합니다.

천 총통이 대만과 민진당의 이상적인 지도자라고 말하기는 어려운데 대만의 독립파 인사들이 지도력에서 대안을 갖지 못하는 게 유감입니다. 롄잔(連戰)도 무엇을 하려는 심산인지 모르겠습니다. 한때 롄잔은 재검표에 관한 천 총통의 제안을 거부하며 재선거를 요구하기도 했다는데, 정말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이제 대만 정국이 내전으로 줄달음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그러면 사회는 붕괴되고 맙니다. 나는 10년 전 미국에서 귀국한 뒤 줄곧 우리 사회의 무질서와 부패부정에 괴로웠습니다. 그러면서도 한 개인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답답할 따름입니다.

저우완야오 대만 중앙연구원 교수·역사학

이 글은 총통선거 이후 혼미를 거듭하는 대만 정국과 우리의 탄핵 정국에 관해 하세봉 부산대 교수가 저우완야오 교수와 주고받은 사신 가운데 ‘대만 지식인의 고뇌’를 잘 보여주는 대목으로, 저우 교수의 양해를 얻어 소개한다. 저우 교수의 저서 ‘대만, 아름다운 섬 슬픈 역사’는 지난해 국내에 번역 소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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