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철칼럼]누가 혁명 부추기는가

  • 입력 2004년 3월 17일 19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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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서 벌어진 탄핵 반대 시위에서 참가자들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를 ‘의회 쿠데타’라고 비난하고, ‘한국 민주주의는 죽었다’고 외친다. ‘민주주의를 살리자’는 구호도 어우러진다. 졸지에 대통령의 권한행사를 정지시켜 막강한 무장을 일거에 해제한 탄핵소추는 가히 ‘대통령 죽이기’라 할 만하다. 지금 핵심은 탄핵의 진원이 무엇인가이다. 한나라 민주 자민련 의원들이 찬성 투표를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대의기관으로서 그들은 반노(反盧) 세력을 대변한 것이고, 궁극적으로 탄핵의 뿌리는 ‘국론분열’에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국론분열이 탄핵 뿌리 ▼

한마디로 ‘양분된 국론’이 끝내 대통령을 주저앉힌 것 아닌가. 거사 주동 세력이 야당만이라면 탄핵안 가결 후 서슬이 퍼런 분위기 때문에 국론분열 혼란상은 지금처럼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서울 여의도 거리에서 벌어졌던 격렬한 찬반 시위와 인터넷 사이트가 다운될 정도로 폭주하고 있는 찬반 세력의 상호 욕설과 비난은 무엇을 뜻하는가. 반대만이 아니라 찬성세력도 엄존한다는 뜻이다. 이제 국론분열은 ‘대통령 죽이기’에서 끝나지 않고 나라를 두 동강낼 기세다. 정말로 우리가 걱정해야 할 대목은 여기에 있다. 지금 같은 섬뜩한 분위기라면 친노(親盧)와 반노로 갈리면서 국론분열은 고착되고 만다. 고작 이런 것 하자고 우리가 오늘,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노 정권이 들어선 후 끊임없이 지적돼 온 것이 ‘편 가르기’에 따른 국론분열이다. 대통령은 탄핵 전날 회견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대통령 당선의 ‘원죄론’이다. ‘예상을 뒤엎고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 나의 잘못’이라고 했다. 또 자신을 외로운 ‘돛단배’에 비유했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이는 한마디로 반대세력으로부터 ‘핍박받는 어려운 처지’에 있다고 호소하면서 지지세력의 결속을 촉구하는 감성적 메시지 아닌가. 총선 결과를 재신임과 연계하겠다는 회견 요지와도 맞닿는다. 결국 대통령 스스로 친노, 반노를 갈랐고, 국론분열의 진앙(震央)엔 대통령이 있지 않은가. 특히 탄핵 표결 전 대통령의 오산(誤算), 오판(誤判), 오심(誤審)이 거듭되면서 국론은 걷잡을 수 없이 갈라졌다. 탄핵 발의에 대해선 반대 여론이 찬성보다 두 배 이상 많았지만, ‘대통령 사과 반대’보다 더 많은 ‘대통령 사과’ 여론을 오산했고, 그 결과가 탄핵 아닌가. 지지세력의 결집을 위해 총선에 재신임을 걸었지만 오히려 야권의 결속을 재촉했다는 점에서 오판이다. 선관위 결정이 ‘공무원 중립 위반’임이 분명한데도 ‘경미한 위반’이니 하는 췌언(贅言)으로 심판한 것은 오심이다. 여기서 국론은 더욱 찢겼고, 그 부메랑으로 대통령은 심각한 정치적 상처를 입은 것이다.

이미 ‘코드 인사’와 ‘친북 반미’ 좌경화 논란 등을 둘러싸고 누적돼 온 국론분열이다. 사정이 이럴진대, 분열을 치유하려는 노력은 과연 있었는가. 여러 사람이 상생정치를 주문했지만 애당초 주문할 일이 아니었다. 상생은 반대 세력인 상대방을 타협의 대상으로 인정하고 경쟁자로 대할 때 가능하다. 그렇지 않고 타도해야 할 적으로 생각한다면 기대할 것도 없다. 통합까지야 못 가더라도 치유노력조차 없었고, 오히려 대중정치의 무대에 올라 ‘편 가르기’로 반대 세력을 내쳤다. ‘시민혁명’을 외친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전국적으로 벌어진 촛불시위는 이미 혁명적 분위기를 느끼게 하지 않는가. 이러고는 국론이 모아질 리 없다. 결국 사회주류를 바꿔 버리겠다는 핵심 세력의 결의가 그만큼 확고하다는 증좌 아닌가.

▼두 동강 나는 한국사회 ▼

이제 한국사회의 시급한 문제는 동강 난 국론이다. 열린우리당은 탄핵 반대 여론을 앞세워 정국을 장악할 기세다. ‘이제 끝까지 가자’는 외곽 세력의 격렬한 외침 속에서 총선 승리와 ‘노무현 살리기’의 등식을 설정한 것 같다. 그것은 바로 ‘야당 죽이기’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죽이기와 살리기의 악순환 속에서 사회가 동강 나는 총선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지금 총선과 탄핵이 뒤엉키면서 가뜩이나 사회적 불안의 그림자는 짙다. 누가 혁명을 부추기는가. 자유민주주의 깃발을 내리겠다는 건가. 최규철 논설주간 ki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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