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익칼럼]역사에서 지혜를

  • 입력 2004년 3월 3일 19시 25분


코멘트
오래 전에 본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앞뒤 맥락은 가물가물하지만 아라비아 지역의 한 족장이 로렌스에게 ‘젊은이는 용기, 노인은 지혜’라고 했던 말 한마디는 지금껏 기억하고 있다. 아마 용기 없는 젊은 시절의 번민에 짓눌려 빨리 지혜로운 노인이 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떻든 인간사의 한 모습을 진솔하게 드러낸 듯한 그 구절은 젊은이들의 무모할 정도로 열정적인 행동을 볼 때도 떠올랐고, 지난 시절의 정치적 사회적 폐쇄성을 깨뜨린 것이 바로 그 만용처럼 보인 젊은 행동들 덕분이란 판단이 설 때도 역시 생각났다. 고통스러웠던 질곡을 벗겨 우리 현대사를 새로이 열어 간 것이 젊은이들의 이 용기였을 것이다.

▼지식의 ‘세대간 전수’ 단절 ▼

그런데 젊은 세대의 용기는 두드러지도록 눈앞에 보이는데 노인들의 지혜는 왜 보이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새 학년을 맞아 새 얼굴을 맞이하는 이제 새삼스레 드는 의문이었다. 우리 지식사회의 진보적 사유와 운동은 제도권 학교나 기성사회에서 가르쳐 주어서가 아니라 1980년대의 대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하고 토론하며 일구어낸 것이고, 첨단의 과학기술과 벤처기업들도 젊은 세대가 선배들에게서 벗어나 스스로 습득하고 개발하며 안팎으로 뛰어다니며 키워 온 것이다.

이 거대한 변화에 대해 노인세대는 교육이나 지식을 전수하는 데 무능했고 때로는 오히려 구차한 억압 세력이 되기까지 했다. 현실을 주도하는 힘이 너무 약했기에 그들에게 줄 지혜도 그만큼 낡고 무력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오늘의 구세대가 내일을 향한 신세대에게 미칠 영향력은 앞으로 더욱 줄어들 것이다. 컴퓨터와 인터넷, 정보공학과 생명공학, 그래서 열려 가는 디지털 문명 체계와 세계화의 구조 속에서 전날의 지식인들이 가르칠 수 있는 교육적 자료는 별로 없고 인식과 사유의 급격한 변화는 구세대의 지혜가 이미 시효를 상실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줄 뿐이다. 오히려 젊은 세대에게 늙은 세대가 배워야 할, 그래서 역전된 교육 과정을 치러야 할 사태가 오고 있는 참이다.

지식의 세대적 전수가 단절되고 전통의 문화가 소외되며 노인들의 지혜가 무력해지는 이제 그렇다면 젊은 세대는 어디서 삶을 살아가는 법과 미래에의 지혜를 배울 수 있을까.

빌 에모트의 ‘20:21 비전’(형선호 역)은 그것을 ‘역사’에서 얻어내기를 권고하고 있다. 이 책의 목차는 맨 앞이 ‘에필로그’이고 맨 끝이 ‘프롤로그’로 짜여져 있다. ‘이코노미스트’ 편집장인 저자는 20세기 역사의 교훈을 21세기의 비전으로 삼아 주기를, 그러니까 앞 세기의 ‘후기’에서 얻어낸 지혜를 새로운 세기의 ‘머리말’로 삼아 주기를 바란 것이다. 비록 전래의 아날로그 문화 대신 디지털 문명이 발전됨으로써 구세대의 지혜가 무의미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 지난 세대가 이룩한 역사는 여전히, 그리고 엄연히 지식의 보고이며 지혜의 원천이 될 수 있음을 그는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세대 여전히 지혜의 원천 ▼

자본주의 체제를 거부한 카를 마르크스도 ‘역사에서 배우라’고 충고했지만, 에모트도 “더 멀리 뒤를 볼수록 더 멀리 앞을 볼 수 있다”는 윈스턴 처칠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시대가 변하고 인식과 사유가 달라지며, 그래서 지난 것과 오는 것 사이가 단절로 보인다 하더라도 역사는 그 모든 것을 싸안아 새로운 세대에게 왜 변화해야 하고 그 변화의 질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관한 통찰을 제공한다.

미국 역사학자 스티븐 앰브로스는 “과거는 지식의 원천이고 미래는 희망의 원천이다. 과거에 대한 사랑은 미래에 대한 믿음을 품고 있다”고 썼다. 각 방면으로 물갈이가 제창되고 있어 나의 세대는 이제 현실적 효력을 상실하고 있지만, 그 세대가 만든 역사가 미래를 위한 지혜로 여전히 제시될 수 있다는 것은 다행이자 위로이다.

김병익 문학평론가·인하대 초빙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