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뿌리읽기]<16>흑(黑)과 당(黨)

  • 입력 2004년 2월 12일 18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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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黑)과 당(黨)

한국사회에서 정치에 대한 불신이 극도에 달한지 오래다. 黨에 대한 불신도 커 선거 때만 되면 새로운 黨이 탄생하고 黨의 이름이 바뀌기도 한다.

黨은 黑이 의미부이고 尙이 소리부인데, 이를 ‘설문해자’에서는 신선하지 못하다, 즉 썩었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 정의가 아닌,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무리 짓고 편 가르는 행위는 예나 지금이나 경계해야 할 행위로 인식되었던 것 같다. 그 경계를 실천하여 黨을 축제의 장인 ‘파티(party)’로 만들어낼 날이 그립다.

금문(왼쪽 그림)에 의하면 黑은 이마에 文身(문신)한 사람을 그려 놓았다. 따라서 黑은 죄인에게 가해지는 형벌의 하나인 墨刑(묵형)으로부터 검다는 의미가 생겨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고, 이로부터 다시 ‘어둡다’, ‘혼탁하다’, ‘사악하다’, ‘불법’ 등의 의미가 파생되었다.

黑에서 파생된 黔은 黑이 의미부이고 今(이제 금)이 소리부로 검다는 뜻이다. 黔首(검수)는 ‘검은 머리’가 직접적인 의미지만 주로 백성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黔首가 백성을 뜻한 것은 단순히 머리의 색깔이 검어서가 아니라, 묵형을 받았던 최 하층민을 지칭한데서 의미가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백성을 뜻하는 民이 갑골문(오른쪽 그림)에서 한쪽 눈이 자해된 모습을 그리고 있어, 형벌을 받았거나 전쟁의 포로가 된 노예를 지칭하는 최 하층민으로부터 점차 백성이라는 뜻으로 변화해 온 것과도 그 궤를 같이 한다.

黑에 出(나갈 출)이 더해진 黜은 ‘색깔이 검게 변하여 못쓰게 되다’는 뜻이었으나, 이후 폐기하다, 제거하다, 내몰다는 뜻까지 생겼다. 그러자 出은 의미부의 역할도 함께 하게 되었다. ‘썩은 무리들’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게 된 黨에서 보듯, 黑은 단순히 검은색이 아니라 시간이 갈수록 더럽고 부정적인 것을 지칭하는 뜻까지 가지게 되었다. 黑心(흑심)은 나쁜 마음을 말한다.

현대 중국어에서 암시장(black market)을 ‘헤이스(黑市)’라고 하고 범죄 집단을 ‘헤이서후이(黑社會)’라 하더니, 급기야 컴퓨터를 마구 파괴하는 해커(hacker)를 ‘헤이커(黑客)’라 하기에 이르렀다. 黑客은 아편쟁이를 지칭한 역사를 갖고 있기도 하다.

하영삼 경성대 교수 ysh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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