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구기자의 현장체험]경력 공채 면접관이 되다

  • 입력 2003년 11월 13일 16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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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시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면접관들. 사진 왼쪽부터 김기덕 인사팀장, 본보 이진구 기자, 이금룡 대표, 변준석 전무

응시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면접관들. 사진 왼쪽부터 김기덕 인사팀장, 본보 이진구 기자, 이금룡 대표, 변준석 전무

《신입사원보다 경력자를 선호하게 된 지도 오래. 경력자 면접은 신입과는 확연히 다르지만 대체로 신입사원 공채 면접을 생각하고 응시하는 경우가 많다. 경력자 면접은 학력이나 영어실력 등을 떠나 ‘얼마만큼 전문가인가’가 관건이 된다. 이미 일을 통해 검증된 사람들이기 때문. 국내 전자 지불 결제대행 업체 중 1위를 달리는 ㈜이니시스(대표이사 이금룡·52)의 도움을 받아 이 회사 경력 공채 면접에 직접 면접관으로 참여했다. 이 대표는 삼성물산 인터넷 사업부 이사를 거쳐 온라인 경매회사인 ‘옥션’의 대표이사를 지낸 닷컴 1세대 벤처인. 3일 동안 진행된 면접에는 서류전형을 거쳐 모두 20명이 응시했다.》

●바로 너다!

응시자가 면접을 마치고 나면 면접관들끼리 이런저런 말을 나눈다. 총 응시자 중 면접이 끝나자마자 “이런 사람은 구하기 힘들어”라는 말이 나온 사람은 단 한명뿐.

그가 면접관의 눈에 확 들게 된 순간은?

▽면접관=대학 전공이 문과분야인데 왜 UI(user interface·사용자가 컴퓨터를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환경을 설계하는 것)분야를 지원했나요? UI의 정확한 개념이 무엇이죠?

▽응시자=학창 시절 모회사에서 인턴사원으로 일하면서 처음 경험했습니다. 이 분야가 모든 온라인 부문의 성공에 밀접하게 관련돼있지만 아직은 미개척 분야라는 것도 알게 됐죠.

개인적인 관심이 있어 따로 공부를 했고 이후 다른 직장에서 관련 업무를 했지만 업무상 성격이 달라 한계가 있었습니다. 저는 귀사에서 추진하는 인터넷 쇼핑몰 분야에서 UI의 성공사례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는 이어 해당 분야의 비전과 중요성, 현재 직장의 한계와 그 이유, 응시회사의 사이트 화면의 장단점을 거론하며 대안을 제시했다.)

응시자가 나간 뒤 면접관끼리의 잡담.

“경력자의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전문성과 일에 대한 의욕이죠. 질문은 여러 가지로 할 수 있고요. 예를 들면 ‘당신의 강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라든지 ‘우리 사이트 많이 봤느냐’고 묻기도 하고….”

“강점이 ‘인간성이다’는 식으로 대답하면 꽝입니다. 경력자는 지금까지 해 온 일에서 얻은 강점을 말해야죠. 어떤 프로젝트에서 자신이 맡은 일을 설명할 때 전문성은 드러나게 돼있거든요.”

“의욕은 현재 일의 아쉬운 점과 자기 나름대로의 대안을 제시할 때 엿볼 수 있습니다. 의욕이 없는 사람은 뭘 어떻게 해보겠다는 말이 구체적이지 않거든요.”

채용박람회에 몰린 수많은 구직자들. 취업난을 실감할 수 있다.동아일보 자료사진

●뭘 했는지 모르겠는데….

미국 경영학석사(MBA)를 수료한 한 응시자는 면접이 끝나자마자 전원 일치로 불합격이 결정됐다.

그는 뭐라고 했을까?

▽면접관=지금까지 해 온 업무와 지원 동기를 설명하세요.

▽응시자=대학에서 ○○을 전공했고 미국 ○○회사에서 일을 배웠습니다. 재무, 기업 매수 합병 분야와 관련된 컨설팅을 한 바 있고 귀국해서는 자금 유치 쪽에서 주로 일했죠. 지원 동기는 사장님에 대한 명성을 많이 들었고 이곳에서 신규 추천하는 분야의 일을 해보고 싶어서 지원했습니다.(대답 중간 중간에 유학 생활과 근무 이력을 섞음)

▽면접관=귀국한 이유가 뭐죠.

▽응시자=졸업도 했고, 취업도 해야 하고, 한국에 오고도 싶었고…. 공부를 마치고 국내 기업에 연결이 돼 들어왔습니다.

면접 후 이 응시자에 대한 평가는 “그동안 직장에서 뭘 했는지 모르겠다”가 대부분.

이 대표의 코멘트는 이렇다.

“복사만 했으면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아요. 담당한 일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해줘야죠. 경력을 말하라고 하면 근무 부서만 나열하는 사람도 적지 않죠. 한 일이 별로 없다는 말이죠. 전공이 뭐고, 무슨 부서에서 일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프로젝트에 참여했다면 구체적인 참여분야와 활동, 더불어 해당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 실패했다면 그 이유와 나름대로의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0점처리 왜?

한 면접관은 응시자들에게 항상 “낙성대 쪽에는 자주 오나?”라고 물었다(회사가 서울 관악구 낙성대역 근처에 있다). 응시자들은 “왜 그런 질문을 할까”하며 적잖이 당황하는 표정이었다.

이 면접관은 면접이 끝난 후 “처음부터 딱딱한 질문을 하면 어렵잖아요. 일종의 아이스 브레이크죠”라고 설명했다.

경력자의 경우 대부분 현재 근무하는 직장에 관한 질문이 빠지지 않았다.

“지금 일하는 회사가 왜 그렇게 됐나? 좋은 회사였는데…”, “○○사장 지금 어떻게 됐지?”같은 물음이다.

여기에도 숨은 의도가?

이 대표는 “내가 궁금하니까. 면접을 통해서 다른 회사의 상황을 정확하게 알 수도 있잖아요. 어떤 사업이 실패했다면 피상적으로 외부에서 들은 것보다 더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고요”라고 말했다.

꼭 그뿐만은 아니다. 자신이 근무하는 곳이 처한 상황을 정확히 안다는 건 어느 정도 일을 꿰뚫고 있다는 능력을 입증한다는 것. 사람을 뽑는 과정에서 자사에 도움이 되는 정보도 얻어내는 다목적용 질문이다.

인터넷 쇼핑몰 사업을 하고 있는 이 회사의 경우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차이점이 뭐라고 생각하는가”란 질문도 단골손님.

이 질문은 상당히 중요하다. 문화, 사회학적인 일반론으로 “세상이 온라인 중심으로 변하고 있고…어쩌고저쩌고”식으로 대답을 했다가는 0점.

변준석 전무는 이렇게 설명했다.

“인터넷 쇼핑몰이 우후죽순으로 생기고 있어서 나름대로 한계에 부닥치고 있죠. 어떻게 하면 매출을 극대화할까, 대면 서비스가 어려운 인터넷의 속성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가 당면한 문제입니다. 이 한계를 뛰어넘을 방법이나 그 문제에 대해 고민한 바 있는지 들어보려고 했죠.”

●예쁘면 유리하다?

일반적인 취업에 관한 말들이 있다. ‘예쁜 여자가 유리하다’ ‘명문대를 선호한다’ ‘국내파보다 해외파가 낫다’ 등등….

획일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이 회사 면접의 경우 이런 선입견은 여지없이 깨졌다. 물론 경력자 공채이다 보니 일에 대한 검증만으로 워낙 확연하게 구별이 갈 수 있었던 것이 큰 요인.

미모가 뛰어났던 한 여성 응시자는 면접은 잘 치렀지만 분야가 맞지 않아 안타깝게 탈락했다. 면접관들은 “수백명씩 뽑는 대기업 신입 공채도 아니고, 인물이 뭔 소용인가? 우리 회사가 모델 회사도 아닌데…”라고 입을 모았다.

명문대 선호는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는 선택. 하지만 또 서류전형을 통과한 20명은 단 한명을 제외하고 모두 비명문대 및 지방대 출신이었다.

“이미 일해본 사람들인데 학교는 의미 없잖아요. 비명문대를 나와도 일에서 성과를 낸 사람이 최우선이죠.” 중소기업의 특성상 한 사람 한 사람이 회사의 운명과 직결되는데 어찌 얼굴이나 학벌만 보고 뽑을 수 있겠느냐는 이 대표의 말.

적어도 이 말이 진실하다는 것을 3차례의 회사 방문을 통해 검증할 수 있었다.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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