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피플]정절이란…배용준-이미숙 '스캔들' 키워드 대담

  • 입력 2003년 9월 29일 17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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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절녀를 무너뜨리기 위한 요부와 바람둥이의 ‘내기’를 다룬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이 영화에서 바람둥이 조원 역의 배용준(왼쪽)과 요부 조씨부인 역의 이미숙(위)은 정절녀 숙부인 역의 전도연(오른쪽)을 무너뜨리기 위한 유혹과 복수의 게임을 펼친다. 사진제공 영화사 봄
정절녀를 무너뜨리기 위한 요부와 바람둥이의 ‘내기’를 다룬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이 영화에서 바람둥이 조원 역의 배용준(왼쪽)과 요부 조씨부인 역의 이미숙(위)은 정절녀 숙부인 역의 전도연(오른쪽)을 무너뜨리기 위한 유혹과 복수의 게임을 펼친다. 사진제공 영화사 봄
《조선시대 사대부 정실부인이 바람둥이 선비와 짜고 9년간 수절한 정절녀(숙부인·전도연)를 무너뜨리는 ‘위험한 거래’를 한다. 선비는 진정한 사랑을 깨달으면서 ‘게임의 법칙’을 위반하고, 질투심에 불탄 정실부인은 그를 파멸의 길로 몰아세운다.

프랑스 소설 ‘위험한 관계’를 조선시대로 옮겨놓은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감독 이재용, 10월2일 개봉)는 정복, 정절, 질투, 처녀막에 관한 새로운 해석과 질문을 던지면서 성애(性愛)에 관한 고정관념을 부순다. 이 영화의 핵심은 남녀관계의 본질을 들쑤시는 감칠맛 나는 대사에 있다. 조씨부인 역을 맡아 질투와 사랑이 끈적하게 엉킨 ‘거미여인’의 눈빛을 보여준 이미숙, 바람둥이 선비 조원 역으로 영화에 첫 출연해 바람기와 사랑이 동거하는 이율배반적 눈빛을 보여준 배용준이 만났다. 영화 속에서 부각된 성(性) 담론적 대사들을 중심으로 그들은 서로 다른 생각을 털어놨다. 18세 이상 관람 가.》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정절:“(숙부인의) 27년간 굳게 닫혀있던 그 문을 열겠다?”(조씨부인)

이미숙=처녀막을 지키고 그걸 확인하고 또 확인시키는 것만이 정절일까. 숙부인은 정절을 지키려는 마음 하나로 살지만, 조씨부인은 시대가 강요하는 정절에 도전하는 시대적 아픔을 안았다. 숙부인은 수절가지만, 조원의 공세에 무너지고 난 뒤 되레 그에게 매달린다. 그러나 조씨부인은 정을 통했다고 마음까지 주진 않는다. 누가 진정 정절을 지킨 걸까.

배용준=조선시대에 얼마나 열녀가 귀했으면 ‘열녀문’을 만들었겠나. 하지만 숙부인은 한번 마음이 열리면 다 열리는 그런 여성이다. 반면 조씨부인은 유교사회에서 일탈하는 것으로 자기만족을 삼는다.

:행복:“저는 (수절하는)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다니까요”(숙부인)

배=자기 스스로 ‘이건 행복이다’라고 생각했겠지만, 자신을 가로막았던 것들이 열리면서…. 영화에서 조원은 숙부인의 ‘코드’(천주교 집회에서 헌신하는 봉사정신)를 빨리 찾아내 집회에 참석하고 헌납하면서 그녀의 문을 열었다.

이=본능의 측면에서 보자면, 그게 뭐 그리 행복할까. 여자는 남자를 정말 좋아하면 ‘문’을 열게 돼 있다. 사랑이 아니면 동정심에서라도…. 하지만 숙부인이 봉사활동에 전념하는 것처럼 성에 대한 욕구를 발산시키는 방법은 예나 지금이나 같지 않을까. 얼마 전 나는 십자수(十字繡)에 빠졌었다. 한번 시작하니 아무 생각이 안 나더군. 밤새. 열심히 .

:마음 몸 결혼:“마음은 권인호에게 있고, 몸은 조원에게 가 있으면서, 시집은 유대감에게 온다?”(조씨부인)

이=사회가 허락한다면 가장 이상적인 삶이 아닐까. (웃음)

배=결혼 전엔 많은 여자들을 사귈 수 있지만 결혼하면 한 여자를 사랑해야 한다는 게 내 인생관이다.

:질투:“누이는 오직 갖고자 하는 마음과 가질 수 없는 것을 부수고자 하는 마음, 두 가지 밖엔 없는 사람 같아.”(조원)

이=남자를 독차지하고픈 여자의 마음은 같다. 하지만 난 갖지 못하면 ‘부수기’보단 포기하겠다. 배우로서 내가 ‘불륜’하고 남자만 보면 다가갈 것 같은 이미지로 생각되지 않는가. (웃음) 그러나 난 ‘상대가 나를 여자로 생각할까?’ 하고 아주 잠깐 생각할 뿐이다. 아마 극중 연기로 그런 스트레스를 푸는 것 같다.

배=남녀가 다 똑같다. 질투심을 자극해야 더 적극적이 된다. 나는 내 안에 없는 건 절대 표현할 수 없다고 믿는다. 조원의 바람기도 마찬가지 아닐까.

:정복:“처녀막을 부순 흔적보다 더 훌륭한 정복의 증거가 아니겠소.”(조씨부인) “여자는 남자에게 매달리기 시작하는 순간 끝장이니라.”(조원)

이=남자는 ‘방목’해야 한다. 여자가 ‘나한테서만 얻어내라’고 남자에게 요구하는 건 무리라고 본다. 남자는 여자가 자신만 바라보고 살기를 원하면서도 정작 여자가 매달리면 마음이 떠난다. 예나 지금이나 남녀간 사랑은 똑같다. 캐냄, 승복, 작전, 음모, 당하는 여자, 즐기는 여자, 그리고 행하는 남자.

배=진정한 정복은 마음을 뺏는 것. 난 정복하기 싫다. 정복당하고 싶다. 내가 골프를 좋아하는 건 하면 할수록 ‘정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복하고 확실히 제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매력은 떨어질 것이다. 남녀관계도 같다.

:통(通): “정녕 통(通)했느냐, 통하고 버렸더냐?”(윤중원-숙부인의 시동생)

배=조씨부인이 조원에게 배신감을 느끼는 건 숙부인과 몸을 ‘통’해서가 아니라 마음을 ‘통’했기 때문 아닐까. 요즘 세대로선 충분히 가능한 생각 아닐까. 나 같아도 (사랑하는 여인이 다른 상대에게) 마음을 통하는 건 몸을 통하는 것보다 더 싫을 것 같다.

이=내게 숙부인과 같은 정숙함이 있는지, 아니면 조씨부인과 같은 면이 있는지, 스스로 되돌아보게 된다. 숱하게 옳고 그름을 말하지만, 결국 답을 낼 수 없는 게 성(性) 아닐까. 그게 이 영화의 메시지인 것도 같고….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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