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칼럼]제환정/‘북한 춤’ 못살린 北女응원단

  • 입력 2003년 9월 4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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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환정
얼마 전 막을 내린 대구 유니버시아드의 최고 ‘인기스타’는 북한 여성 응원단이었다. 필자는 무용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자연스럽게 그들이 선보인 율동과 움직임에 눈길이 많이 갔다. 아름다운 여성들이 보여주는 일사불란하고 정확한 동작은 감탄스러웠다. 하지만 그건 예술적 감흥이라기보다 ‘신기한 볼거리’에 가까웠다. 작년 부산 아시아경기 때의 ‘미녀응원단’도 마찬가지였다. 응원뿐 아니라 북한의 각종 문화행사에서 공연되는 춤들은 한결같이 과장되고 일률적이며 틀에 얽매인 스타일이어서 부자연스럽고 세련되지 못하게 느껴진다.

북한은 춤의 개발과 연구에 열심이라고 한다. 춤의 움직임을 기록하는 무보(舞譜)를 독자적으로 개발했으며, 월북한 전설적인 무용가 최승희와 그 제자들의 영향 아래 상당한 기교적 발전을 이룩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북한 춤은 최승희 춤의 여성적 매력만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오늘날의 북한 춤은 한국 춤은 물론 발레와 현대무용 등 서양 춤에도 열린 사고를 갖고 있던 최승희의 진보성과도 거리가 멀어졌다.

북한 춤의 부자연스러움은 단순히 의상이나 무대장치의 낙후성보다 소재와 내용의 빈곤에서 찾을 수 있다. 춤의 내용과 의미가 주체사상에만 고정돼 있다 보니 형식적 측면, 즉 기교만 어지럽게 발달한 것이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무용수들의 테크닉이 아무리 현란해도 소재의 풍부함이나 표현의 세련미가 없다면 우스꽝스러워 보일 뿐이다.

춤 역시 ‘인간의 삶’을 표현하는 예술의 하나인지라, 그 사회의 정치 사회 문화적 토양이 고스란히 드러날 수밖에 없다.

오랫동안 춤은 그 사회의 시대정신을 담지 못했다는 이유로 철학자들에게는 하급예술로 치부됐다. 그러나 동시에 춤은 그 시각적 효과와 감성적 전이성(轉移性)으로 인해 정치적 종교적 목적을 띤 선전물로 즐겨 이용되기도 했다. 춤에 대한 이런 비판들은 진지함이 결여된 채 과장된 율동만 나열하는 듯한 북한 춤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인형 같은 율동이 아니라 북한 사람들의 삶과 생각이 담긴 ‘살아 있는 춤’을 보고 싶다.

제환정 무용평론가·‘불멸의 춤 불멸의 사랑’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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