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칼럼]주정순/편법 봉사활동 아이에게 상처만

  • 입력 2003년 9월 1일 18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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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순
중학교 1학년인 아들이 여름방학 동안 채워야 할 봉사활동 시간은 6시간이었다. 필자 자신이 평소 봉사활동을 하고 있던 터라 이틀 정도 내가 일하는 곳에서 시간을 채우자고 아이에게 제안했다. 하지만 아이는 친구와 알아서 할 것이니 신경 쓰지 말라는 것이었다. 아이의 생각이 대견해 그렇게 해보라며 잊고 있었다.

방학이 끝나갈 즈음 아이에게 봉사활동을 했느냐고 물었더니 친구와 함께 쓰레기통을 비우는 등 3시간 동안 일하고 확인도장을 받았다고 했다. 며칠 뒤 비 오는 날 아이들은 나머지 3시간을 채우기 위해 여러 곳을 찾아다녔지만 대부분 거절당했다며 울상이 되어 돌아왔다. 답답해하던 아이들이 친구들에게 어떻게 했는지 알아보니 부모님이 아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확인서에 도장만 받았고 “왜 그런 걸 하러 다니느냐”며 오히려 이상한 아이들 취급을 하더라는 게 아닌가.

아이는 내가 아는 곳에서 도장을 받아다주길 원했다. 나는 봉사활동의 근본 취지가 그런 게 아니라고 설명하고 일할 곳을 더 찾아보라고 했다. 아이는 “다른 엄마들은 아무 말 없이 해주는데 왜 엄마는 그러느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순수한 마음으로 봉사활동을 하려 했던 아이는 며칠동안 여기저기서 문전박대당하고 편법이 통하는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모습을 보며 마음의 상처만 입고 말았다. 당사자인 학생이 찾아가면 거부하고 잘 아는 어른이 찾아가 확인을 요구하면 하지도 않은 일을 한 것처럼 꾸며주는 세태를 자기 눈으로 확인한 아이 앞에서 필자는 부끄러웠다. 구체적인 대안이나 시스템도 없이 봉사활동이 생활화된 선진국을 무조건 따라한 정책은 아니었는지 씁쓸하기도 했다.

어찌됐건 엄마의 말을 이해하고 거절당했던 곳에 다시 찾아가 3시간을 채우고 돌아온 아이에게 “너는 무슨 일이든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있다”고 칭찬해주었다. 그러나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 처음 해본 봉사활동을 통해 이웃을 돕는 아름다운 마음과 보람을 느꼈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진정한 봉사의 의미를 고취시키려면 학생들이 모두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실제 봉사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서 함께 할 수 있었으면 한다.

주정순 경남 거제시 능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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