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일과꿈]박상순/논픽션文學의 매력

  • 입력 2003년 8월 6일 18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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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의 붉은 깃발, 초라해 보이는 병사들을 가득 태우고 전선으로 기어가던 가늘고도 긴 기차, 전선 쪽으로 한참 올라가면 나타나는 전쟁에 찌든 잿빛 소도시.’ 올해로 탄생 100년을 맞은 작가 조지 오웰의 다큐멘터리 ‘카탈로니아 찬가’의 한 구절이다. 1936년 영국인 오웰은 스페인에서 의용군에 입대한다. 헤밍웨이, 말로 등 행동하는 세계의 지식인들을 불러 모았던 스페인 내전. ‘카탈로니아 찬가’는 바로 그때의 바르셀로나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다. 전선에 나섰던 오웰의 체험은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넘는 작품이 되었다.

▼냉정과 절제의 미덕 ▼

이런 생생한 기록은 물론 자연 다큐멘터리나 평전 등 다양한 방면으로 전개될 수 있는 논픽션은 독특한 매력을 가진 분야로 우리가 새로이 주목할 만한 영역이다. 특히 사회발전과 생활환경의 변화로 나타난 일상의 새로운 사실들은 참신한 분석을 요구한다.

외국의 출판물 중엔 오랜 기간을 통해 제작된 방대한 규모의 자연 다큐멘터리와 흥미진진한 역사물, 서점을 가득 채운 인물평전, 사회나 경제 분야의 다양한 탐색을 제안하는 즐거운 읽을거리 등이 많다. 유명 출판저작상을 빛내는 수상작들이 논픽션인 경우도 많다.

우리에게도 스페인 내전과 같은 비극, 정치적 혼란, 경제적 갈등이 많았다.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역동적인 몸짓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격정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사실과 진실을 바라보는 냉정과 온유와 절제의 미덕이 더 절실하게 느껴진다. 이런 미덕은 다소 격정적인 형식인 픽션을 보완하는 다큐멘터리나 논픽션에서 두드러진다. 타자(他者)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도 논증에 치우치지는 않는 아취(雅趣)가 있기 때문이다. 한두 해 전 나는 1961년에 나온 초판본 논픽션 책 한 권을 뉴욕 헌책방에서 꺼내 품에 안았다. 그날 뉴욕의 밤거리는 나를 향해 그 헌책의 주제가를 트럼펫으로 불어주는 듯했고, 거리의 불빛은 바로 그 책을 영화화한 필름을 다시 돌려주는 듯했다. 문학적 감동과 학술적 객관성을 함께 지닌 묵직한 분량의 ‘산체스네 아이들’이었다. 이제 낡은 과거의 책이 되어 그 책을 다시 읽지는 않겠지만, 그날 나는 새로 품에 안게 될 우리의 새 책들을 소망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좋은 논픽션 책들이 출간되었지만 다시 학술의 깊이와 문학의 감동을 함께 담아낼 논픽션 장르에 생기를 불어넣고 바른 뜻을 부여하는 일이 필요했다. 그것은 1억원 고료 ‘올해의 논픽션상’을 제정해 공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음사는 최근 그 첫 수상작들을 발표했다.

청년에서 노년까지, 학생과 주부에서 학자들까지 다양한 연령과 계층의 성원과 지지가 투고로 나타났다. 두 달이 걸린 심사는 원고 매수의 묵직함을 대변해 주었다. 여기에는 고민도 있었다. 붓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흘러가는 빗나간 에세이와 개인의 세속적인 성공을 다룬 수기가 그동안 논픽션을 지배했다. 학술은 논문의 형식에 제한받고, 정서는 감정이 되어 떠돌고, 이성은 의도적인 설득에 몰려 있었다.

▼변화의 시대를 보는 새로운 눈 ▼

독립운동가의 아들로 태어나 중국영화 100년의 역사에서 유일한 영화 황제로 불린 김염의 일대기 ‘상하이 올드 데이스’를 집필한 50대 주부가 대상의 영광을 안았다. 8년에 걸친 해외 취재로 건강이 극도로 악화된 탓에 쓰러질 때를 대비해 돗자리를 들고 상하이 등 국내외 현장을 답사한 끝에 완성했다는 휴먼 다큐멘터리다. 게르만 신화, 바그너 음악, 히틀러의 몰락을 탁월하게 연결한 작품 또한 수작이었다.

거친 일상에 지친 몸들이 휴가지에서 다시 소란한 풍경 속에 놓여 있을 이 여름. 격앙의 시대를 넘어 앞으로 우리 사회가 가져야 할 넉넉한 삶을 예시하는 논픽션 작품들에 사회의 격려를 부탁드린다.

▼약력 ▼

△1961년 생 △서울대 미술대 회화과 졸업(1985) △현대시 동인상 수상(1996) △계간 ‘세계의 문학’ 주간(1998∼ ) △‘춘아 춘아 옥단춘아 네 아버지 어디 갔니’ 등 다수의 출판물을 기획

박상순 민음사 주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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