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포럼]이강숙/부분을 전체로 착각 말라

  • 입력 2003년 6월 29일 18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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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난아기의 눈앞에 어머니 얼굴이 있다. 그 아이 눈에 조만간 세계도 비칠 것이다. 엄마 얼굴은 아기의 마음 밖에 있다. 어머니의 목소리라든가 아기의 방 역시 마음 밖에 있다. 아기는 태어나서 어머니의 얼굴을 익히는데, 그 익힘은 외(外)의 것을 내(內)의 것으로 만드는 일이니까 내화(內化)의 일종이다. 아이는 자라면서 이 세상에 있는 자연과 인간, 그리고 인간이 만든 제도 등 많은 것을 하나하나 내화한다. 내화한 후 그것을 마음에 저장한다.

▼자기가 아는것만 고집…갈등 생겨 ▼

언어도 그렇다. 한국어라는 언어 역시 마음 밖에 존재하는 것인데 갓난아기가 한국어를 익힌다는 말은 외를 내화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라면서 말을 한다. 이 ‘말한다’는 것은 내화된 것을 외화하는 것이 된다. 예술가의 작품활동도 예술가의 마음 안에 내화된 것을 외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경험으로 익힌 것을 마음 ‘안’에 그냥 두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드러내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니까 인간의 삶은 한마디로 내화된 것을 누적시키고, 누적된 내화 내용을 외화하는 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 음악가는 마음 밖에 존재하는 특정 음악양식을 내화해야 한다. 그래야 외화 활동을 할 수 있다. 연주가는 악곡을 내화한 후 그것을 다시 외화하는 사람이다. 내화나 외화에는 실패와 성공의 경우가 있고, 완료와 중단의 경우도 있다. 내화 과정에 사고가 생기면 내화는 중단된다. 어머니 얼굴 익힘이 완료되기 전에 갓난아기의 어머니가 병고로 세상을 떠나게 되면 내화 중단 상태가 벌어진다.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게 되면 무서운 일들이 벌어진다. 수없는 변수로 얽혀 있는 세계, 그 세계가 내화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예술 과학 학문이 내화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정치 경제 문제가 내화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외화 기술 습득이 미숙한 사람은 외화에 성공하지 못하기도 한다.

나는 여기서 이런 말을 하고 싶다. 내화 과정에 놓여 있는 인간 중 내화가 중단된 경우라든가, 내화가 부분적으로밖에 되지 않았는데 중단되지 않은 것으로 착각한다든가, 부분적 내화를 전체적 내화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착각하지 않은 내화의 경우도 그것을 외화하려면 엄청난 기술이 필요한데, 착각한 경우는 외화를 하더라도 부작용만 낳을 뿐이다. 우리가 안다고 큰소리치는 것 역시 세계에 대한 부분적 내화의 결과인 경우가 많다. 그렇지 않고서야 요즈음같이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어찌 ‘상치된 둘’을 ‘하나’로 만드는 묘법은 나오지 않는가. 어느 사회에서건 그 사회의 탄생 성장 쇠망 과정이 있게 마련인데, 그 과정의 본질을 내화하려고 할 때 그 내화가 본질의 전체가 아닌 부분에만 머문다면 외화에 성공하더라도 엄청난 시행착오를 낳는다.

부분적 내화를 전체적 내화로 착각한 사람이 정치활동을 하게 되는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이 세상 움직임의 모든 변수를 고려 대상에 넣지 않은 결과로 생긴, 무서운 부작용을 낳는다. 경제 하는 사람이 경제로만 이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그 예다. 어설픈 내화나 어설픈 외화 활동은 삼가야 한다.

▼전체적 內化, 성숙한 사회 가능 ▼

보수 진보라는 말이 있는데, 보수나 진보의 시각은 모두가 부분적 내화의 결과에 불과하다. 기계적 보수는 보수의 시각이 이 세상을 해석하는 유일한 방식이라고 생각하는 오류를, 경직된 진보는 부분적 진리를 전체적 진리로 보는 오류를 각각 낳는다. 명분으로 내거는 보수와 진보가 아닌, 참보수와 참진보의 개념은 따로 노는 것이 아니다.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 관계에 놓일 때 진정한 보수와 진정한 진보가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전체적 내화 내용을 전체적으로 외화할 수 있을 때 우리 사회는 발전 방향으로 가게 되리라 본다.

세계열강 대열에 동격으로 진입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조국이 다시 뒷걸음질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정치 분야만이 아니다. 각 분야에서 전체적 내화와 전체적 외화를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는 총력이 필요한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닌가 한다.

이강숙 한국예술종합학교 석좌교수·음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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