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환수기자의 장외홈런]실력과 사생활은 별개라고?

  • 입력 2003년 5월 12일 17시 50분


코멘트
부끄러운 고백부터 해야겠다. 지난 주 삼성 임창용 파문이 불거졌을 때다. 부인 이현아씨가 간통 혐의로 임창용을 고소했는데도 기자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올 초 두산의 하와이 전지훈련 도중 빚어진 폭력사태를 앞장서 보도하고 지난달 기아 김진우의 폭행 사건 때 분개했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무신경한 것은 기자 뿐이 아니었다. 삼성 김응룡 감독은 임창용을 주말 두산과의 잠실경기에 버젓이 선발로 등판시켰다. 또 프로야구의 이미지 실추를 걱정하기 보다는 하루 빨리 소송을 취하하고 합의를 끌어내 사건을 덮어버리는 데만 급급했다. 두산, 기아구단의 조치와는 달리 임창용에게 벌금만 매기는, 가벼운 징계를 내린 것도 같은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도 이번 주 들어서야 부랴부랴 상벌위원회를 열겠다고 밝혔지만 처음엔 팔짱만 끼고 있었다. 야구인 또한 임창용을 바라보는 시각이 그리 부정적이지는 않았다. ‘남자가 뭐 그럴 수도 있다’든가, ‘농담이나마 부럽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뭐가 문제였을까. 곰곰이 되짚어보면 이번 사건을 꿰뚫는 밑바닥에는 스타의 사생활 보호란 측면보다는 ‘허리 밑’ 얘기는 삼간다는, 지극히 남성 본위의 비뚤어진 공범 의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랬다. 일단 김응룡 감독에게 사심이 개입된 흔적은 없는 게 분명하다. 다만 우리 야구인들에게 그동안 은연중에 야구와 사생활은 별개라는 생각이 팽배했던 게 문제의 핵심이다. 술 냄새 풀풀 풍기면서 타석에 한번 서보지 않았으면 사나이가 아니라든가, 옛 해태 선수들은 밤마다 자주 사고를 쳤지만 야구 하나는 끝내주게 했다는 얘기가 훈장으로 여겨지는 게 우리 프로야구의 왜곡된 문화였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 메이저리그가 꼭 낫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그들은 선수단 이동 때면 누가 보지 않더라도 정장을 착용하는 등 세심한 데까지 신경을 쓴다. 선수의 품위 유지가 프로야구의 생명이란 것을 오랜 역사를 통해 체득한 때문이 아닐까.

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