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크엔드 포커스]“하버드 진학 12명중 5명이 동문자녀”

  • 입력 2003년 5월 8일 17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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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자료사진.
동아일보 자료사진.
헨리 박과 마거릿 바스는 미국 동부의 명문 사립학교 그로튼 스쿨 동창생이다.

이들은 졸업하던 해인 1998년 스탠퍼드대에 나란히 지원했다.

한국계 이민가정 출신인 박씨는 내신 성적이 졸업생 79명 가운데 14등, 대학 수학능력시험에 해당하는 SAT 성적은 1600점 만점에 1560점이었다. 특히 수학을 잘했다. 고교 교사와 학생들을 위한 수학 저널에 연구 논문이 실릴 정도. 하지만 그는 스탠퍼드대와 MIT에서 퇴짜를 맞고 아이비리그인 하버드 예일 브라운 컬럼비아대에도 줄줄이 낙방했다.

이에 비해 바스씨는 내신성적 40등, SAT 성적 1220점으로 스탠퍼드대에 합격했다. 당시 스탠퍼드대 신입생의 90%는 고교 성적이 상위 10% 이내이며 75%는 SAT 성적이 1360점 이상이었다.

성적이 나쁜데도 바스씨가 합격한 것은 아버지를 잘 둔 덕분이다. 아버지 로버트는 스탠퍼드 비즈니스 스쿨을 졸업했고 스탠퍼드대 이사회 의장이었다. 텍사스 거부인 아버지는 1992년 모교에 2500만달러를 기부했다.

● ‘소수민족 특혜’ 위헌 논란속 파문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기사에서 박씨와 바스씨 등 그로튼 스쿨 1998년 졸업생 79명의 대학 입학 과정을 추적해 지원자들의 집안 배경이나 기부금 규모가 아이비리그 진학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지를 드러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이 기사는 미국연방대법원이 대학입시에서 소수 민족에 가산점을 주어온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의 위헌 여부를 곧 판결할 예정인 가운데 게재돼 더욱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로튼 스쿨은 보스턴시에서 북서쪽으로 40마일가량 떨어진 곳에 1884년 개교했다. 학년을 표시할 때도 미국식 표현인 ‘grade’ 대신 영국식의 ‘form’을 쓸 정도로 영국 사립학교를 모델로 삼았다. 교훈은 ‘봉사하는 것이 지배하는 것이다(To Serve Is To Reign)’.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도 이 학교 출신이다. 학비는 기숙사 비용을 포함해 연간 3만3000달러. 1998년 졸업생 79명 가운데 60명 이상이 백인이었다.

학생들의 SAT 성적은 평균 1360점으로 미국 고교생 평균보다 340점 높다. 명문대학 진학률도 높아 1998년에는 79명 중 34명이 아이비리그 대학에 합격했다.

이들의 대학 입학 과정을 보면 성적은 그야말로 ‘여러 가지 전형 요소 중 하나일 뿐’이다. 성적은 나쁘지만 명문대에 진학한 학생들이 얼마든지 있었다. 대개는 △흑인 히스패닉 미국 원주민 등 소수민족 출신 △백인 출신으로 부모가 지원 대학의 동문 △백인으로 부모가 대학에 거액을 기부했거나 유명인사인 경우다. 부모 잘 만난 덕에 명문대에 진학한 학생들은 ‘유산 학생(legacy student)’이라고 불린다.

● “성적은 전형요소중 하나에 불과”

다니엘 누네즈는 소수민족에 배정된 쿼터로 프린스턴대에 합격했다. 내신은 79명 중 26등이며 SAT는 1510점. 성적이 좋았지만 안전하게 합격권에 들고 싶었다. 부모가 페루와 스칸디나비아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대학 지원서에는 히스패닉이라고 썼다.

라키아 워싱턴은 뉴욕시의 빈민가인 브롱크스에서 자란 흑인으로 장학금을 받고 그로튼에 다녔다. 내신은 60등이었고 SAT는 1110점으로 성적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컬럼비아대 신입생이 됐다. 그녀는 “어퍼머티브 액션의 혜택을 본 것이 사실”이라며 “그러나 학교 동문이나 기부금 제공자 자녀들도 같은 정도의 특혜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녀의 말은 사실이다. 당시 그로튼 졸업생 79명 중 12명이 하버드대에 합격했으며 이 중 최소한 5명이 하버드 동문 자녀로 파악됐다.

매튜 버도 하버드 동문 자녀였다. 버씨는 79명 중 4등으로 내신 성적은 좋았지만 SAT는 1240점으로 낮았다. 당시 하버드대 학생들의 75%는 SAT 성적이 1380점 이상이었다. 벤처 투자가인 아버지 크레이그는 하버드대 출신으로 1990년대 중반 모교에 100만∼500만달러의 기부금을 냈다. 버씨는 “아버지의 학연이 내 입학에 도움을 준 것을 인정한다”며 “이런 유산이 대학 입시의 당락을 가르는 기준이 되는 게 공정하지 않다”고 말했다.

포브스 레이놀즈 맥퍼슨도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하버드대 출신이다. 맥퍼슨씨는 79명 중 45등에 SAT 1480점으로 하버드대 추가 합격자 명단에 끼었다. 하버드대는 ‘1년 후 입학’ 조건으로 맥퍼슨씨를 합격시켰다. 하버드대는 동문 자녀들 가운데 성적이 커트라인에 걸린 경우 이런 타협책을 쓴다. 1998년 48명의 입학 유예 조건부 합격자 가운데 35%인 17명이 동문 자녀였다.

브라운대에 입학한 줄리아 할버스탐은 베스트셀러 작가의 딸. 79명 중 41등에 SAT 1340점으로 브라운대 평균보다 50점 낮은 점수였다. 그녀는 지원할 당시 에세이에 “나를 데이비드 할버스탐의 딸로 평가하지 말고 내 능력으로 평가해 달라”고 썼다. 하지만 그녀는 지원하기 전 아버지와 함께 이 대학의 마이클 골드버거 입학관리학장을 만났다. 브라운대 총장을 지낸 친지는 ‘편지’도 써 주었다.

캐롤린 브레이거는 혼자 힘으로 브라운대에 합격하고 싶어 1881년 브라운대에 세일스 홀을 기증한 조상이 있다는 사실을 숨겼다. 그녀는 할버스탐씨보다 성적이 좋았지만 브라운대에 떨어지고 조지타운대에 들어갔다. 브라운대의 골드버거 학장은 “캐롤린씨가 그 사실을 밝혔더라면 플러스 요인이 됐을 것”이라고 인정했고 캐롤린은 “내가 순진했다”고 말했다.

● SAT1240점 받고 하버드 진학

동문 자녀나 기부금 입학자 자녀에게 입시 때 특혜를 주는 이유에 대해 대학들은 등록금만으로는 대학 재정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유명 인사의 자녀가 와야 대학의 인기가 높아진다는 것도 이유다. 스탠퍼드대 로빈 마믈릿 입학관리학장은 “입시 사정 때는 대학에 기여한 정도도 감안한다”고 밝혔다. 스탠퍼드대 대학발전국에서는 매년 입학관리학장에게 지원자 중 기부금 공여자 자녀의 명단을 제공한다.

앞서 소개한 박씨의 어머니 수키 박은 “아이비리그대 합격률이 높다는 이유로 아들을 그로튼 고교에 넣었고 공부도 잘해 걱정하지 않았다”며 “성적만 좋으면 명문대에 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내가 순진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그 후 카네기멜론대와 존스홉킨스대 두 곳에 합격해 1년간 카네기멜론에 다니다 존스 홉킨스로 옮겨 신경과학을 공부하고 있다. 앞으로 의대에 진학할 계획이다.

그로튼 스쿨 1998년 졸업생들의 대학 진학 내용
이 름내신SAT출신 배경대학 진학
헨리 박14등1560점 중산층 한국계 이민가정아이비리그 대학 떨어지고 카네기멜론, 존스홉킨스대 합격
라키아 워싱턴60등1110점빈민가인 브롱크스 출신 흑인컬럼비아대 합격
마거릿 바스40등1220점아버지가 스탠퍼드대 이사회 의장스탠퍼드대 합격. 이 대학에 지원한 나머지 8명은 모두 떨어짐
매튜 버4등1240점아버지가 하버드대 출신이고 모교에 100만달러 이상의 기부금 제공하버드대 합격, 윌리엄스대 떨어짐
포브스 레이놀즈 맥퍼슨45등 1480점아버지와 할아버지가 하버드대 졸업하버드대에 조건부 합격, 다른 명문대학엔 떨어짐
존 로버츠10등1530점할아버지와 삼촌이 하버드대 졸업, 실내 트랙과 테니스센터 등 거액 기부하버드대 합격
줄리아 할버스탐41등1340점아버지가 베스트셀러 작가, 친지가 브라운대 총장 출신브라운대 합격
캐롤린 브레이거할버스탐씨보다 성적 좋음조상이 브라운대에 건물을 기증한 사실을 대학 지원 때 숨김브라운대 떨어지고 조지타운대 합격
크리스티나 맬러니46등 1330점아버지와 할아버지가 프린스턴대 출신브라운, 다트머스대 떨어지고 프린스턴대 합격
다니엘 누네즈26등1510점부모가 페루와 스칸디나비아 출신이나 원서에 히스패닉으로 표기프린스턴대 합격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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