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포커스]유럽서 더 유명한 재즈 싱어 나윤선

  • 입력 2003년 5월 6일 17시 40분


코멘트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羅玧宣·34).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모르는 사람은 들어보지도 못한 이름이다. 하나마나한 얘기처럼 들리지만 국내 재즈 마니아들 사이에서 그는 ‘노래를 정말 잘하는 가수’로 통한다. 2000년 한국에서 낸 음반 ‘르플레(Reflet·반영)’는 1만장이 팔렸다. 재즈 음반으로서는 상당한 기록이다. 이런 그는 유럽 재즈계에서도 꽤 알려져 있다. 동양인으로는 최초로 프랑스 최고의 CIM 재즈 스쿨 교수를 지냈다. 각종 재즈 콘테스트에서 상을 받았고 프랑스에서 낸 음반 ‘라이트 포 더 피플(Light for the people)’도 잘 나가고 있다. 1995년 프랑스에 재즈 유학 왔다가 2000년 귀국한 뒤에도 여러 재즈 페스티벌 초청 등으로 한 해 절반가량은 유럽에서 살다시피 한다. 4일에는 프랑스 아르테(Arte) TV 방송의 특집 프로그램 ‘파리 재즈 클럽’에도 출연했다.》

그러나 재즈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윤선은 생소한 이름이다. 그만큼 재즈가 일반인들에게 멀다. 기자는 인터뷰 요청 때 “재즈를 잘 모른다”고 고백한 뒤 “재즈를 모르는 기자와의 인터뷰가 일반인에게 재즈를 알리는 데 오히려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인터뷰는 그의 아르테 방송 녹화 직후 파리에서 이루어졌다.

―프랑스 방송은 어떻게 나가게 됐나.

“우연히 이루어졌다. 1월 파리의 ‘르z데롱바르(Le Duc des Lombards)’ 재즈클럽에서 공연했다. 노래가 끝난 뒤 한 손님이 ‘베사메무초’ 앙코르를 요청한 뒤 내 음반을 가지고 와 사인을 해 달라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가 이번 방송의 총 책임자였다.”

‘우연하게’라는 말은 겸손이었다. 르z데롱바르 재즈클럽은 수많은 프랑스의 클럽 가운데 4대 명문에 속한다. 아르테 방송에 나오는 재즈클럽도 이 4개뿐이다. 그가 재즈 스쿨 재학 당시 조직한 그룹 ‘나윤선 퀸텟(Quintet·5중주)’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이 클럽 무대에서 섰고 그 대표주자로 방송에도 출연하게 됐다.

―어떻게 프랑스에 와서 재즈를 공부하게 됐나.

“대학 졸업 뒤 한 중견 의류업체의 카피라이터로 취직했다. 그러다 회의가 들어 사표부터 던지고 쉬고 있는데 친한 친구가 록뮤지컬 ‘지하철 1호선’의 오디션에 응모하라고 꼬드겼다. 엉겁결에 녹음테이프를 보냈다가 여주인공 ‘선녀’역까지 맡게 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노래가 평생 직업이 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이어 뮤지컬 ‘번데기’와 음악극 ‘오션 월드’에 출연하면서 열심히 하는 주변 사람들을 보니 나도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로 유학 오게 된 것은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해 언어가 친숙했기 때문이다.”

그는 대학 2학년 때 주한 프랑스문화원이 주최한 샹송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차지, 부상으로 프랑스 연수를 갔었다. 대상은 아무나 타나. 그의 아버지는 10년 넘게 국립합창단을 지휘한 한양대 성악과 나영수 교수다. 어머니는 뮤지컬 배우 출신인 김미정씨. 본인은 한번도 성악을 제대로 배운 일 없고 부모 역시 예술 쪽을 권하지 않았지만 ‘끼’를 타고났다. 대학 시절 그의 친구는 “지금은 부정하지만 너는 결국 음악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왜 하필 재즈였나.

“어릴 때부터 ‘왜 꼭 악보대로 노래를 불러야 하나’라고 생각했다. 재즈는 열 번을 불러도 열 번 다 다르게 부를 수 있다.”

―CIM 재즈 스쿨의 동양인 최초 교수가 됐는데….

“그 학교에서 3년을 수학하고 1년간 교수를 했다. 교장이 나를 교수로 쓴 데는 내가 동양인이라는 이유도 있었다. 서양인들에게 동양인의 목소리가 특별하게 들릴 수도 있다.”

재즈 보컬리스트 하면 걸쭉한 목소리를 연상하는 사람들에게 나윤선의 소리는 신선하다. 맑고 높다.

―재즈가 너무 어렵거나 지루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다. 좀 더 대중화돼야 하지 않나.

“친구 아들이 ‘이모더러 소리 좀 그만 지르라 하라’고 했다더라. 영어 노래를 많이 하지만 ‘이래 가지고 할머니들이 내 노래를 알아들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이나 할머니가 들어도 좋은 음악을 하고 싶다. 골수 재즈 뮤지션 중에는 ‘대중화’라는 말을 들으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분들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는 재즈 음악을 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해결점을 찾지 못했다.”

그는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음악이 내게 중요하지만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예순이 돼서도 계속 노래를 할 것 같지만 어느날 갑자기 노래를 못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물 흐르듯 편안한 그의 사고가 저절로 고민의 해결점을 찾아줄 것만 같았다. 그가 목표하지는 않았지만 국내 정상급 재즈 보컬리스트가 됐듯이. 어쩌면 그의 인생 자체가 어디로 흐를지 모르는 즉흥 연주, 재즈 그 자체였다.

파리=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

나윤선은

-1969년 출생

-1989년 건국대 불문과 2학년 때 주한 프랑스 문화원 주최 샹송 콘테스트 대상 수상

-1994년 록 뮤지컬 '지하철 1호선' 주연

-1995년 프랑스 유학. 1998년까지 파리의 CIM 재즈 스쿨에서 수학

-1998년 CIM 재즈 스쿨 장학금으로 1년간 재즈 피아노 공부

-1999년 CIM 재즈 스쿨에서 1년간 교수로 재직(동양인 최초). 라데팡스 재즈 콩쿠르에서 심사위원 특별상, 생 모르 재즈 콩쿠르에서 대상 수상

-2000년 유럽 재즈 뮤직상 시상식에 초청 가수로 출연. 귀국한 뒤 첫 솔로 앨범 '르플레' 발매

-2001년 첫 한국 공연. 각종 유럽 재즈 페스티벌 및 재즈 클럽 공연

-2002년 프랑스 재즈 콘서트 투어. 프랑스에서 음반 '라이트 포 더 피플' 발매. 동숭아트센터 공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