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피터 벡/北, 더 이상의 모험은 위험하다

  • 입력 2003년 3월 12일 18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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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가 ‘악의 축’의 하나로 지목한 이라크에 대한 공격을 앞두고 있다. 워싱턴에는 다음 차례는 북한이 될 것이라는 말이 무성한데도 서울에서는 누가 새 정부에서 일할 것인지를 놓고 논쟁이 한창이다.

워싱턴과 서울의 분위기는 놀라울 정도로 다르다. 나는 부시 행정부가 북한 핵시설에 대한 ‘국지 공격(surgical strike)’을 얼마나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는지를 한국인들이 알고 있는지 몹시 궁금하다.

지난해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이 나온 뒤 쓴 칼럼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부시 행정부는 미국이 약한 자를 괴롭히는 존재로 세계에 비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부시 대통령은 미국에 대한 ‘악’의 위협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든 상상에 의한 것이든 상관없이 그 위협을 세상에서 없애 버리려는 기독교 십자군의 대통령처럼 보인다.

▼이라크 다음은 북한’ 가능성 ▼

부시 행정부는 다수의 미국인들에게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제거하는 것이 미국을 보호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설득하기 위해 엉뚱하게도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전쟁은 평화’라는 구호를 9·11테러의 비극에 연결시켜 왔다. 세계가 무엇을 생각하느냐도 중요치 않다. 이라크와의 전쟁에 항의하기 위해 사표를 낸 미국 외교관은 콜린 파월 국무장관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우리의 친구들이 우리를 위해서 걱정하는 게 아니라 우리 때문에 걱정하면 그것은 정말 우려해야 할 때다.”

부시 대통령의 주전론자들은 적을 공격하는 데 심지어 가까운 동맹국이나 유엔조차 방해하는 것을 허용치 않을 것이다. 공화당 하원의원들은 동맹국들의 우려를 귀담아듣지 않고 하원 구내식당 메뉴인 ‘프렌치 프라이’를 ‘프리덤 프라이’로 이름을 바꾸는 엉뚱한 조치를 취했다. 일부 공화당 지도자들은 미국인들에게 프랑스 상품을 사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다.

서울은 김치나 현대자동차에 대한 미국인들의 불매운동을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한반도의 운명은 실제로 그 위험 정도가 대단히 심각하다. 부시 행정부의 매파들이 이라크를 침공함으로써 미국 자체를 기꺼이 테러리스트의 엄청난 공격 위험에 놓이게 하고, 미군이 잠재적인 생화학 공격을 당하는 것을 감수할 정도라면 한국에서의 전쟁 모험을 피하려고 할 이유가 있겠는가.

부시 행정부가 세계 여론을 무시하고 심지어 경멸하는 것을 보면서 한국이 일제로부터 광복했을 때 유행했던 ‘미국은 믿지 말고 소련엔 속지 말라’는 말이 생각난다. 진정으로 믿을 수 있고 진실한 동맹국이라면 어느 때보다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 놓여 있는 한국에서 군을 철수하거나 최소한 적의 사거리 밖으로 이동시키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발표할 수 있겠는가.

북한의 나쁜 행동에 대해서는 절대로 보상하지 않겠다는 미 행정부가 북한이 도발을 강화하고 있는 시기에 어떻게 갑자기 그들이 가장 원하는 것을 들어줄 생각을 할 수 있는가.

후세인 대통령이 죽거나 은신하면 부시 행정부가 무기를 북한 핵시설을 향해 돌릴 것이라는 나의 확신은 점점 강해지고 있다. 미국과 북한 사이의 불신과 비난의 수위를 보면 이미 의미 있는 협상이 사실상 불가능한 정도다. 부시 행정부는 스스로를 구석으로 몰아넣고 있다. ‘피그미’나 ‘악’이라고 부른 상대와 어떻게 협상을 하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부시 사람들은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미사일과 핵물질을 수출하는 것을 가만히 앉아서 지켜보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선제 공격만이 남아 있는 유일한 선택 방안이 될 것이다.

▼남측서 내민 손 빨리 잡아야 ▼

만약 북한의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후세인 대통령에게 곧 닥칠 운명을 피하고 싶다면 남쪽의 같은 민족에게 가급적 빨리 손을 내미는 것밖에는 선택할 게 없다.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에 대한 한국인들의 깊은 실망에도 불구하고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북한과의 대결보다는 포용을 지지한 유권자들 덕분에 가까스로 당선됐다. 노 대통령은 북한이 한국과 의미 있고 지속적인 화해를 이룰 또 한번의 기회를 제공하며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이 만들어 놓은 꿈을 다시 살리려 하고 있다.

지금은 김 위원장이 서울을 답방하겠다고 한 자신의 약속을 지키고 남북협력을 한 단계 올려 놓아야 할 때이다. 워싱턴에서 김 위원장과 관련해 가장 유행하는 말 중에 “북한은 결코 기회를 놓칠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더 이상의 모험은 위험하다.

피터 벡 미 한국경제연구소 국장 beckdonga@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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