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 생각에는…]“어린이집에는 7살반이 없어요”

  • 입력 2003년 2월 18일 18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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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파트 내 상가 치킨집은 1000원짜리 닭꼬치가 명물이다. 30대 후반의 부부가 운영하는 이 집 닭꼬치 한 개면 출출함이 가실 정도로 양이 많고, 매콤달콤한 맛에 우리 집 막내까지 좋아한다.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얼마 전, 우리나이로 다섯 살인 막내가 밤 10시가 넘은 시각에 갑자기 “치킨! 치킨!” 하고 떼를 썼다. 닭꼬치 하나를 배달시킬 순 없고, 요 늦둥이에게는 마음 약한지라 치킨집에 갔더니 우리 막내 또래 그 집 딸이 테이블에 앉아 만화책을 뒤적이고 있었다. 글자도 모를텐데 만화책이 무슨 재밀까. 다른 애들 같으면 엄마랑 잠자리에서 뒹굴 시간인데 싶어 짠한 생각이 드는데, 주인아줌마 마음이야 오죽하랴.

“집에 아이 보는 아줌마 둘 형편은 못되고 친정엄마나 시어머니도 없으니 할 수 있나요. 가게 문 닫을 때까지 이렇게 데리고 있죠.”

요즘 어린이집을 옮길까 고민 중이라는데 지금 아이가 다니는 구립 어린이집이 걸어 다니기에는 너무 멀어 매일 아이를 데려다 주고 데려오는 일이 힘에 부친다는 것이다. 동네 치킨집은 빠른 배달이 경쟁력이지만 주문이 들어와도 아이 때문에 매일 일정시간 자리를 비워야 하는 것도 문제란다.

우리 동네 취업모들 가운데에는 전문직 커리어우먼보다 치킨집이나 분식집, 화장품가게, 옷가게, 대형할인점 등에서 일하는 엄마들이 많다. 이런 엄마들에게 ‘여성의 자아실현’ 운운은 사치다. 자신도 함께 일하지 않으면 생활이 안 되니까 어린아이를 두고 생활전선에 뛰어드는 것인데 자신의 근무여건에 맞춤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찾기가 어디 쉽나.

가장 저렴하고 믿음직한 구립 어린이집은 대기 인원이 많고, 결정적으로 차량 운행을 안 한다. 서울 시내 어느 어린이집이나 유치원도 차량 운행을 안 하는 곳이 거의 없는데 구립은 무슨 배짱인가 보다. “구립 만한 곳이 없으니 다닐 테면 다녀봐” 하는 건지.

겉으로만 보면 아이 맡길 곳은 널렸다. 동네마다 사방팔방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다. 원래 어린이집은 ‘보육’, 유치원은 ‘교육’기관이라던데, 요즘은 어린이집에서도 영어교육까지 하고 유치원도 종일반을 운영하니 엄마들 눈에는 다 그게 그거다. 그저 들어가는 비용이 어린이집은 좀더 저렴하고, 시설은 유치원이 좀더 낫고. 보육정책이 어떻다고들 하는데 우리 동네 치킨집 아줌마처럼 늦게까지 일하는 엄마들을 위한 곳은 아직 주위에 없다.

한푼이 아쉬운 엄마들은 유치원보다 보육비가 싼 어린이집을 선호하는데, 글쎄 많은 엄마들이 아이가 6세만 되면 공부를 더 많이 시킨다는 유치원으로 옮기다 보니 정작 보육시설인 어린이집에는 6, 7세 ‘형님반’들이 축소되거나 사라져간다.

동네 어린이집에 다니는 우리 막내, 공부니 뭐니 좀 덜 시키려고 내년에도 어린이집에 보냈음 하는데 1월생이어서 올해 6살반에 올라가니 내년에는 더 올라갈 반이 없단다. 집에서 놀리자니 또래 친구들은 다들 어디 다니고. 아, 우리 막내, 놀기도 어려워라.

박경아 서울 강동구 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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