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 내셔널 어젠다委 제안 8]재정·조세

  • 입력 2003년 1월 9일 18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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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개항한 양양국제공항은 정부가 3560억원을 들여 지은 국내 4번째 규모(부지면적 기준)의 공항이다. 동북아의 허브(HUB·중추)공항으로 키우겠다는 계획 아래 지어졌지만 시작은 초라하기만 하다. 개항 후 한 달 수입이 2500만원으로 한 달 치 전기요금(3500만원)에도 못 미친다. 한국공항공단은 지난해에만 55억원의 적자를 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부는 국민에게 걷은 세금으로 각종 공공 서비스를 제공한다. 세금은 정부 서비스를 사용하는 값이라고도 볼 수 있다. 정부는 적어도 국민이 지는 부담만큼의 혜택을 줘야 한다. 부담은 줄이고 혜택은 늘리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정부의 역할과 비중이 커진 현대국가에서는 국민의 부담도 커진다. 한국도 60년대 이후 국민 부담이 증가해 왔다.

1960∼70년대는 경제개발 초기였고 국민 부담이 워낙 낮았던 만큼 정부 서비스 수준이 낮았던 점이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국민부담이 처음으로 국내총생산의 18%대를 넘어선 80년대 이후, 정부로부터 받는 혜택은 어느 정도 증대됐을까.

정부 지출의 쓰임새를 살펴보면 지금보다 더 적은 부담으로도 더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여지를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다.

수도권 인구와 산업체 분산을 목표로 87년 시작된 시화호 사업의 핵심은 3억t의 바닷물을 막아 담수로 만드는 것이었다. 정부는 이를 위해 12.7㎞의 방조제를 건설하는 데 6220억원, 수질개선사업에 2079억원을 각각 투입했다. 이후 시화호의 오염이 계속되자 정부는 2001년 2월 담수화 포기를 선언했다. 경기도가 2006년까지 시화호 수질개선에 9118억원을 추가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최근 발표했듯이 시화호는 앞으로도 한동안 ‘돈 먹는 하마’가 될 전망이다.

원래 1조3000억원이면 완공될 예정이었으나 현재까지 1조4000억원을 투입하고도 4조6000억원이 더 투입돼야 겨우 농지로 쓸 수 있다는 새만금 사업도 비슷한 사례다.

또 97년 4월 개항한 청주국제공항은 국고 751억원을 포함, 3200억원을 투입해 연간 119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여객터미널을 갖췄으나 2001년 한 해 동안 겨우 60만명이 다녀갔을 정도로 이용이 부진하다. 그나마 국제선 이용객은 6만명에 그쳤다. 지난 5년간 매년 평균 40억∼50억원씩의 적자를 내면서 ‘돈 먹는 기계’라는 오명도 얻었다.

예산낭비는 사회간접자본 사업에서 그치지 않는다. 김영삼(金泳三) 정부 시절에 각각 40조원이라는 천문학적 재원을 투입하였던 교육개선사업과 농어촌구조개선 사업들은 낙후된 교육과 농어촌의 현실을 그다지 개선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 사업들을 위하여 신설된 목적세들은 지금도 어디론가 계속 지출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도 매한가지다. 자치단체마다 경쟁적으로 조성한 공단들이 곳곳에서 황무지로 방치돼 있는 데도 새로운 공단 조성계획을 계속 내놓고 있다. 이 모든 낭비는 정부사업들이 아무런 사전 준비 없이 정치적 구호에 따라 입안되고 시행됨으로써 발생한 것이다.

정부 지출의 효율성만 높아져도 국민의 부담은 줄어들 수 있다. 줄어든 부담만큼 소득세와 법인세를 인하하면 국가경쟁력도 높아질 수 있다. 여기에 정부 혁신을 통하여 정부와 공공부문 전체의 군살을 빼고 조직과 기능의 선진화를 도모한다면 보다 양질의 혜택이 제공될 수 있다.

지출 효율화와 정부혁신은 국가의 운명이 걸린 과제다. 한국은 국제 여건의 변화에 따라 위기 발생 가능성이 항상 존재한다. 위기가 닥쳐온다면 국가 재정은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가 된다. 이것이 재정 건전성이 중요한 이유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재정은 부실화되고 있다.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실업대책과 공적자금의 이자부담 등으로 국가채무가 늘었다. 공적자금의 회수율이 저조해 보증채무가 확정채무로 전환될 위험에 놓여있다. 또 구조적으로 적자 위험을 안고 있는 연금 등에서의 잠재적 채무 문제도 심각하다.

지출 효율화, 정부 혁신과 함께 재정의 운영 방식도 개선해야 한다. 특별 회계의 정비, 기금의 통폐합이 필요하며, 재정은 지방재정과 연기금을 모두 포함한 ‘통합 재정’의 개념에서 운영돼야 한다.

공동취재=황재성기자 jsonhng@donga.com


▼복잡한 세제, 쉽고 간편하게 고치자▼

한국의 소비자들은 휘발유를 살 때마다 관세 수입부과금 부가가치세 교통세 교육세 주행세 등 무려 6가지의 세금과 준조세를 낸다. 휘발유 값에서 얼마가 세금이고 얼마가 원가인지는 웬만한 세금전문가도 한참 법전을 뒤적이고 계산기를 두드려야 알 수 있다. 조세특례제한법은 너무 복잡해 세무사와 기업세무담당자들이 납부액을 잘못 예상했다가 뒤늦게 세금 낼 돈을 마련하느라 낭패를 보기도 한다.

한국의 세제가 이처럼 복잡한 데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 경제개발 과정에서 자본이 부족하다보니 세목을 이것저것 신설할 수밖에 없었다. 일부 산업을 정책적으로 육성하고 소득분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각종 비과세와 감면, 공제혜택을 늘려온 것이다.

그러나 복잡한 제도는 세금을 내고 거두는 과정에서 생기는 사회적 비용을 높인다. 징세당국과 납세자 모두 제도를 이해하고 따르는데 불필요한 시간적, 경제적 비용이 든다. 또 세제가 복잡하면 세무공무원의 자의성이 개입할 여지가 많고, 부조리가 생기기도 쉽다.

조세에 다시 부가되는 조세에 해당하는 농어촌특별세와 교육세는 시한이 끝나면 연장하지 말아야 한다. 조세수입은 적으면서 터무니없이 세목수만 많은 지방세도 과감히 정비해야 한다. 취득세와 등록세를 통합하고 각종 개인 소세를 통합하며 유명무실한 농지세 등을 폐지한다면 지방세는 한결 간소해진다.

각종 비과세 감면혜택도 마찬가지다. 매년 약 10조원에 이르는 비과세 감면혜택은 세부담의 형평성을 저해하고 세제를 복잡하게 하는 주범 가운데 하나다. 기술인력 개발과 설비투자 등에 대한 감면을 제외한 나머지 비과세 감면은 대폭 줄이거나 없애야 한다.

세부담의 형평성도 제고해야 한다. 세무조사를 강화하여 연예인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직종과 일반 개인사업자의 과세표준을 현실화해야 한다. 일부 계층이 탈세를 하는데 악용하는 부가가치세 간이과세제도도 폐지돼야 한다.

이상의 조치들이 선행된 후에 단계적으로 소득세율과 법인세율의 인하가 추진돼야 한다. 현행 소득세율과 법인세율이 국제비교를 통해 볼 때 높은 수준은 아니지만, 세부담 경감의 효과를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소득세와 법인세 인하다. 또한 외국자본과 우수인력의 국내유치에도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임주영 서울시립대 교수

▼유일호 前 조세연구원장▼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은 ‘예산을 남기면 다음해에 깎인다’는 생각 때문에 멀쩡한 보도블록을 해마다 바꿉니다. 이런 낭비를 막으려면 객관적인 성과에 따라 예산을 배정해야죠.”

한국조세연구원 원장을 지낸 유일호(柳一鎬·사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제도를 개선하면 예산 낭비를 줄일 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지적했다.

성과주의 예산제도란 성과가 높은 분야에는 예산을 많이 주고 성과가 낮은 분야에는 적게 주는 제도. 멀쩡한 보도블록을 바꾸는 일 등은 어떤 기준으로 따져도 성과가 ‘0’에 가깝기 때문에 성과주의가 적용되면 뿌리가 뽑힐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유 교수는 “성과주의 예산제도는 정부가 현재 도입을 신중하게 준비하고 있지만 좀 더 서두를 필요가 있고 이와 함께 다년도 예산편성제도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년도 예산편성제도는 몇 년 치 예산을 한꺼번에 짜는 제도로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경부고속전철의 예처럼 심사를 할 때마다 예산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부작용도 막을 수 있습니다. 이 제도의 도입이 어렵다면 현재 아무 구속력이 없는 중기 재정 계획에 구속력을 주는 것도 하나의 대안입니다.”

성과주의 예산제도와 다년도 예산편성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쉽게 할 수 있는 예산절감책도 있다면서 유 교수는 기금의 통폐합을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그는 국회의 예산 결산 기능의 실질적인 강화도 시급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예산안 심사는 밀실에서 여야(與野)가 나눠먹기를 하고, 결산심사는 형식적으로 하는 시늉만 하기 때문에 국민의 편에서 예산 낭비를 감시하는 일이 제대로 안됐다는 것이다.

유 교수는 “국회가 상시적으로 사업추진상황을 보고받고 결산자료를 축적해두면 국정감사를 할 필요도 없고 바쁜 장관을 오라 가라 할 까닭도 없다”며 “미국처럼 감사원을 국회 산하에 두는 방안도 고려해볼 가치가 있다”고 제안했다.

천광암기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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