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 내셔널 어젠다委 제안 7]정치개혁

  • 입력 2003년 1월 7일 18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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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김(金)’으로 대표되는 우리의 기존 정치구도는 국민 다수의 참여가 결여된 상태에서 몇몇 거대 정당의 보스가 권력을 과점한 상태로 운영돼 왔다.

이 점에서 3김과는 전혀 다른 정치행태와 이미지를 내세웠던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의 승리로 끝난 제16대 대통령선거 결과는 이 같은 3김식 권력 카르텔 구도의 청산을 바라는 국민적 요구가 반영돼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노 당선자는 3김의 잔재를 청산하고 진정한 국민 참여가 보장되는 새로운 정치구도를 만들어야 하는 시대적 소명을 안고 있는 셈이다.

독재와 반독재 대결구도가 막을 고한 1987년 이후 지금까지 한국정치는 3김의 과점 권력이라는 또 다른 지배구도에 억눌려 왔다. 3김은 지역감정으로 유권자들을 묶어서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능하도록 하는 한편으로 정치시장의 진입장벽을 높임으로써 자신들의 과점적 이윤을 최대한으로 보장받아 왔다.

그 결과 우리의 정치는 엄청난 국고보조금과 정경유착이라는 고비용을 들이면서도 정작 국회에선 당리당략 싸움 등 구태로 일관해 왔다. 유권자들은 비싼 가격에 질 나쁜 서비스를 받고 있음을 뻔히 알면서도 울며 겨자먹기식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동안 이 같은 고비용-저질 정치에 대한 개선 시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15년간 투명하고 깨끗한 정치를 한다는 명목하에 수많은 정치제도 개혁을 해왔다. 그러나‘개혁작업’의 기저에는 언제나 권력 카르텔의 이익 추구 논리가 숨어 있었기 때문에 실질적인 진전은 없었다.

먼저 국회법을 보면 87년 이후 12차례의 개정이 있었다. 그 결과 중의 하나가 총무회담 중심의 국회운영. 이 제도는 권위주의 시대에 여당에 의해 국회가 좌지우지돼 행정부의 시녀로 전락한 상황을 바로잡자는 것이 그 취지였으나 사실상 정당 보스에게 입법 거부권을 주는 것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정당 보스의 동의가 없으면 국회는 돌아갈 수 없었고, 반대로 동의만 있으면 하루에도 수십 건의 법안이 통과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 것이다.

선거법에도 권력 카르텔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가 곳곳에 숨어 있다. 관권 금권 선거를 막는다는 취지로 각종 선거운동에 대한 제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선거법 개정이 이뤄져 왔다. 그러나 이는 유권자로 하여금 후보자의 정책이나 인물 됨됨이를 판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기회를 제한하고 결과적으로 가장 단순한 지표인 지역감정에 따라 투표하도록 조장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로 인해 기존 정치구도에서는 지역감정에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정당의 출현이 사실상 원천 봉쇄됐다. 의원들의 선거 승패도 후보 개개인의 능력보다는 지역을 대표하는 정당 보스의 힘에 의해 결정됨으로써 의원들의 자율성을 현저히 약화시켰다.

정치자금법도 개정돼 80년대 초에 비해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이 100배 이상 인상됐다. 81년 8억원이던 것이 2002년 1140억원으로 증가했다. 정경유착을 막고 깨끗한 정치를 실현한다는 게 그 취지였지만 정당 보스들만 힘들이지 않고 돈줄을 확보할 수 있게 만들었다.

더욱이 정당에 들어가는 국고보조금이 과연 투명하게 사용됐는지 알 수 있는 실질적 조치를 배제함으로써 정당보스가 국고를 쌈짓돈처럼 쓸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국고보조금의 95% 이상을 원내교섭단체가 독점하도록 한 배분방식으로 인해 신생 정당이 만들어져 기존 정당들과 경쟁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당법의 경우는 정당 보스의 공천 장사와 밀실 공천에 대해 규제를 사실상 포기함으로써 권력과점을 보장하고 있다. 정당의 특권을 거의 인정하지 않고 있는 미국의 각 주가 법규를 통해 정당의 경선 방식을 일일이 규정하고 이를 감시하는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라고 할 수 있다.

3김이 남긴 이 같은 과점적 정치구조를 무너뜨리고 유권자가 최저의 가격에 최고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정치시장을 투명하고 공정한 경쟁체제로 만들어 나가는 것, 즉 정치에서도 글로벌 스탠더드를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정치개혁의 방향이다.

국민 다수의 참여가 보장되는 상향식 경선을 통해 공직후보 공천권을 정당 지지자와 유권자에게 돌려줘야 한다. 국회에서는 총무 1인에게 집중된 국회운영권을 일반 의원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미국 의회가 의장의 독재를 막기 위해 의장이 운영위원회에 소속되는 것을 금지했듯이 총무가 운영위원회에 소속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선거법도 유권자의 참여를 제한하는 규제들을 철폐하는 대신 선거자금의 완전 공개와 그에 대한 실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국고보조금은 참여의 확대와 정당의 자구노력 강화를 위해 보조금 배분을 소액후원금과 소액 당비 납부율에 연계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윤승모기자 ys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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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투표 가능하게 하자▼

우리나라 의원들은 법안 투표를 할 때 대부분 정당 보스의 뜻에 따르지만 미국 의원들은 당뿐 아니라 지역 주민의 의견까지 종합해 자신의 입장을 정한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주도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안은 리처드 게파트 당시 하원 원내총무를 비롯해 같은 민주당 의원 60%가 반대했지만 공화당 의원들의 찬성으로 하원을 통과할 수 있었다.

이처럼 교차투표가 가능한 것은 공직 후보자가 예비선거를 통해 정해지는 데다가 선거과정에서도 정당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낮아 의원들이 정당 지도부를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대신 선거과정에 각종 시민·사회단체 및 지역구민들의 요구를 상당부분 고려하게 된다. 시민·사회단체들은 회원들의 이익이 반영될 수 있도록 후보자들의 정책과 의회에서의 투표기록을 분석해 회원들에게 제공할 뿐 아니라 당선 혹은 낙선운동을 하기도 한다. 이런 일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보수와 진보가 대등하게 경쟁하고 있는 데다 이들 단체가 정부권력으로부터 철저히 독립해 시민의 자발적 참여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미국민주연대(ADA)과 미국보수연합(ACU)은 각기 ADA스코어와 ACU스코어라는 이념지수를 발표해 유권자들로 하여금 각 후보가 어떤 정치철학을 가지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환경행동위원회(EAC)는 선거마다 가장 ‘반환경적인’ 입장을 취한 의원들을 선정해 ‘더러운 12인(Dirty Dozen)’을 발표해 왔는데, 이들은 5번의 선거에서 52명의 의원을 선정해 그중 24명을 낙선시켰다. 전국보수주의자후원회도 1980년 선거에서 가장 진보적 성향을 보인 상원의원 6명을 선정해 낙선운동을 벌여 그 중 4명을 떨어뜨렸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정치활동위원회(PAC)를 결성해 지지 후보에게 선거자금을 제공하기도 하는데 상하원 후보자 전체 선거자금의 약 40%가 PAC의 기부금에 의존하고 있다. 미국은 시민·사회단체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비대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한 단체가 결성한 PAC가 한 후보에게 제공할 수 있는 자금의 한도를 5000달러로 제한하고 있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국제관계학

▼국고보조 잘 활용하자▼

정치자금의 국고보조는 기본적으로 정당의 정책개발을 돕고 유권자와 정치인간의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국고보조금 배분은 투명성과 공정성이 확보되지 않아 정치자금의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정치인의 도덕적 해이를 불러오기 일쑤다. 또 정책개발을 통해 유권자의 후원을 확보하겠다는 자립의지를 약화시키기도 한다.

미국 독일 등 정치 선진국은 소액 후원금과 소액 당비에 비례해 보조금을 줌으로써(매칭펀드 방식) 국고보조금을 국민의 정치참여를 고양시키는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독일처럼 소수정당에 좀더 유리한 배분방식을 사용함으로써 정치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추는가 하면, 미국처럼 당내 경선 즉 예비선거에도 국고보조금을 지원함으로써 당내 민주주의를 촉진하는 기폭제가 되도록 하고 있다.

미국은 정당활동에 대한 직접적인 국고보조는 하지 않는 대신 대선 예비선거 및 본선 후보자에 대한 지원과 각 당의 전당대회 경비를 지원한다. 특히 예비선거의 경우 각 후보자가 확보한 정치자금 기부자 1인당 250달러에 대해서만 일정액의 매칭펀드를 국고에서 주고 있다. 이에 따라 소수로부터 다액(多額)을 모금하는 것보다 다수로부터 소액(少額)을 모금하는 것이 국고보조를 더 많이 받는 길이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92년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2500만달러, 96년에는 2600만달러의 매칭펀드를 받았지만 앨 고어 전 부통령은 2000년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1500만달러밖에 받지 못했다. 이 같은 차이는 소액 기부자를 누가 더 많이 확보했느냐에 따라 발생한다.

독일은 국회의원 비례대표 지역명부에 대한 투표에서 0.5% 이상의 득표율을 올린 정당에 한해 국고보조금을 주는데 배분 방식에 있어선 500만표까지는 1표당 1.30마르크, 그 이상부터는 1마르크를 지급함으로써 작은 정당에 유리하게 돼 있다. 또 소액 당비 납부비율을 높이기 위해 1년에 기부자 1인당 6000마르크까지만 1마르크당 0.5마르크의 매칭펀드를 주고 있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국제관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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