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일과 꿈]이재웅/변화, 그 즐거운 생존전략

  • 입력 2003년 1월 8일 18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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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이면 다음커뮤니케이션이 창업된 지 8년이 된다. 그러나 회사로서 제대로 된 틀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창업한 지 4년쯤 되는 1999년 초였다. 당시 회사 동료도 100명을 넘어섰고 코스닥 등록을 하는 등 빠르게 회사로서의 틀을 갖춰나갔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의미 있는 일은 이사회가 제대로 구성되어 기능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외국인 사외이사와 영어회의▼

이 무렵 그전까지 경영진 중심으로 이뤄졌던 이사회를 사외이사 5명을 포함한 9명의 이사회로 개편하고 외국인 이사 3명도 처음으로 이사진에 참여시켰다. 처음 사외이사를 전체 이사의 과반수인 5명으로 하자고 제안했을 때 회사 내에서 걱정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의사결정을 빨리 해야 하는 것이 벤처기업의 생명인데 사외이사가 더 많으면 의사결정 속도가 늦어진다는 비판에서부터 경영권을 잃는 게 아니냐는 지적까지…. 하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그런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시도는 내가 최고경영자(CEO)로서 가장 잘 한 일이 아닌가 싶다.

사외이사가 과반수가 되니 경영진은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밖에 없다. 합리적이지 않은 의사결정으로는 사외이사를 설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대주주나 최고경영자가 의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사외이사를 설득하지 못하면 그 일은 진행될 수가 없다. 이런 의사결정구조 때문에 이사회가 열릴 때마다 경영진으로서는 긴장할 수밖에 없고 이사회에 상정된 안건에 대해 토의를 하다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위험에 대한 지적이나 보다 나은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한다. 또한 경영진이 빠지기 쉬운 모럴해저드의 유혹도 막아주는 좋은 방패가 된다. 누군가가 곤란한 청탁을 해오더라도 이사회의 구조와 사외이사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 이해하고 돌아선다. 만약 이런 이사회 구조가 아니었으면 들어주었어야 할 청탁이나 부탁이 얼마나 많았을까.

사외이사들은 경영진에게 부족한 전문성 보완에도 큰 도움이 된다. 특히 벤처기업은 경영진이 자기 분야를 제외하고는 상대적으로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사외이사들의 조언에서 큰 도움을 받는다. 반면 최고경영자가 주로 선임하는 경영진 위주의 의사결정은 신속할지는 모르겠으나 넓고 깊게 보는 데는 어려움이 따른다. 또 대주주나 최고경영자의 의사에 종속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 것을 보완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제도가 사외이사제도인 것이다.

우리 회사는 또 이사회를 영어로 진행한다. 이사 9명 중 3명이 외국인이기 때문이다. 이사회를 영어로 진행하고 일정을 조정하고 전화회의를 정착시키는 데에도 많은 노력이 들었다.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다. 외국에서 오랫동안 경력을 쌓고 현재도 외국에서 근무하고 있는 외국인 사외이사들이 한국환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지 않을지, 이사회를 영어로 진행하는 게 가능하기나 할 것인지…. 그러나 몇 번 해보니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외국인 사외이사가 한국 경영환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것이라는 우려는 오히려 글로벌스탠더드를 배우고 따라갈 수 있다는 기쁨으로 바뀌었다. 직원들이 참여하는 인사위원회나 사외이사들이 참여하는 감사위원회 등의 구성은 외국인 사외이사들이 아니었으면 도입할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을 일들이다.

▼투명경영 결국엔 ´모두의 藥´▼

이사진과 경영진을 비롯해 전 직원이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 변화를 즐겁게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기업투명성 확대라는 변화는 대기업이나 벤처기업 할 것 없이 경영진 및 최고경영자에게 짧게 보면 번거롭고 괴로운 일이겠지만 길게 보면 회사나 주주, 경영진 모두에게 이로운 것이다. 약이 입에 쓰지만 건강에는 도움이 되는 것처럼.

사실 돌이켜보면 우리는 기성세대가 할 수 없는 것을 도전하는 데 훨씬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었다. 젊으니까, 실패하더라도 다시 시도할 수 있으니까. 이런 시도들에 대해 되돌아볼 때는 선배 CEO들에게도 가끔은 벤처적 마인드를 갖고 모험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감히 권해보고 싶다.

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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