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정선이 본 ´한양진경´①]장안연우

  • 입력 2002년 4월 11일 17시 22분


《조선시대 최고의 화가 중 한 사람인 겸재 정선(謙齋 鄭敾·1676∼1759)은 한양(현재 서울)의 산과 강, 나무와 개울 등을 소재로 한 산수화를 여러 점 남겼다. 겸재의 그림에 나타난 서울의 옛 모습과 현재를 ‘겸재 그림 1인자’로 평가되는 최완수(崔完秀) 간송미술관 연구실장의 글을 통해 살펴본다. 이 글은 매주 금요일자에 실린다. 첫 회는 총론격이며 2회부터는 겸재의 한양과 현재의 서울을 곳곳에서 찬찬히 비교해본다.》

겸재 정선은 진경산수화풍(眞景山水畵風)의 창시자다. 진경산수화라는 것은 우리 국토의 자연환경을 소재로 하여 그 아름다움을 사생해 낸 그림을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은 늘 그렇게 있어 왔는데 어째서 겸재에 의해 그런 그림이 시작되었을까.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겸재가 살던 시기는 퇴계 이황(退溪 李滉·1501∼1570)과 율곡 이이(栗谷 李珥·1536∼1584)에 의해 우리 고유 이념으로 심화 발전된 조선 성리학이 사회를 주도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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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 중심의 세계관 속에서 우리가 세계 문화를 주도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았다. 우리보다 문화적으로 열등한 여진족이 청(淸)을 건국하여 중국 대륙을 여진화시켰다는 현실이 우리에게 이런 자신감을 확인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세계 문화의 종주국이라는 자존의식이 팽배하여 우리 자신을 긍정적 시각으로 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사람은 물론 풍속과 산천까지도 우리 것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자긍심이 생겨 우리 문화를 그렇게 이끌어가려 노력하였다. 그런 시기가 숙종(1674∼1720)부터 정조(1776∼1800)에 이르는 125년간이었다.

당연히 이 시기에는 문학도 진경시문학이 발전하였고 그림도 진경산수화와 풍속화가 출현하여 일세를 휩쓸게 되었으며 서예나 조각은 물론 음악까지도 모두 짙은 조선 고유색을 띠게 되었다. 그래서 이 시기를 진경시대라 부른다.

이 진경시대의 절정기인 영조 17년(1741년) 봄에 겸재가 당시 세계적인 문화도시로 자부하던 서울을 그의 독특한 진경산수화법으로 그려 놓은 그림이 이 ‘장안연우’이다.

봄을 재촉하는 이슬비가 촉촉이 내리는 날, 서울 장안을 육상궁의 뒷산쯤에 해당하는 북악산 서쪽 기슭에 올라가 내려다본 정경이다. 육상궁은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1670∼1718)의 사당으로 지금 청와대 서쪽 별관 서쪽의 궁정동에 그 일부가 남아 있다. 사적 149호인 이곳이 최근에는 일반에 공개된다고 한다.

연무(煙霧)가 낮게 드리워 산 위에서는 먼 경치가 모두 보이는 그런 날이었던 모양으로, 남산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멀리는 관악산 우면산 청계산 등의 연봉들이 아련히 이어진다.

겸재가 전반의 생을 보냈던 북악산 서쪽 산자락과 후반의 생을 산 인왕산 동쪽 산자락이 마주치며 이루어 놓은 장동(壯洞) 일대의 빼어난 경관을 눈앞에 깔면서 나머지 부분들은 연하(煙霞)에 잠기게 하여 시계 밖으로 밀어냄으로써 꿈속의 도시인 듯 환상적인 분위기를 고조시킨 서울 장안의 진경이다.

비록 남대문로와 종로, 을지로 일대의 번화가가 운무에 가리워 있다 하나 궁정동, 효자동, 적선동, 통의동 일대에서 동쪽으로는 광화문과 종로 초입 부근까지, 서쪽으로는 청운동, 옥인동, 필운동 일대에서 서울역사박물관이 들어선 경희궁 근처까지 표현하고 있어 당시 인구 18만명 남짓이 살던 한양의 진면목을 생생하게 실감할 수 있다.

무성한 숲 속에 싸여 천연의 경관과 조화를 이루면서 쾌적한 분위기를 만들어나간 선인들의 도시경영 실태를 이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 그 생활의 예지와 문화역량에 새삼 탄복을 금할 수 없다.

자연의 파괴와 무질서한 건축으로 천부의 미관을 되찾을 수 없이 망가뜨리고 있는 현대 문화의 오류는 이런 수준 높은 우리 전통문화의 역량에 대한 재인식을 통해 자각과 반성을 거치면서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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