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국대학③]교수까지 '내몫'투쟁

  • 입력 2002년 1월 14일 17시 46분


노조 출범식
노조 출범식
대학교수 A씨는 지난해 한 일간지에 교수노조 설립을 반대하는 글을 기고했다가 큰 곤욕을 치렀다. 교수노조에 동조하는 다른 교수들이 e메일 등을 통해 A교수를 원색적으로 공격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교수들이 보낸 글 중에는 논리적인 반박 주장도 있었지만 온갖 비방과 욕설 투성이여서 “이곳이 과연 상아탑인가”하는 회의가 들었다. A교수는 “교수노조에 대한 찬반 논의가 감정적으로 흐를 경우 전체 교수 사회의 분열과 갈등이 더욱 심각해질 것 같다”고 우려했다.

지난해 11월10일 결성된 ‘전국교수노동조합’(위원장 황상익·黃尙翼 서울대 의대 교수)이 대학 사회에 적잖은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관련기사▼

- [전문가진단]교권은 학문의 자유 의미
- 황상익 교수노조위원장

현재 노사정위원회가 교수노조의 필요성과 허용 여부에 대해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교수노조는 올해부터 실시되는 교수 계약제에 대한 반대운동을 벌이는 등 실제적인 투쟁에 돌입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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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노조는 지난해 출범 선언문을 통해 “교수들이 대학 개혁의 실질적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하는데 역량을 모을 것”이라며 “민주적 대학 운영구조의 확립과 대학 자치와 학문 자유의 구현, 교권과 교수신분 보장, 대학의 사회 기여 등을 추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관료 중심의 교육 정책과 사학 재단의 횡포를 막고 교수신분 보장을 통해 안정된 교육 개혁을 이루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교수노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현행법상 교수노조는 명백한 불법인데다 교육인적자원부가 노조가입 교수 징계 및 지도부에 대한 고발 등을 검토하는 등 강경한 입장이어서 마찰이 불가피한 실정이다.99년 1월 공포된 교원노조법은 적용 대상을 초중등교원에 한정하고 있다. 교수의 경우 국공립은 국가공무원법 66조, 사립대는 사립학교법 58조가 적용돼 노조결성이 금지돼 있다.

교육부는 지난해 말 교수노조 집행부에 속해 있는 서울대 전북대 상명대 등 10여개 대학에 “해당 교수에 대한 사실 조사를 벌여 임용권자인 총장이 법에 따라 조치하라”는 내용의공문을 보냈다.

이에 교수노조는 지난해 말 교수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해 관련법 개정을 국회에 입법청원하는 한편 교수노조 탄압 저지 투쟁에 돌입할 것을 천명했다.

교수노조측은 “미국은 국공립대의 60%, 영국은 6만5000명의 교수노조가 결성되는 등 여러 나라에서 교수노조가 교수 권익 옹호와 교육정책의 주체로서 권리와 의무를 행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교수노조가 몰고 올 파장에 대한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찮다. 명예와 자존심을 중시하는 교수들이 일반 노동자들처럼 노조활동을 할 경우 사회적 위상이 실추되고 대학을 대화가 아닌 ‘대결의 장’으로 만들어 결국 대학사회가 황폐화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교수협의회와 언론 기고 등을 통해 충분히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교수들이 노조활동을 벌인다는 것은 집단행동을 통해 기득권을 지키겠다는 발상이라는 비판도 많다.

연세대 김인회(金仁會·교육학) 교수는 “전문 지식과 식견을 가지고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전문가인 교수가 집단의 힘에 의지하려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대학법인협의회 송봉섭(宋鳳燮) 사무총장은 “교수노조 활동이 본격화되면 초중고교처럼 노조 소속 교사와 비노조 교사간의 갈등이 대학 사회에서도 재연될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현재 교수노조에 가입한 교수 숫자로만 보면 교수 사회에서 노조에 대한 호응도는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교수노조 출범 당시 참여한 교수는 1004명으로 국내 전체 교수 5만8000여명의 2%를 넘지 못했다. 출범 이후 약간의 교수들이 추가로 가입했지만 일부 교수가 개인 사정 등을 이유로 탈퇴해 노조 가입 교수 수는 크게 변동이 없는 상태다.

현재 교수노조 지회가 결성된 곳은 서울대, 서울시립대, 중앙대, 가톨릭대, 한신대, 전북대, 전남대, 조선대, 서원대 등 9개대이다.

그러나 지난해 9월 교수신문이 전국 279명의 교수를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3.8%가 ‘교수노조가 합법화하면 가입할 의사가 있다’고 대답했다.여론조사는 조사기관에 따라 내용이 달라 노사정위원회도 지난해 10월 교수노조 허용 여부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했지만 예민한 사안인 탓인지 조사 결과를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

노중기(盧重琦·한신대 교수) 교수노조 대외협력실장은 “현재 많은 교수들이 사학재단의 보이지 않는 압력을 받거나 신분상의 불이익을 우려해 가입을 망설이고 있다”고 말했다.

또 앞으로 각 대학에서 구조조정이 일어나고 계약연봉제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신분보장 문제가 쟁점화되면 교수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교수노조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서울대의 한 교수는 “평생 계약 노동을 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는 교수도 노조를 결성해야 한다는 생각한다”며 “전교조가 오랜 투쟁 끝에 합법화된 것처럼 교수노조의 합법화도 시간의 문제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교수노조 논의에서 당사자인 교수들 대부분은 “동료들 사이에 불필요한 오해를 사고 싶지 않다”며 침묵하고 있다.40대 초반의 한 교수는 “교수들 가운데 교수노조에 대해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히는 경우는 많지 않다”며 “교수 사회에서도 자신들의 문제가 걸린 사안에 대해서는 이성적인 논쟁이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양측의 주장이 평행선을 긋고 있는 것처럼 대학, 특히 교수사회는 교수노조 문제를 놓고뜨거운 한해를 보낼 것으로 보인다.

홍성철기자 sungchul@donga.com

<전국교수노조 관련 일지>

▽2001.4.14〓교수노조준비위 발기인대회(교수 617명 참여)

4.17〓교육부, 노조가입 저지 대학에 지시

4.25〓서울대 교수노조 준비위 결성

5.4〓서울 제주지역 준비위 발기인 총회

11.10〓교수노조 출범

12.3〓교육부, 교수노조 참여 교수 징계 지시

12.14〓교수노조 탄압에 대한 투쟁 선포

▽2002.1.1〓신규 임용교수 계약제 실시

1.7〓교수 계약연봉제 철회를 위한 전국교수투쟁본부 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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