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그리스와 유물반환 갈등에… 정상회담 전날밤 취소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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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총리 “모나리자 둘로 자른 격”
英이 떼간 파르테논 조각 반환 요구
발끈한 수낵, 정상회담 취소 통보
그리스 총리에 부총리와 회담 제의… 英언론 “상대방 모욕” 비판 잇따라

영국이 19세기 그리스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에서 떼어 간 대리석 조각상들인 ‘파르테논 마블스’ 반환 문제가 양국 정상의 신경전으로까지 비화했다. 정상회담을 코앞에 두고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가 조각상 반환을 촉구하자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돌연 회담을 취소했다. 제국주의 시절 거래나 약탈 등을 통해 들여온 외국 유물에 대해 해당국의 반환 요청이 이어지는 가운데 수낵 총리가 미초타키스 총리를 모욕해 영국의 국제적 위상을 위태롭게 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 “수낵이 그리스 총리 모욕” 지적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영국 런던 대영박물관에서 한 관람객이 ‘엘긴 마블스’로 불리는 파르테논 마블 조각상의 사진을 찍고 있다. 이 조각상은 영국이 19세기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에서 떼어간 일부분이다. 런던=AP 뉴시스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영국 런던 대영박물관에서 한 관람객이 ‘엘긴 마블스’로 불리는 파르테논 마블 조각상의 사진을 찍고 있다. 이 조각상은 영국이 19세기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에서 떼어간 일부분이다. 런던=AP 뉴시스
영국과 그리스 정상은 11월 28일 런던에서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미초타키스 총리가 이틀 전인 26일 영국 BBC 방송 인터뷰에서 파르테논 마블스 반환 문제에 대해 “비유하자면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 있는 ‘모나리자’를 반으로 잘라 그 절반을 영국에 전시하고 있는 것”이라며 “원래 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고 밝힌 것이 발단이 됐다.

이 발언에 격분한 것으로 알려진 수낵 총리는 회담 전날인 27일 밤 회담 취소를 그리스에 통보했다. 영국 총리실은 “그리스가 이번 회담에서 조각상 반환 문제를 거론하지 않기로 한 합의를 어겼기 때문”이라고 밝혔지만 그리스 측은 합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

영국은 28일 부총리와의 회담을 그리스 측에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리스 정부는 “갑작스러운 회담 취소는 무례하다”면서도 “그러나 수낵(총리)과의 다툼이 호혜적 양국 관계를 망치는 것은 원치 않는다”고 밝혔다. 수낵 총리는 29일 의회에서 정상회담 취소에 대해 “회담에서 미래를 위한 실질적 의제를 논하지 않고 과거사를 이슈화하고자 한 (그리스 측) 의도가 분명했다”고 해명했지만 그의 행태는 비판을 받고 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이날 사설에서 “조각상이 영국에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수낵 총리는 외교적 마찰 없이 입장을 밝힐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도 같은 날 사설에서 “유럽연합(EU) 탈퇴 이후 외교 상황이 녹록지 않은데도 수낵은 그리스를 모욕해 유럽 및 세계에서 영국의 위상을 위축시켰다”고 비판했다.

미초타키스 총리는 현지 매체 인터뷰에서 “이번 만남 취소에 긍정적인 면이 있다. 조각상 반환에 대한 그리스의 정당한 요청이 세계 여론에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됐다”고 말했다.

● “200년 가까운 환수 논쟁”


파르테논 마블스는 이집트 로제타스톤과 함께 대영박물관의 대표 소장품에 속한다. 파르테논 신전 외벽에 설치된 그리스 신화 속 주요 장면들을 묘사한 조각상들로, 대부분 기원전 5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스가 오스만제국 지배 아래 있던 1801∼1812년 주그리스 영국대사이던 토머스 브루스 엘긴 경(卿)이 영국으로 가져와 ‘엘긴 마블스’라고도 불린다. 당시 부서지지 않고 2300년 넘는 세월을 견딘 조각상 70여 점 가운데 33점을 떼어 간 것으로 알려졌다.

엘긴 경은 “(고귀한 유물을) 보존하기 위해 가져왔다”면서 이 조각상들을 자신의 저택에 보관하려고 했으나 부인과의 이혼으로 재정이 바닥나자 정부에 팔겠다고 내놨다. 유명 시인 조지 바이런 등은 당시 “반달리즘(문화재 파괴)”이라며 정부 매입에 반대했다.

그러나 영국 의회는 “엘긴 경이 오스만제국으로부터 합법적인 허가증을 받고 떼어 왔다”고 판단해 매입을 승인했고, 1816년 영국 정부는 3만5000파운드(현재 가치 약 250만 파운드·약 41억 원)에 사들여 이듬해부터 대영박물관에 전시했다.

1832년 오스만제국에서 독립한 그리스는 엘긴 경이 조각상들을 약탈해간 것으로 보고 1835년부터 반환을 요청했다. 다만 대영박물관 측은 1983년에 처음 그리스 측의 공식 반환 요청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영국#그리스#유물반환#정상회담#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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