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중동전쟁 확전 억제를 위해 이스라엘을 방문한 18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중국 베이징에서 약 3시간 동안 정상회담을 갖고 바이든 대통령을 압박했다. 특히 두 정상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내 병원 공습 사건에 대해 “분쟁이 끝나야 한다는 신호”라고 평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정상회담은 푸틴 대통령이 시 주석의 핵심 정책인 ‘일대일로(一帶一路)’의 10주년을 기념하는 정상포럼에 참석한 것을 계기로 이뤄졌다.
시 주석은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푸틴 대통령을 “오랜 친구(라오펑유·老朋友)”라고 부르면서 “10년 동안 42차례 만나 깊은 우의를 쌓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중국은 러시아와 함께 역사의 대세를 정확히 파악하고 세계 발전 흐름에 순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도 시 주석을 “친애하는 친구(도로고이 드루크·дорогой друг)”라고 칭하며 “현재 어려운 조건에서 긴밀한 외교정책 협조는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시 주석은 앞서 이날 정상포럼 기조연설에서 “이데올로기적 대립과 집단 정치 대결을 하지 않고 일방적 제재와 경제적 억압,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과 공급망 훼손을 반대한다”고 사실상 미국을 겨냥했다. 미국의 중국 억제 전략을 비판한 것으로 분석된다.
푸틴 대통령은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 상황에 대해 시 주석에게 자세히 알렸다”라면서 “미국과 서방이 공동으로 러시아를 위협하는 것은 중-러 상호작용만 강화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향해 “타인을 존중하고 타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훈수하기도 했다.
시진핑-푸틴 “우린 친구, 무역액 사상최대”… 美제재 우회 공조
[中 일대일로 정상포럼] 베이징서 올해 두 번째 정상회담 바이든, 중동 해법 궁지몰린 사이 중러 정상, 결속하며 중동에 구애
올해 3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정상회담을 한 지 7개월 만인 18일 중국 베이징에서 만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서로를 향해 “라오펑유(老朋友·오랜 친구)”, “도로고이 드루크(дорогой друг·친애하는 친구)”라고 부르며 우의를 과시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 간 전쟁의 해법을 찾느라 궁지에 몰린 사이 중국과 러시아는 더욱 밀착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일부에서는 “서방에 맞서기 위한 ‘정략결혼’ 성격”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 중동전쟁 두고도 ‘중-러 밀착’ 재확인
시 주석은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러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러시아와 지속적으로 협력하겠다는 뜻을 강조했다. 시 주석은 “중국과 러시아는 시종일관 양국 국민의 근본 이익에 기초해 충실하게 협력했다”면서 “앞으로 양국의 발전과 국제적 정의 수호, 세계 공동 발전에 힘을 합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또 “양자 무역액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해 공동으로 설정한 2000억 달러(약 270조 원)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도 했다. 이는 러시아에 대한 미국과 서방국들의 경제 제재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러시아를 위한 ‘제재 우회로’가 되고 있다는 점을 사실상 인정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푸틴 대통령도 “중국은 시 주석의 지도 아래 성공하고 있다”고 추켜세우면서 “러시아와 중국의 무역 거래액은 정말 인상적이다. 중국과 폭넓은 상호작용을 하게 돼 매우 기쁘다”고 화답했다.
이날 정상회담 분위기는 직전 만남이었던 3월보다 더욱 화기애애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에 대한 국제적 비난이 거세 중국과 러시아 모두 큰 부담을 안고 정상회담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국제사회의 관심이 중동전쟁에 쏠리면서 양국 운신의 폭이 넓어졌다. 또 이번 전쟁을 계기로 중동 국가들을 우군으로 끌어들여 미국과 서방에 대한 대응력을 더 높일 수 있다는 기대도 큰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과 두루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온 중국과 러시아는 이번 전쟁 발발 이후 친(親)이스라엘 행보를 보인 미국 등 대부분 서방 국가들과는 다른 목소리를 내왔다.
중국은 하마스의 기습 공격 이후 진행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보복 공습에 대해 “자위(自衛) 범위를 넘어섰다”고 비판했다. 러시아는 양측에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하면서 휴전을 유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중동 국가들의 호감을 사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 “서방에 맞서려는 정략결혼일 뿐”
푸틴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강한 중-러 결속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18일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의 경제 군사 영토 확장 사업) 정상포럼 기조연설에서 “일대일로가 러시아의 유라시아경제연합(EAEU) 구상과 조화를 이루며 더 성공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EAEU는 러시아가 유럽연합(EU)에 맞서 2015년 창설한 옛 소련권 국가들의 경제연합체다. 중국이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통해 미국의 경제 패권을 견제하고, 러시아가 EAEU를 통해 유럽에 맞서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또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우크라이나 문제에 점점 더 개별적으로 관여하고 있다”면서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장거리 미사일) 에이태큼스 공급은 우크라이나의 고통을 더욱 가중시킬 것”이라고 위협했다.
다만 중-러의 밀착 행보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푸틴 대통령으로선 일대일로를 통해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의 역할이 확대될 수 있다는 위험이 있고, 시 주석으로선 푸틴 대통령과 손잡을 경우 중국의 국제적 위상에 손상이 갈 것”이라며 “두 정상의 파트너십은 상호 신뢰에 뿌리를 두기보단 서방 압력에 맞서 싸우는 정략결혼과 같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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