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 제거’ 위협인가, 예고인가…우크라전 향방은?

  • 뉴시스
  • 입력 2023년 5월 5일 06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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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심장부를 파고 든 크렘린궁 무인기(드론) 공격 사건이 발생했다. 16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꽉 막힌 교착 국면을 극적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화와 평화의 방식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는 이번 사건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암살 미수 사건’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배후설 공방…암살 미수인가, 자작극인가

사건은 지난 3일(현지시간) 오전 2시30분께 발생했다. 드론 2대가 15분 간격으로 크렘린궁 상공에서 폭발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드론은 전자전 시스템(EWS)에 파괴됐다”고 밝혔다. 크렘린궁엔 푸틴 대통령의 관저와 집무실, 상원 등이 있다.

배후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서로 근거 없이 주장만 하고 있다. 미국은 말을 아끼고 있다.

러시아는 이 사건을 “우크라이나의 계획된 테러 공격이자 러시아 대통령의 목숨을 노린 암살 시도”로 간주했다. 러시아 수사위원회도 형사사건을 개시하면서 아예 ‘우크라이나의 테러 행위’로 못박았다. 러시아 의회와 외교라인 등도 저마다 우크라이나의 책임을 규탄했다.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크렘린궁은 다만 5월9일 전승절을 앞두고 이뤄졌다는 점을 주목했다. 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에 승리한 것을 기념하는 국가기념일이다. 매년 대규모 열병식과 기념행사로 군사력을 과시한다. 러시아 일각에선 우크라이나의 ‘대반격’ 시점을 이날로 추정해왔다. 일부 지역은 ‘안보 우려’를 이유로 열병식을 취소했지만 수도 모스크바에선 예정대로 진행할 계획이다. 해외사절단 참석도 예정돼 있다.

우크라이나는 정면 부인했다.

핀란드를 방문 중이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우리는 푸틴이나 모스크바를 공격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우리 영토에서만 싸운다”고 신속하게 반응했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대통령실 보좌관도 “우린 아무런 관련이 없다”면서 “러시아가 대규모 공격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 사건을 악용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미국은 그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말을 아끼고 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논평하거나 추측하는 것은 어렵다”고 했고, 커린 잔피에어 백악관 대변인은 “진실은 확인되지 않았다”면서 러시아의 ‘거짓 깃발 작전’(자작극) 가능성을 단정하기에도 이르다는 입장을 보였다.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러시아의 자작극일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우크라이나의 드론이라면 러시아가 최근 한층 강화한 여러 겹의 방공망을 뚫고 크렘린궁 상공까지 와서 극적인 폭발 장면까지 연출해주기 힘들었을 것이란 설명이다. 러시아 측의 즉각적이고 조율된 듯한 대응도 그 근거 중 하나로 꼽았다.

이 외에 우크라이나 추종 세력의 소행일 가능성도 제기됐다. 일리야 포노마레프 전 러시아 의원은 “파르티잔 그룹 중 한 곳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2014년 러시아의 크름반도 강제 병합에 유일하게 반대 투표했던 인물이다.

러시아 보복 예고…“젤렌스키 제거” 언급도

푸틴 대통령은 무사했다. 당시 크렘린궁에 없었고, 이후 모스크바 외곽 노보-오가료보 관저에서 일정을 소화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러시아는 보복을 예고했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러시아는 보복할 권리를 갖는다”고 강조했고, 뱌체슬라프 볼로딘 국가두마(러시아 하원) 의장은 “우크라이나 테러 정권을 저지하고 파괴할 수 있는 무기 사용을 요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더 나아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젤렌스키와 그 일당을 물리적으로 제거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며 암살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는 “‘무조건적인 항복 문서’에 서명하는 데에도 그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고까지 했다.

메드베데프 부의장은 푸틴 대통령을 대신해 강경 발언을 도맡고 있지만, 젤렌스키 대통령 “제거”를 공공연하게 입에 올린 것은 이례적이다.

이에 따라 젤렌스키 대통령의 안전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전쟁 발발 직전 미국 정부로부터 ‘해외 대피’를 돕겠다는 제안을 받았지만 이를 거절한 것은 유명하다. 그는 미국 측에 “싸움이 벌어지는 곳은 이 곳”이라며 “내가 필요한 것은 탈 것(ride)이 아닌 탄약”이라고 했었다.

그는 이후 대부분 수도 키이우에 머물며 전쟁을 진두지휘했고 최전선 지역을 방문해 직접 병사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미국과 폴란드, 영국, 그리고 최근 핀란드와 네덜란드 등 해외를 일부 방문하기도 했지만 안전 상 문제로 모두 극비리에 진행됐다. 이달 13~14일 독일도 방문할 계획인데, 일정이 사전에 유출되면서 변동될 가능성도 있다.

‘대화’ 아닌 또 다른 종전 해법?…우려 고조

러·우 전쟁이 조만간 끝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 등은 전쟁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하고 있다.

평화협상 조건을 내건 요구사항들을 서로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지난해 강제 병합한 4개 지역(루한스크, 도네츠크, 자포리자, 헤르손)은 물론 2014년 합병 후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크름반도까지 모두 반환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는 이를 받아들일 기미가 없다.

이것은 그간 중재를 시도했던 전 세계 많은 국가와 국제기구들의 노력을 좌절시켰다. 최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중재 노력이나 브라질의 중재국 모임이 사실상 큰 기대를 받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우크라이나는 ‘봄철 대반격’이란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서방도 우크라이나가 협상에서 우위를 가질 수 있도록 더 많은 무기를 지원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마찬가지로 러시아 역시 최근 공세를 강화하고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 우크라이나를 무력으로 굴복시키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 현실적인 분석이다.

이런 가운데 ‘제거’를 입에 올린 것은 러시아가 적의 수장을 베는 식으로 판을 흔들려 하는 것 아니냐는 암울한 추측을 낳게 한다. 다만 국제사회의 비난과 제재 등 후폭풍이 예상되는 만큼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이런 점에서 이것은 대규모 공세를 위한 경고성 발언 정도로 해석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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