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 키운 대만… “국가 지켜주는 건 美무기 아닌 반도체”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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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MC의 나라’ 대만]
대만 ‘반도체 벨트’를 가다

대만 신주현 주둥향 신주과학단지 공업기술연구원(ITRI)에서 연구원이 반도체 웨이퍼를 살펴보고 있다. 공업기술연구원 제공
대만 신주현 주둥향 신주과학단지 공업기술연구원(ITRI)에서 연구원이 반도체 웨이퍼를 살펴보고 있다. 공업기술연구원 제공
“우리를 (중국으로부터) 지켜주는 것은 미국의 무기가 아니라 이 반도체 공장들입니다.”

지난달 27일(현지 시간) 대만 타이베이에서 버스로 한 시간가량 떨어진 신주과학단지에서 만난 천수주(陳淑珠) 과학단지 부국장은 대만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반도체를 국가안보 최전선으로 삼고 정부가 전폭 지원하고 있다는 뜻이다. 대만은 전 세계 반도체의 62%, 최첨단 반도체의 92%를 생산한다. 미국은 이런 대만을 중국의 침공으로부터 보호하겠다는 뜻을 강조하고 있다.

대만 정부가 1980년 건설한 신주과학단지의 면적(14km²)은 서울 동대문구와 맞먹는다. 반도체 등 첨단기술 분야 기업 600여 곳이 들어서 있다. 상주 직원이 16만 명이다. 대만 정부는 대만 북부∼서부∼남부에 이런 첨단과학단지 13곳을 ‘반도체 벨트’처럼 건설했다. 연말까지 이곳에서 총 800조 원이 나올 것이라고 대만 경제부가 밝혔다. 대만 국내총생산(GDP)의 약 66%다.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 TSMC도 신주과학단지에 본사와 연구개발(R&D)센터를, 중부와 남부 과학단지에 각각 반도체 제조공장을 두고 있다.

대만 정부는 반도체 기업들과 협력해 160조 원을 투입해 북부 신베이부터 남부 가오슝까지 반도체 공장 20곳도 추가 건설하고 있다. 대만 경제부는 삼성전자도 개발에 뛰어든 차세대 메모리반도체 MRAM(자기저항메모리) 개발을 위해 TSMC를 지원하겠다고 지난달 발표했다.

대만 “반도체 최우선”… 기업에 4조원 지원해 33개 신기술 개발


대만 ‘반도체 벨트’ 르포… “차세대 메모리 MRAM 개발 주도”
대만 정부, TSMC 적극 지원 밝혀… 새 웨이퍼 공장 2024년 가동 예정

현지언론 “삼성 이기려 TSMC 지원”… 정부-기업, 공장 20곳 추가 건설중


“반도체를 (정책의) 최우선에 놓고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대만 타이베이의 국가발전협의회(NDC) 청사에서 만난 궁밍신(공明흠) NDC 장관은 대만 정부의 반도체 정책을 이렇게 요약했다. NDC는 대만의 장기 경제 발전 계획을 담당한다. 궁 장관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써서 우리 반도체 공급망을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강조했다.
○ “대만 정부, 삼성 이기려 TSMC 지원”
지난달 대만 경제부와 대만 공업기술연구원(ITRI)은 “TSMC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의 차세대 메모리인 자기저항메모리(MRAM)를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MRAM은 기존 메모리와 달리 연산과 데이터 저장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어 지금의 메모리보다 읽기, 쓰기 성능이 20%가량 높다. 대만 경제부는 자국 반도체 기업들에 2019년부터 올해까지 4조 원을 투자해 총 33개의 신기술 개발을 진행 중이다. 그중 핵심 기술이 MRAM이다. 삼성도 이 반도체 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ITRI는 대만이 첨단기술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1974년에 정부 주도로 설립됐다. 당시 대만의 주력 수출품은 파인애플 등 농작물이었다. 연구 인력만 6000명을 보유한 ITRI는 1987년 TSMC가 설립될 때 그 전까지 축적한 반도체 기술을 전수하며 ‘인큐베이터’ 역할을 했다. 대만 경제지 비즈니스넥스트는 “대만 정부가 삼성과의 패권 다툼에서 이기기 위해 TSMC와 손잡았다”고 전했다.

대만 정부는 반도체 생산에 핵심적인 안정적 전력 공급까지 책임지겠다는 자세다. 천수주(陳淑珠) 대만 신주과학단지 부국장은 기자에게 “반도체 생산공장은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가장 중요하다. 자연재해에도 전력이 끊겨선 안 된다”며 “정부가 이를 책임지고 있다”고 말했다.
○ 야구장 40개 면적 공장 20곳 추가 건설

대만 반도체 핵심 인력과 기업들이 상주하는 신주과학단지 등 과학단지 13곳도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 건설했다. 황위싱(黃玉興) 신주과학단지 부연구원은 “허허벌판에 정부가 먼저 땅을 다지고 도로를 깔고 건물을 지었다. 그리고 기업을 불렀다”고 말했다. 9일 대만 경제부 발표에 따르면 상반기(1∼6월) 이곳에서 나온 매출이 400조 원에 달한다.

이뿐 아니라 대만 정부와 기업이 대만 북부∼서부∼남부에 건설 중인 반도체 공장 20곳이 완공되면 대만의 반도체 생산 능력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추가 건설 공장들의 총면적은 약 200만 m²로, 야구장 40개 규모에 달한다. 중서부 타이중에는 2nm(나노미터) 최첨단 반도체를 생산하는 공장이 들어설 예정이다. TSMC는 남부 가오슝시에 새 웨이퍼 공장을 지어 2024년부터 가동을 시작할 계획이다.
○ “파운드리 전략으로 애플·인텔 사로잡아”
대만 관계자들은 자국 반도체 산업의 강점을 단가(가격 경쟁력)와 수율, 두 가지로 지목했다. 수율은 웨이퍼 한 장에서 만든 반도체 중 불량품을 제외한 양호한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TSMC가 선택한 ‘완제품을 만들지 않고 부품만 생산한다. 고객사와 경쟁하지 않는다’는‘오직 파운드리’ 전략은 최근 각광받고 있다. 천 부국장은 “파운드리 전략이 우리와 한국 삼성전자의 차이점”이라며 “이 때문에 애플, 인텔 등 거대 기술 기업들을 고객으로 붙잡아 둘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신주=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대만#반도체#ts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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