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이슈/하정민]깨지지 않는 中 지도부의 유리 천장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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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산당 최고지도부인 25명의 정치국 위원 중 유일한 여성인 쑨춘란 부총리가 지난달 9일 국무원 회의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대책에 관해 발언하고 있다. 72세인 그가 16일부터 시작되는 제20차 공산당 당대회에서 정치국원 
직책에서 물러날 가능성이 높아 중국 수뇌부의 성비 불균형이 더 심각해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베이징=신화 뉴시스
중국 공산당 최고지도부인 25명의 정치국 위원 중 유일한 여성인 쑨춘란 부총리가 지난달 9일 국무원 회의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대책에 관해 발언하고 있다. 72세인 그가 16일부터 시작되는 제20차 공산당 당대회에서 정치국원 직책에서 물러날 가능성이 높아 중국 수뇌부의 성비 불균형이 더 심각해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베이징=신화 뉴시스
하정민 국제부 차장
하정민 국제부 차장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운 마오쩌둥은 “하늘의 절반은 여성이 떠받친다”고 했다. 헌법에도 성평등을 명문화했다. 그러나 73년이 흐른 지금 정치권력의 두꺼운 유리천장을 보노라면 현재의 중국이 당시와 얼마나 달라졌는지 의문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3연임과 차기 지도부가 확정되는 제20차 중국공산당 당대회가 16일 개막하지만 차기 지도부 물망에 오를 만한 여성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 특히 그렇다.

건국 후 지금껏 국가주석과 총리를 포함한 최고지도부 7인을 뜻하는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에 오른 여성은 없다. 상무위원은 ‘형불상상위(刑不上常委)’, 즉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지니지만 어떤 여성도 이 문턱을 넘어서지 못했다. 상무위원 7인과 차기 상무위원이 될 수 있는 18명의 후보군을 합한 25명의 공산당 정치국 위원이 된 여성도 이제껏 6명에 불과하다.

마오 시절에는 그의 네 번째 부인으로 막강한 베갯머리 권력을 휘두른 장칭(江靑), 마오 시절의 2인자 저우언라이 전 총리의 부인 덩잉차오(鄧穎超), 마오의 측근이었으나 정적이 된 린뱌오 전 국방부장의 아내 예췬(葉群)이 정치국원이 됐다. 셋 다 혁명에 가담했으나 남편 후광 없이 오롯이 본인 능력만으로 그 자리에 올랐다고 보긴 어렵다.

이후 오랫동안 여성 수뇌부가 없다가 2002년 우이(吳儀) 당시 대외무역담당 부총리가 등장했다.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등에 역할을 담당했고 미국과의 각종 협상에서 대쪽같은 태도를 유지해 ‘철의 여인’으로도 불린 그는 자력으로 정치국원에 오른 최초의 여성으로 꼽힌다. 2007년에는 칭화대 출신의 전형적 기술관료 류옌둥(劉延東) 전 부총리, 2012년 시계공장 여공 출신의 입지전적 인물 쑨춘란(孫春蘭) 부총리가 25인에 포함됐다.

현재 72세로 방역 정책 등을 관장하는 쑨 부총리는 지도부의 암묵적 정년인 68세 제한에 따라 이번 당대회에서 정치국원에서 물러날 것이 확실시된다. 그의 후임자가 여성이 될지 알 수 없고 후보군이 많지도 않다. 소수민족 바이(白)족이며 31개 성(省) 당서기 중 유일한 여성인 천이친(諶貽琴) 구이저우성 서기 등의 발탁 가능성이 거론되나 설사 다른 여성이 쑨 부총리를 대신해도 정치국 25명 중 1명, 즉 4%라는 지도부의 낮은 여성 비율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번 당대회에서 25명 중 여성이 전무한 정치국이 출범할 수 있으며 유리천장 논란 또한 불거질 것으로 예상했다.

시 주석의 거센 반대파 탄압과 여론 통제, 깊어지는 경기 둔화의 그림자, 격화하는 미중 및 양안 갈등 등 중차대한 현안과 비교하면 지도부의 성비 불균형이 다소 한가로운 의제로 보일 여지도 있다. 그러나 중국의 고령화와 인구 감소가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중국을 좌지우지하는 공산당 수뇌부의 극심한 남성 편중은 각계의 유리천장 강화로 이어져 사회 전반의 활력과 생산성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리청(李成)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이사는 1950년대 초 11.9%였던 여성 공산당원의 비중이 지난해 28.8%로 대폭 늘었고 여성이 중국 인구와 노동력의 각각 48.7%, 44.5%를 차지하는데도 모든 부문에서 여성이 심각하게 과소대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만에서는 최초의 여성 총통 차이잉원(蔡英文)이 2016년부터 집권 중이고, 영국 이탈리아 유럽연합(EU) 등이 모두 여성 최고권력자를 뒀거나 맞을 준비를 하고 있으며, 미국의 권력서열 2, 3위인 부통령과 하원의장이 모두 여성임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19세기 영국 정치인 겸 역사가 존 액턴은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Absolute power corrupts absolutely)”는 말을 남겼다. 종신집권을 꿈꾸는 시 주석은 물론이고 남성 일색인 중국공산당에도 해당하는 말일 것이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중국 지도부#깨지지 않는 유리 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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