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것이 왔다’…전쟁 제2막 돈바스 전투, 러 격퇴 가능할까

  • 뉴스1
  • 입력 2022년 4월 21일 13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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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NYT)가 시각화한 우크라이나 동부 주요 전선. NYT 온라인 보도화면 갈무리.
뉴욕타임스(NYT)가 시각화한 우크라이나 동부 주요 전선. NYT 온라인 보도화면 갈무리.
러시아의 침공으로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이 두 달째로 접어든 가운데 수도 키이우 함락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정부 붕괴를 이루지 못한 러시아군이 동부 돈바스 전투에서 ‘전쟁 제2막’을 시작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도네츠크·루한스크 2개주(州)를 일컫는 돈바스 지역은 2014년 크림반도 사태 이후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분리주의 반군과 정부군이 8년간 내전을 벌여온 유럽의 ‘화약고’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서 러군의 돈바스 진격은 ‘올 것이 온 셈’이다.

러시아계 주민이 많아 ‘노어 통용 지역’으로 분류되는 돈바스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지난 2월24일 침공 개시 직전 밝힌 이번 전쟁 명분이기도 하다. 푸틴은 돈바스에서 러시아계에 대한 집단학살(제노사이드)이 자행됐다고 주장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돈바스를 넘겨주더라도 러시아가 침공을 멈춘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에서 휴전을 위해 돈바스 포기를 협상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에 이번 전투가 전쟁의 향방을 가를 승부수라는 분석이 나온다.

◇동남북부 에워싸는 러군…동서 분단 전술 선명

2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현재 우크라이나 동남북부 전선 여러 방향에서 우크라군을 에워싸기 위한 러시아군의 의도가 분명해지고 있다. 아직 대규모 지상전이 시작된 건 아니지만 ‘일촉즉발’인 것으로 분석된다.

주요 전선은 크게 4곳이다. 우선 북동부 하르키우주 소도시 이지움 인근에 대규모로 집결한 러시아군은 남하해 도네츠크주의 인구 17만 규모 주요 도시 크라마토르스크 함락을 꾀하는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최근 우크라이나군이 하리키우 동부 러군 점령지들을 잇달아 탈환하기 시작하면서 러군의 이지움 장악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북동부 두 번째 전선은 루한스크주의 행정 중심지 시에비에로도네츠크다. 최근 러군에 함락된 크레민나 바로 아래에 위치해 있다. 크레민나에서 크라마토르스크까진 불과 50㎞ 거리.

기존 반군 장악 지역인 도네츠크시에도 러군이 대규모로 집결하고 있는데, 이곳 부대도 크라마토르스크를 향해 북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크라마토르스크를 노리는 움직임이 전방위적으로 포착된 것이다.

크라마토르스크는 기계 공업이 발달한 철도 교통 요충지로, 돈바스 내전에서 도네츠크 주도 도네츠크가 반군에 넘어간 뒤부터 임시 주도로 기능해왔다. 러군이 크라마토르스크를 노리는 이유로는 철도망을 통한 서방의 무기 보급로 차단 구상이 제기된다.

현재 우크라군은 크라마토르스크로 향하는 도로 검문을 강화하고 예상 공격 경로 부근 방어를 강화하고 있다.

남부에서는 드니프로강을 끼고 있는 자포리지아주와 도네츠크 사이에서 4번째 전선이 부각되고 있다. 몇 주간 전투가 계속 됐는데, 마리우폴 함락이 확실해질 경우 현지 부대가 대거 이동해 지원할 것으로 예상된다.

드니프로강은 러시아와 벨라루스에서부터 흘러 우크라이나를 동서로 가로지른 뒤 흑해로 빠져나간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 할양을 노릴 경우, 드니프로강 이동 지역 어딘가에서 분단선이 그어질 것이란 관측이 계속 제기돼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지난 2월24일 전방위적으로 이뤄졌지만 전쟁 두 달 만에 주요 전선이 동남북부로 축소됐다. 결국 우크라이나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드니프로강 이동지역 일부가 러시아손에 넘어가는 식으로 전쟁이 종결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 News1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지난 2월24일 전방위적으로 이뤄졌지만 전쟁 두 달 만에 주요 전선이 동남북부로 축소됐다. 결국 우크라이나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드니프로강 이동지역 일부가 러시아손에 넘어가는 식으로 전쟁이 종결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 News1

◇만만찮은 우크라군…정예 병력 7만 명 방어 중

돈바스와 그 인근이 러군의 핵심 군사목표로 떠올랐지만, 키이우 함락이 쉽지 않았듯 이번 전투의 승패 역시 두고봐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BBC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이번 전쟁 발발 직후 동부 지역에 연합군작전(JFO)을 수행하는 10개 여단을 배치했는데, 이들은 훈련과 장비면에서 우크라이나 최정예 병력들로 구성됐다.

영국왕립합동군사연구소의 리서치 애널리스트 샘 크랜니-에반스는 “우리는 아직 우크라이나군이 얼마나 강한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우크라군 전력은 시간이 갈수록 지원병이 늘어 확대되고 있다.

독립 항공방위컨설팅업체인 로찬 컨설팅의 콘라드 무지카 대표는 “우크라군의 주요 목표는 러시아군에 최대한 손실을 입히는 것으로, 비대칭 전술을 사용해 더 큰 전투를 막을 수 있다”고 봤다.

미 정보당국은 최근 우크라이나가 동부 전선에 전술그룹 11개 부대를 추가 배치해 총 76개의 전술그룹부대가 이 곳을 지키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는데, 이들 부대 규모는 각각 700~900명 수준이다.

즉, 7만명 안팎의 우크라이나 최정예 병력이 러시아의 대규모 공세에 대비해 동부 전선을 철통같이 지키고 있는 것이다.

킹스칼리지런던의 트레시 저먼 분쟁안보 교수는 “우크라이나 동남북부는 통제하기엔 큰 영토”라며 “또 이곳의 지리적 복잡성 역시 과소평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는 이미 지금도 러시아군의 사기가 많이 떨어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돈바스 전쟁’ 의미…뺏기고 휴전시 승자는 누구?

미 경제방송 CNBC는 전문가들을 인용, 돈바스 전투가 이번 전쟁의 승패를 가를 수 있다면서 앞으로 몇 주 혹은 몇 년 사이에 러시아 영토의 경계가 달라질 수 있다고 관측했다.

외교정책연구소 연구원 막시밀리안 헤스는 “돈바스 전투 진행 양상이 드니프로강 이동 지역에서 우크라이나가 얼마나 넓은 영토를 남길지 결정할 것”이라면서 “(크림반도 때와 같은) 병합이 푸틴의 장기 목표란 점은 분명하다고 봤는데, 그 병합이 얼마나 많은 부분이 될 지가 문제”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돈바스를 우크라이나에서 ‘해방’ 시키는 게 목표라고 밝혀 왔지만, 러시아의 목표가 여기서 그칠 것이라고 믿는 전문가는 없다. 러시아와 국경을 접한 돈바스는 석탄 매장량이 풍부하고 우크라이나의 공업지대로, 러시아는 내전 기간 줄곧 돈바스 주민들에게 러시아 여권을 발급해왔다.

오는 5월9일은 러시아군이 1945년 나치 독일을 격퇴한 것을 기리는 승전기념일인데, 푸틴 대통령이 돈바스를 승전물로 승리 선언을 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루한스크 지역에 인민공화국 수립을 자처한 반군 지도자는 해방 이후 주민투표를 열어 러시아 귀속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돈바스를 향한 러시아의 목표는 꽤 노골적이며, 이 경우 우크라이나 분단이 정말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이 경우 이번 전쟁은 정말 러시아의 승리로 종결될까? 수도 키이우는 함락되지 않았고, 젤렌스키 정부도 이곳에서 건재를 과시하고 있는데도?

미 전쟁연구소(ISW)는 러시아군이 동부의 우크라이나군 진지를 결국은 약화시킬 수 있겠지만, 높은 비용을 지불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고 BBC는 전했다. 소위 ‘이기고도 진 전쟁’ 시나리오다.

반면 영국왕립합동군사연구소의 크랜니-에반스는 “우크라이나군이 잘 조직되고 적절히 장비가 지급되면 이번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돈바스를 뺏기고 전쟁이 끝날 경우 우크라이나 입장에서 정말 승리가 될지는 의문이다.

크랜니-에반스는 “우크라이나라는 나라가 존속하게 돼 이겼다고 해도 돈바스를 완전히 잃는다면 그게 정말 승리이고 평화가 영원히 지속되겠느냐. 아니면 10년 뒤 또 다른 전쟁을 치러야 하는가”라고 반문하며, “(돈바스 전투는) 우크라인에게 걸린 게 많다”고 덧붙였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리는 영토의 한 점(every metre)을 지켜내기 위해서라도 싸울 것”이라며 전의를 다지고 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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