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0억대 요트 압류하고 자산 동결…푸틴 돈줄 ‘올리가르히’ 정조준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4일 13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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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요트 - 프랑스 정부 배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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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서방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이자 신흥 재벌인 ‘올리가르히’(oligarch)를 정조준했다. 사전적으로 ‘소수에 의한 지배’를 뜻하는 올리가르히는 러시아에서 정치적 영향력이 높은 재벌과 관료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이들은 주로 구(舊)소련 시대 개혁·개방, 또 1991년 소련 붕괴 뒤 민영화 과정의 혼란기를 틈타 부를 거머쥐었고, 푸틴의 집권 뒤에는 그의 측근 및 이너서클로 분류된 재계 인사들이 신흥 올리가르히로 자리를 단단히 잡았다. 이들은 크렘린과 결탁해 푸틴을 정치적으로 지지하고 그 대가로 암암리에 혜택을 받는 정경유착의 표본을 보여준다는 지적을 받았다. 미국 등 서방은 올리가르히가 푸틴에 우크라이나 침공을 위한 경제적 자원을 제공하는 만큼, 전쟁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 ‘철강왕’ 등 푸틴 이너서클 제재


바이든, 취임 후 첫 국정연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1일(현지 시간) 워싱턴 의회에서 취임 후 첫 
국정연설을 하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장기적으로 계속해서 큰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왼쪽)과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뒤에서 기립 박수를 치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바이든, 취임 후 첫 국정연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1일(현지 시간) 워싱턴 의회에서 취임 후 첫 국정연설을 하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장기적으로 계속해서 큰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왼쪽)과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뒤에서 기립 박수를 치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3일(현지 시간) 러시아의 올리가르히 19명과 그들의 가족 및 측근 47명에 대해 비자 제한 및 자산 동결 등의 제재를 단행했다. 백악관이 이날 언급한 제재 대상 중 가장 1순위로 거론한 사례는 러시아의 철강왕 알리셰르 우스마노프(69)다. 러시아의 광물업체 메탈로인베스트의 창업자인 그는 블룸버그 기준 195억 달러(약 23조6000억 원)의 자산을 보유한 인물이다. 푸틴 대통령과도 상당히 가까운 사이로 최근 유럽연합(EU)의 제재 리스트에도 올랐다. 독일은 그의 시가 6억 달러(7260억 원) 초호화 요트를 압류하기도 했다.

이번 제재에는 러시아 건설회사 SGM 그룹 소유주인 아르카디 로텐베르그(71)도 포함됐다. 12살 때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 무술인 삼보를 같이 했으며, 이후엔 그와 유도 연습도 했을 정도로 푸틴과 ‘절친’이다. 그는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때 도로 등 70억 달러 규모의 공사를 수주하기도 했다. 또 ‘푸틴의 요리사’로 불리는 사업가 예브게니 프리고진(60)도 리스트에 포함됐는데, 그가 운영하는 용병 회사 와그너그룹은 최근 블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암살하라는 지시를 받고 용병들을 침투시킨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밖에 소련 정보기관인 KGB 요원 출신으로 푸틴 대통령과 오랜 친분이 있는 세르게이 케메조프(70), 송유관 업체 트랜스네프트를 운영하는 니콜라이 토카레프(72) 등도 제재 대상에 올랐다.

백악관은 “이들은 러시아 국민들을 희생시키면서 부를 쌓았고 일부는 자신의 가족들을 고위직으로 끌어 올렸다”며 “러시아의 가장 큰 기업의 꼭대기에 앉아 있는 이들은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원하기 위해 필요한 자원을 제공한 책임이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이와 함께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도 “푸틴의 허위 선전을 퍼뜨리는 최고위직”이라면서 제재 대상에 포함시켰다.

● 제재 효과 있을까


이런 거듭된 제재의 여파로 러시아 부호들의 재산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CNBC방송은 이날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를 인용해 최근 몇 주 동안 러시아 상위 20대 부자들의 자산이 800억 달러(96조8000억 원) 가량 증발했다고 보도했다. 이들의 총자산 3분의 1에 가까운 규모다. 러시아 부자들의 자산이 줄어드는 것은 올리가르히에 대한 서방 제재 및 자산 압류 조치, 러시아 루블화의 폭락 등이 원인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이런 미국과 서방의 노력이 뜻하는 결과를 내지는 못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리가르히의 해외 자산들을 압류한다고 해도 이들의 자산은 지인 이름 또는 페이퍼 컴퍼니의 이름으로 돼 있어서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또 이미 일부 러시아 재벌들은 서방의 압류를 피하기 위해 자산들을 안전한 도피처로 옮기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이들은 자신의 호화 요트들을 서방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몰디브나 몬테네그로 등으로 이미 이동시켰다. 푸틴 대통령 역시 자신이 소유한 호화 요트를 발트해 유역의 러시아 역외 영토 칼리닌그라드 항구에 정박시켜놨다고 CBS방송이 위성업체의 사진을 입수해 보도했다. 이곳은 러시아의 핵무기가 배치돼 있는 고도의 군사시설로 서방의 제재로부터 안전한 곳으로 평가된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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