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UAE 관계 정상화 합의…트럼프 “3주 안에 백악관서 서명”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14일 22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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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의 적’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앙숙’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UAE)가 최초로 외교 관계 정상화에 합의했다. 이 역사적 합의를 중재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역시 11월 3일 대선을 앞두고 ‘외교 달인’ 면모를 과시했다. 하지만 이란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격렬히 반발하고 있어 당장 중동 정세가 안정을 찾을지 불투명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13일(현지 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을 열고 “이스라엘, UAE와 ‘에이브러햄 협정’을 체결했다. 엄청난 돌파구이자 역사적 평화협정”이라고 밝혔다. 협정 이름은 기독교(미국), 유대교(이스라엘), 이슬람교(UAE)의 공통 조상 ‘아브라함’의 영어식 표현이다. 그는 “향후 3주 안에 양국 지도자를 백악관으로 초대해 합의서에 공식 서명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날 합의는 트럼프 대통령,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셰이크 무함마드 빈 자예드 UAE 아부다비 왕세자 등 3개국 정상의 공동명의 형태로 발표됐다. 네타냐후 총리는 “역사적인 날”이라는 트윗을 올렸고 무함마드 왕세자는 “새 로드맵을 마련했다”고 반겼다. 외교부 대변인은 14일 “한국도 환영한다. 이번 합의가 지역 내 안정과 평화 정착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 후 이집트, 요르단과 관계를 맺었지만 걸프만 이슬람 국가와 손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UAE 역시 1971년 건국 후 최초로 이스라엘과 협력했다. 양국은 투자, 관광, 안보, 기술, 에너지 등 각 분야에서 협력하고 양국을 오가는 직항 비행기도 띄우기로 했다. 대사관도 곧 개설한다.

줄곧 이란의 핵무기 개발에 위협을 느껴 온 이스라엘은 핵시설 선제 타격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걸프만 수니파 국가의 양대 맹주인 UAE 역시 이란 견제가 절실했다. 특히 이란이 세계적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해 UAE 교역에 타격을 미칠 것이란 불안감이 컸다. 양측 모두 이란 견제라는 소기의 목적을 상당 부분 달성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중동 허브 아부다비와 두바이를 모두 보유한 UAE는 정보기술(IT), 군사 강국 이스라엘과의 교류로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게 됐다.

대선이 80여 일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야당 민주당의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 밀리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도 판세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지지부진한 북한 비핵화 협상, 미중 갈등 등으로 비판받았다는 점을 의식한 듯 “이번 합의를 에이브러햄 협정 대신 트럼프 협정으로 부르고 싶지만 언론이 반대할 것”이라고 농담했다. 또 “내가 아니었다면 북한과 전쟁을 했을 것”이라는 발언도 되풀이했다.

유대계인 대통령의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보좌관은 이번 합의를 위해 18개월간 매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날 대통령 옆에서 “더 많은 관계 정상화를 이끌어 내겠다”고 밝혀 사우디, 바레인, 오만 등 친미 성향 걸프만 아랍국이 추가로 관계 정상화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했다. 특히 수니파 맹주인 사우디가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를 맺으면 중동을 넘어 국제 질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합의에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의 영토분쟁 지역인 요르단강 서안에 대한 추가 합병을 중단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네타냐후 총리는 TV 연설을 통해 “합병 계획은 아직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고 말해 불씨를 남겼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무장정파 하마스 모두 한목소리로 “UAE가 팔레스타인을 배신했다. 우리에 대한 공격이자 반역”이라고 비난했다.

이란 외교부와 혁명수비대 역시 “역내 긴장을 고조시키는 수치스러운 행위다. 유대주의자와 손잡은 것을 부끄럽게 여기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이란 해군은 협정이 발표되기 몇 시간 전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라이베리아 선적 유조선을 나포했다 5시간 만에 풀어줬다. 이란은 지난해 7월 영국 유조선을 일시 억류했고, 최근 미군 항공모함 실물 크기 모형을 타격 훈련하는 모습을 공개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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