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위상 ‘흔들’…지지율 위험 수준까지 추락, 돌파구는?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11일 17시 47분


코멘트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흔들리고 있다. 2012년 12월 재집권 이후 줄곧 ‘강한 아베’의 면모를 보이면서 ‘아베 1강’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근래에는 자민당과 내각에서 아베 총리의 ‘말발’이 제대로 먹히지 않고 있다. 아베 총리의 최대 강점인 경제는 위축됐고, 외교에서도 성과를 내지 못한다. 지지율은 위험 수준까지 떨어졌다. 일본 언론에서는 ‘약체화’ ‘정권 말기 현상’ 등 표현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국민들로부터 차기 총리 후보 1순위로 꼽히는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자민당 간사장, 자민당 2인자이자 킹 메이커 역할을 하는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자민당 간사장도 목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베 총리가 조만간 승부수를 준비할 것으로 보이지만 이번에도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 예전과 달라진 아베의 위상

2월 23일 아베 총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대책본부회의를 주재하면서 ‘아비간’이라는 제품명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항인플루엔자 약인 아비간이 코로나19 치료약으로 주목된다는 것이다. 요코하마항에 정박한 크루즈선에서 확진자가 잇따라 나오고, 도쿄올림픽 개최가 불투명한 상태여서 아베 총리로서는 치료약 개발이 절실했다. 그는 지난달 4일 기자회견에서 “이번 달 중 (코로나19 치료약으로) 아비간 승인을 목표로 한다”며 시점까지 설정했다.

하지만 담당 부처인 후생노동성은 아비간을 코로나19 치료약으로 인정하는데 신중하다. 동물 실험 결과 기형아가 나올 수 있는 부작용이 보고 됐기 때문. 아사히신문은 지난달 27일 “총리 관저에서 ‘부작용은 알고 있다’고 해도 후생성이 움직이지 않고 있다”며 내부 사정을 전했다. 아베 총리의 권위가 하늘을 찌를 때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자민당 내부 사정도 녹록치 않다. 대표적 사례가 재난지원금 지급 문제였다. 아베 총리는

수입이 감소한 가정에게만 30만 엔(약 330만 원)을 지급하기를 원했지만 당 일각에서는 전체 국민에게 10만 엔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4월7일 기자회견에서 “나 같은 국회의원, 공무원은 전혀 수입이 줄지 않았다. 이런 사람들에게까지 10만 엔을 지급하다는 게 바람직한가”라고 했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불과 열흘 후 기자회견에서 “모든 개인에게 10만 엔을 지급하겠다. 혼선을 드려 죄송하다”고 말을 180도 바꿨다.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자민당 간사장과 야마구치 나쓰오(山口那津男) 공명당 대표가 선별적 30만 엔 지급에 강하게 문제제기를 하자 아베 총리가 물러섰다. 여기에 자민당의 소장파 의원들까지 이례적으로 나서 “(30만 엔 지급은) 제대로 된 정책이 아니다”며 반발했다.
● 지지율 추락에 정책 추진동력 약화

아베 총리를 뒤흔드는 주체는 일본 국민이다. 아사히신문이 지난달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 지지율은 29%로 재집권 이후 최저로 떨어졌다. 2012년 12월 실시한 집권 후 첫 조사 당시 지지율(59%)의 절반으로 떨어졌다. 최근 니혼게이자이신문과 마이니치신문 조사에서도 사상 최저 수준으로 조사됐다.

조사의 구체 항목을 보면 아베 총리에 대한 강한 불신감이 읽힌다. 이번 달 요미우리신문 여론조사에서 내각을 지지하지 않는 이유에 ‘총리를 신뢰할 수 없다’는 응답이 45%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 조사에서도 내각을 지지하지 않는 이유로 ‘지도력이 없다’는 응답이 30%로 가장 높았다.

국민들의 불신은 지난해 가을 공적인 행사인 ‘벚꽃을 보는 모임’을 아베 총리가 지역구 관리용으로 사용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시작됐다. 올해 코로나19 대응 실패와 검찰총장 후보자의 ‘내기 마작’ 낙마 등으로 불신은 갈수록 커졌다.

일본 정치권에는 암묵적인 ‘지지율 20% 룰’이 있다. 지지율이 그보다 아래로 떨어지면 국민의 신임을 받지 못한다고 판단해 총리를 교체한다. 현재 총리는 ‘위기 알람’ 격인 지지율 20%대의 지점에 서 있다.

아베 내각이 국민 신뢰를 받지 못하자 정책 추진 동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재난지원금 문제 뿐 아니라 검찰청법 개정안, 대학 입시에 민간 영어시험 성적 활용, 국어와 수학에서 서술식 문제 출제 등 아베 정권이 수 년 동안 추진한 정책들이 올해 들어 잇따라 좌초됐다. 아베 정권은 야당이 반발하고 여론조사 결과까지 나쁘면 예외 없이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기존에 볼 수 없었던 광경이다. 2015년 여름 일본 총리관저 앞에선 11개 안보 관련 법안(안보법)의 제정 및 개정에 반대하는 수만 명 규모의 시위가 연일 열렸지만 아베 정권은 그 해 9월 안보법을 국회에 통과시켰다. 당시 내각 지지율이 주춤했지만 경제정책 발표 등으로 금세 회복했다.
●‘위기관리 라인’ 실종

최근 아베 정권이 왜 약체화 됐을까. 프리랜서 정치 저널리스트 스즈키 데쓰오(鈴木哲夫) 씨는 5일 마이니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위기관리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총리관저에는 정권 전체를 지키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 아베 총리 개인을 지키는 이마이 다카야(今井尙哉) 보좌관 등 2명의 위기관리 라인이 있다. 하지만 최근 스가 라인이 배제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스가 장관은 2012년 12월 아베 총리가 재집권 했을 때부터 ‘정부 2인자’인 관방장관을 맡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 4월 말 새 연호 ‘레이와(令和)’를 발표를 계기로 ‘레이와 아저씨’로 불리며 갑자기 총리 후보로 부상하자 아베 총리와 관계가 틀어졌다는 게 스즈키 씨의 분석이다.

일본 정부가 코로나19 대책으로 내놓은 초중고교 임시 휴교 요청, 재난지원금 지급 등 정책 결정에서 스가 관방장관은 제외됐다. 아베 총리는 최측근인 이마이 보좌관을 중심으로 대책을 협의하며 스스로 전면에 나섰다. 하지만 상당수 정책들은 국민 눈높이를 맞추지 못했다. 특히 ‘아베노마스크’라고 불리는 면 마스크 지급 정책, 아베 총리가 집에서 한가롭게 강아지를 돌보고 책을 읽는 동영상 등은 강한 국민적 비판을 받았다.

공무원 조직도 위기관리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일시적으로 장관직을 맡다가 떠나는 정치인과 달리 공무원은 해당 분야에서 평생 전문지식을 쌓는다. 정치인 장관의 부족한 경험을 공무원들이 메워왔고, 그게 곧 일본의 힘이었다.

하지만 아베 정권은 2014년 총리를 보좌하는 내각관방 조직 아래 내각인사국을 신설해 공무원의 인사권을 장악했다. 그러자 공무원들이 아베 총리의 의중을 헤아려 ‘손타쿠(忖度·윗사람의 뜻을 헤아려 행동)’ 하게 됐다. 그런 공무원이 출세하는 것을 보면서 후배 공무원들도 자연스럽게 손타쿠를 익혔다.

지난해 말 ‘벚꽃을 보는 모임’을 보는 모임으로 아베 총리가 야당의 집중 공격을 받을 때 한 야당 의원이 모임 초청자 자료를 요구했다. 그러자 공무원들은 눈치껏 명부를 파기해 버렸다. 2018년 학교법인 ‘모리토모 학원’이 국유지를 헐값에 매입할 수 있도록 아베 총리 부부가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일 때 재무성은 아베 총리 부부에게 불리한 내용을 공문서에서 삭제했다.

이런 상황에서 아베 총리는 지난달 ‘검찰 간부는 63세에 정부의 심사를 거쳐 연장을 결정한다’는 특례 조항이 담긴 검찰청법 개정안을 국회 통과시키려 했다. 일본 국민들은 ‘#검찰청법 개정안에 항의합니다’는 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수백만 건 올리며 들고 일어났다. 전례 없이 연예인들까지 SNS 항의에 동참했다.
●총선 치르려니 ‘성과’ 부실

현재 아베 총리 앞에 놓인 길은 3가지다. △내년 9월 자민당 총재 임기까지 총리를 수행한 후 4연임에 도전하거나 물러나기 △조기에 총리 사퇴 △중의원 해산 및 총선 실시다.

임기를 채우려고 한다면 구심력이 떨어진 현 상태가 1년 이상 이어질 수 있고, 조기 사퇴는 불명예 퇴진이라는 오명을 안게 된다. 때문에 중의원 해산을 선택해 각종 의혹을 ‘리셋’ 할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아베 총리는 정치적 위기 때마다 ‘구두 사과 → 경제와 외교에서 성과 창출 → 중의원 해산 및 총선 대승 → 국민 신임 확보했다며 의혹 덮기’로 돌파했다. 지금도 정당 지지율을 보면 집권 자민당이 30% 내외로 제1 야당인 입헌민주당(5% 내외)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선거를 치르면 다시 자민당이 대승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 일본 정계에선 9월 중의원 해산설이 나오고 있다. 당장은 코로나19 수습에 주력해야 하므로 중의원을 해산하기에 부담이 크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 10월 쯤 내년에 도쿄올림픽을 개최할 수 있을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내년에도 도쿄올림픽을 치를 수 없다면 책임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 아베 총리로선 10월 전에 승부수를 던질 가능성이 크다.

다만 이번에도 기존 패턴처럼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장기 집권의 최대 원동력이었던 ‘경제’가 좋지 않다. 일본 경제 전문가들은 2분기(4~6월)의 국내총생산(GDP)이 연율 기준으로 전분기 대비 20% 이상 급락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초래한 ‘리먼 쇼크’ 직후였던 2009년 1분기(-17.8%)를 뛰어넘는 것으로 전후 최악이다.

외교 상황도 녹록치 않다. 올해 4월 예정이었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국빈 방일은 언제 이뤄질지 모르고, 러시아로부터 쿠릴 4개 섬(일본명 북방영토)의 일부 혹은 전부를 돌려받겠다는 계획도 진전이 없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조건 없는 대화’는 언제 이뤄질지 모르는 상태고, 한국과의 외교 관계도 틀어져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총선 때 국민들에게 제시할 ‘성과’가 잘 보이지 않는다. 아베 총리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