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코 앞인데…영국인들 “앞날 아무도 몰라”

  • 뉴시스
  • 입력 2019년 3월 12일 09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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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찬성파도 반대파도 실망감과 피로감 토로
"이민문제 때문에 찬성했지만 탈퇴과정 엉망"
"2차 국민투표 주장 나오지만…누구도 결과 장담 못해"

영국 런던을 상징하는 런던의 빅벤은 보수를 위해 시커먼 철물로 가려져 있지만 주변은 여전히 세계각지에서 온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그 사이로 양복을 입은 직장인들은 바쁜 걸음을 옮겼다.

11일(현지시간) 런던 시내에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에 관한 시위나 푯말은 의외로 찾아보기 어려웠다. EU 탈퇴에 대비해 식료품 사재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마트진열대는 갖가지 상품으로 가득 차 있다.브렉시트 예정일(29일)이 바짝 다가왔지만 영국의 일상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영국인들의 속 마음은 복잡하다. 현지에서 만난 일반 시민들은 영국의 앞날에 대해 너나할 것없이 “아무도 모른다”며 착잡한 심정을 털어놨다. 강력하게 EU 탈퇴나 잔류를 주장하기 보다는 몇년째 갈피를 잡지 못하는 정국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았다.

브렉시트를 지지했던 시민들은 국민투표를 치른지 3년 가까이 지나도록 아무 진전없이 갑론을박이 계속되는 상황에 환멸감을 드러냈다. EU에 남길 원하는 이들 역시 정부가 뚜렷한 대비책을 제시하지도, 브렉시트를 보류하지도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직장인 토머스는 “벌써 3년째 똑같은 논쟁이 반복되고 있다. 매일 비슷한 뉴스를 보는게 지겹기까지 하다. 주변사람들도다들 비슷한 생각”이라며 “이렇게 엉망진창인데 잔류를 하든, 탈퇴를 하든 솔직히 더이상 관심갖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2016년 6월 브렉시트 국민투표 당시 찬성표를 던졌다는 그는 “만약 2차 국민투표를 한다면 투표하지 않을 생각”이라며 “결국 잔류하기로 해도 이젠 상관없다. 다시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일 뿐이다. 총리 입장만 난처할 것”이라고지적했다.

또다른 직장인 줄리는 “일반인인 나는 이민문제 때문에 찬성했다. 기업가라면 다른 선택을 했을 것같기도 하다”며 “찬성하면서도 설마 탈퇴로 결정이 날까 싶었는데 현실이 됐다. 그렇지만 투표를 추진한 정부가 이렇게까지 준비가 안돼 있을지 몰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브렉시트 논란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당시 총리는 총선에서 재집권에 성공하자 핵심공약이던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밀어부쳤다. 2016년 6월 23일, 영국인들은 찬성 51.9% 대 반대 48.1%의 근소한 차이로 EU 탈퇴를 선택했다.

여론분열과 협상난항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브렉시트 찬성 측은 독립적인 이민-국경 통제의 필요성과 EU의 비효율성을 탈퇴이유로 내세웠다. 반대파는 EU 관세동맹을 떠나면 영국이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입을 수 있으며, 안보협력 역시 훼손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캐머런 총리가 브렉시트 가결의 책임을 지고 사퇴한 이후 취임한 테리사 메이 총리는 2019년 3월 29일을 브렉시트 일자로 설정하고 EU와의 협상을 진행해왔다. 하지만 EU와 영국 의회 찬반파 모두를 만족시킬 합의안이 도출되지 않으면서 ‘노딜(no deal. 협상결렬) 브렉시트’ 우려가 커져가고 있다.

EU 탈퇴를 줄곧 반대했다는 대학생 헨리는 “어차피 떠나야 한다면 메이총리가 마련한 합의안이 그나마 영국을 덜 망가뜨리는 방향인 것 같다”며 “이 모든 과정이 미쳐 돌아가고 있다. 누구도 결과를 장담할 수없다”고 말했다.

그는“일이 흐지부지되면서 관심을 잃은 이들이 많다.가끔 큰 집회가 열리긴 하지만 매우 강경한 사람들이나 아직도 강하게 찬성이나 반대를 외치고 있을 것”이라며 “언론에서 과장된 보도를 해대니 사람들이 더욱 넌더리를 내는 것같다”고지적했다.

그는 “탈퇴를 미루고 2차투표를 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투표를 다시하면 결과가 뒤집힐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저번 국민투표 때도 여론조사에서 잔류가 우세하다고 떠들었지만 결과를 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또 다른 EU 잔류파 시민 마이크는 “뭐라고 이야기하기가 매우 조심스럽다. 신만이 어떻게 될지 알 것”이라며 “예정된 날짜가 한달도 채 안남았는데 제대로 된 준비없이 정말로 떠나는건 아닌지 우려되긴 한다”고 말했다.

북아일랜드 출신이라는 짐은 브렉시트 찬반여부를 밝히지 않은 채 “뭐가 어떻게 될지 지켜봐야겠지만 혹시라도 나중에여행을 다닐 때 제약이 있을까봐 걱정”이라며 “아일랜드 여권을 신청하려고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북아일랜드 출생자는 영국과 아일랜드 이중국적을 보유할 수 있다. 북아일랜드 신구교도 유혈분쟁을 끝내기 위해 1998년 체결된 평화협정 때문이다. 브렉시트로 EU 회원국인 아일랜드와 영국영토인 북아일랜드간 국경통제가 재개되면 북아일랜드 내 긴장도 다시 높아질 수 있다.

오는 12~14일 의회투표는 브렉시트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첫날 투표에서 메이총리가 EU와 새로 합의한 방안이 승인되면 영국은 이달 29일 예정대로 EU를 탈퇴한다. 합의안이 부결될 경우 이어지는 투표결과에 따라 노딜 브렉시트를 강행할 수도, 브렉시트 자체를 연기할 수도 있다.

대학원생 로즈는 “예전엔 사람들을 만나면 정치 얘기를 자연스럽게 했는데 이제는 그런 대화를 피하게 됐다”며 “워낙 이견이 심하니 말을 꺼내기가 꺼려진다. 브렉시트 얘기가 나오면 말을 돌리거나 자리를 뜬다”고 말했다.

시민 메리 역시 “나도 젊은시절 정치를 공부했고 살면서 온갖 일들을 지켜봤지만 이번에는 어떻게 될지 도무지 모르겠다”며 기자에게 되물었다. “당신이 보기에 앞으로 영국은 어떻게 될 것 같은가?”


【런던=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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