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개방 뒤로가면 안돼”, 덩샤오핑 장남의 돌직구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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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6일 연설 뒤늦게 알려져, “잘난 체하면 안돼… 분수 알아야”
시진핑 대외정책-리더십 우회비판… 中당국 한달 넘게 보도통제

“우리는 자신의 분수를 알아야 한다(知道自己的分量). 함부로 잘난 체하면(妄自尊大) 안 된다. 또한 함부로 자신을 낮춰서도(妄自菲薄) 안 된다.”

지난달 16일 중국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 중국장애인연맹 제7차 전국대표대회에서 명예주석에 재선된 덩푸팡(鄧樸方·74·사진)은 연설을 통해 미국에 맞서려는 현 정부의 대외정책을 에둘러 비판했다. 그는 중국 개혁개방의 총설계사로 불리는 덩샤오핑(鄧小平)의 장남이다.

덩푸팡은 이날 “1978년 덩샤오핑 동지를 수뇌로 하는 전(前) 세대는 개혁개방의 과정을 시작했다. 위대한 혁명과 사상해방, 실사구시로 질곡을 벗어나 울타리를 뛰어넘었다”고 강조했다. “분수를 알아야 한다”는 일갈은 “우리는 반드시 이런 실사구시의 태도를 취해야 하고 분명한 사고 능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지적 뒤에 이어졌다. 덩푸팡은 “(정책을) 국가 상황에 입각해 (추진하는 것을) 견지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그는 “국제사회의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있다. (이런 때) 우리는 평화 발전의 방향을 견지해야 한다. 협력적이고 윈윈 하는 국제 환경을 견지해야 한다”며 연설을 마무리했다.

한참 뒤에야 알려진 덩푸팡의 발언은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를 떠올리게 한다. 힘을 드러내기보다는 힘을 기르면서 때를 기다린다는 도광양회는 경제발전의 내실에 집중하고 미국과 충돌을 피하는 정책 사상으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집권 전까지 유지돼 왔다. 2012년 시 주석 집권 이후 중국은 전방위 세력 확장을 통해 미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다. 덩푸팡의 연설은 시 주석의 이런 외교·군사 전략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그는 “개혁개방이 사회구조와 가치관에 근본적이고 역사적이고 되돌릴 수 없는 변화를 가져왔다”며 “우리는 개혁개방 노선을 이를 악물고 계속 가야 한다. 절대 퇴행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마오쩌둥(毛澤東) 시대에 우리는 문화대혁명을 겪었다. 신뢰와 도덕성을 잃었다. 문화와 사회는 혼란스러웠다”고 비판했다.

덩푸팡의 발언은 개인숭배를 금지한 덩샤오핑의 정신이 후퇴하고 마오쩌둥 시대로 회귀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나왔다. 올해가 개혁개방 40주년임에도 중국에서 민영기업이 국영기업에 밀리는 ‘국진민퇴(國進民退)’ 논란이 벌어지면서 개혁개방 정신이 약화되고 있다는 지적도 함께 나오는 상황이다. 덩샤오핑이 마오쩌둥 시대를 교훈 삼아 국가주석의 임기 제한을 만들었지만 시 주석은 올해 상반기 헌법 개정을 통해 이 제한을 폐지했다. 덩푸팡은 연설에서 “(덩)샤오핑 동지는 일찍이 말했다”는 표현을 수차례 반복했다. 덩샤오핑의 권위에 기대 현재 중국이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노선에서 멀어지고 있음을 비판하려 한 의도로 풀이된다.

시 주석의 리더십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그의 연설에 최근 공산당 간부들과 정부 관료들이 공개 석상에서 빠짐없이 거론하는 ‘시진핑 사상’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연설 이틀 전인 9월 14일 중국장애인연맹 제7차 전국대표대회 개막식에 시 주석을 포함한 상무위원(최고 지도부) 7명이 모두 참석할 정도로 공산당의 관심이 높은 행사였다. 덩푸팡은 1968년 문화대혁명 때 홍위병의 협박에 시달리다가 베이징의 한 건물 3층에서 투신해 하반신이 마비됐다.

이런 그가 시 주석을 비판하는 뉘앙스의 연설을 하자 이 연설 내용은 보도 통제 대상이 됐다. 어떤 중국 매체도 보도하지 않았다. 2013년 같은 대회에서 한 덩푸팡의 연설이 10일 만에 공개된 것과 딴판이었다. 그러다 1개월여가 지난 뒤 시 주석이 광둥(廣東)성을 방문해 “개혁개방의 새로운 출발”을 외치던 이달 24일경부터 중국 인터넷에 덩푸팡의 연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덩푸팡의 발언은 최근 잇따라 중국 관료 지식인들로부터 제기되는, 시진핑 시대에 대한 비판 움직임과 맞물려 눈길을 끈다. 자유주의 경제학자인 장웨이잉(張維迎) 베이징대 교수는 최근 강연에서 “강력한 일당 통치, 막강한 국유 기업 등을 통해 중국이 급속히 발전했다는 ‘중국 모델론’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고 중국의 미래 발전에도 해롭다”고 비판했다.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개혁개방#덩샤오핑 장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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