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론’ 대북 초강경파 볼턴, 그는 아직 ‘꺼진 불’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8일 16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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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제외한 다른 이슈에서 여전히 트럼프의 두터운 신임 받아

트럼프, 대중연설에서 “볼턴은 일을 대단히 잘 하고 있다”고 극찬

‘북-미 대화’에서 배제됐던 볼턴, 싱가포르 수행단에 막판 탑승

트럼프가 회담 결과 만족하지 못할 수록, 볼턴의 역할 공간 커질 듯

지난달 22일 한미정상회담이 열려 즉석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던 백악관 오벌오피스(집무실) 모습.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맨 뒷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먼 발치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바라보고 있다.
지난달 22일 한미정상회담이 열려 즉석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던 백악관 오벌오피스(집무실) 모습.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맨 뒷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먼 발치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바라보고 있다.


“존 볼턴은 어디 있나요? 위대한(great) 존 볼턴! 사람들은 그가 너무 험악하고 터프해 내가 직접 자제시켜야 할 정도라고 하더군요. 꽤나 굉장한 일입니다. 일을 대단히 잘 하고 있습니다(doing a great job).”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대중연설을 하던 도중 대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찾았다. 그러더니 이 같이 그에 대한 공개적인 칭찬을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볼턴의 딸이 테네시에 살고 있다. 기쁜 일이다”라며 그의 가족을 언급하는 친밀감을 보이기도 했다.

최근 미국 언론은 이 연설이 있었던 지난달 29일 무렵 트럼프 대통령과 볼턴 보좌관의 관계가 좋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북-미 정상회담은 볼턴 보좌관의 ‘리비아식 북핵 해법(선 비핵화, 후 보상)’ 논란에 휩싸여 좌초 위기를 겪은 뒤였다. CNN은 이를 두고 소식통을 인용해 “볼턴 보좌관은 회담을 깰 의도로 ‘리비아 모델’을 언급했던 것 같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대해 ‘격분’했다”고 보도했다.

의견 충돌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바로 그 시기에 볼턴을 “위대하다”라고 극찬한 트럼프 대통령의 속내는 뭘까. 볼턴 보좌관이 북-미 회담 국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얻지 못했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다른 의제들을 고리삼아 백악관에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볼턴은 여전한 트럼프의 ‘효자손’

‘위대한 존 볼턴’이란 트럼프 대통령의 극찬은 주이스라엘 미국대사관을 지난달 14일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한 것을 자찬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었다. 국제사회의 반발에도 대사관 이전이 끝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자 그 공로의 일부를 백악관 내의 대표적인 친(親)이스라엘 인물인 볼턴 보좌관에게 돌린 것이다.

볼턴 보좌관은 북-미 회담을 둘러싼 갈등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효자손’ 역할을 여전히 수행하고 있다. 그는 무엇보다 이란 핵 합의를 파기하는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찰떡궁합’을 과시했다. 볼턴 보좌관은 백악관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란 핵 합의 파기가 트럼프 대통령의 최우선순위 정책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을 받았다. 그러더니 합의 파기를 반대한 허버트 맥매스터 전 보좌관을 대체해 백악관에 입성하자마자 ‘물 만난 고기’처럼 활발한 활동에 들어갔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합의 파기에 찬성해온 볼턴이) 이를 논의하기 위한 국가안보회의(NSC) 확대회의를 한 번도 소집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라늄 농축 중단과 탄도 미사일 개발 금지 등 강경한 조건 12개를 내세우며 이란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에서 ‘이란 정권교체’까지도 공공연하게 거론하는 볼턴 보좌관은 이란을 긴장시킬 수 있는 최상의 ‘압박 카드’다.

친(親)대만·반(反)중국 성향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볼턴 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을 괴롭히기에도 ‘안성맞춤 옵션’이다. CNBC는 지난달 22일 “미-중 무역협상 국면에 존 볼턴이 합류했다”며 “무역 협상에 그가 관여한 것은 국가안보보좌관 직책의 권한이 넓어지고 있음을 상징한다”라고 분석했다. 볼턴 보좌관은 올 3월 “중국에 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좋은 ‘충격 요법’이 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싱가포르서 ‘숨죽이며 뛰어들 기회 엿보는’ 볼턴

트럼프 대통령은 볼턴 보좌관을 칭찬한 지난달 같은 연설에서 그에게 “좋은 협상 의제(pretty good negotiations)들이 곧 있을 테니 좀 쉬어두는 게 좋을 거다”라고 말했다. 정확히 어떤 협상 의제를 뜻하는지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북-미 정상회담에서 볼턴 보좌관의 역할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님을 시사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소외론’에도 불구하고 볼턴 보좌관이 싱가포르로 향하는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 수행단에 포함된 것은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 로이터통신도 7일 당국자들을 인용해 “볼턴은 여전히 ‘키플레이어’다”라고 전했다. 북한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의제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점수를 딴 볼턴 보좌관이 북-미 협상에서도 목소리를 키우기 위해 기회를 노리고 있는 형국인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7일 기자회견에서 북-미 회담과 관련해 “이미 한 차례 (회담 취소를) 해 본 경험이 있다”며 “(회담이 잘 진행되지 않을 경우) 협상 테이블을 떠날 준비가 돼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미 수 차례 ‘회담 파기’를 조언했던 볼턴 보좌관 입장에선 자신이 활동할 여지가 남아 있음을 시사하는 발언이다.

이와 관련해 북한과 반관반민(1.5트랙) 대화를 주도해 온 수전 디매지오 뉴아메리카재단 선임연구원은 4일 38노스 주최 기자간담회에서 “협상이 잘 진척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볼턴이 언제든 뛰어들 준비를 하며 숨죽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백악관’에 소속된 참모들의 행보를 예측하는 것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7일 볼턴 보좌관의 역할이 사실상 예측불허라고 분석했다. 이 매체는 트럼프 대통령과 볼턴 보좌관의 관계를 ‘좌충우돌(on-again-off-again)’이라고 설명하며 “볼턴 보좌관이 싱가포르에서 어떤 역할을 맡게 될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라고 평가했다.

한기재 기자 recor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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