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하층노동자 퇴거 반대’ 시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6일 03시 00분


코멘트

中정부, SNS 게시물 삭제에도 반대 시민들 “나도 지울건가”
항의하는 글-사진 계속 올려

“나는 내가 디돤런커우(低端人口)라는 걸 인정한다. 이제 나를 지울 것인가?”

광둥(廣東)성에 거주하는 한 이용자는 1일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 이런 글을 올렸다. 중국 정부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디돤런커우가 포함된 게시물들을 삭제하자 이에 항의하는 표시로 올린 것이다. 이 이용자는 3일에는 “머지않은 미래에 당신들이 디돤런커우로 몰려 정리당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글도 올렸다.

지방에서 일자리를 찾아 베이징(北京)에 온 저학력·저소득 노동자들을 가리키는 디돤런커우가 중국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는 키워드로 떠올랐다. 발단은 지난달 18일 외지에서 온 저소득층이 많이 사는 베이징시 다싱(大興)구 시훙먼(西紅門)의 임대건물에서 일어난 화재로 19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측근인 차이치(蔡奇) 베이징시 서기는 한겨울에 이들이 사는 건물들의 일제 철거와 퇴거 명령을 내렸다. 베이징시가 아예 디돤런커우를 베이징에서 쫓아내려 한다는 얘기가 돌면서 차별 받아온 소외계층인 이들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것이다.

당국의 검열과 삭제에도 이들의 퇴거에 반대하는 이용자들이 “나도 디돤런커우”라는 취지의 글을 계속 올리고 있다. 하얼빈(哈爾濱)에 사는 이용자는 디돤런커우가 포함된 게시물이 관련 법규 위반으로 삭제됐다는 웨이보 관리자의 통지를 캡처해 올렸다. 통지가 “존경하는 이용자께”라고 시작하는 점을 비꼬아 “존경하는 이용자(라는 표현)는 황송하다. 나를 디돤런커우라고 불러 달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많은 이용자가 디돤런커우 삭제 통지 캡처 사진을 올리고 있다. 항저우(杭州)에 거주하는 이용자는 4일 “디돤런커우 퇴거가 끝났나? 그들이 얼마나 추울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담았다.

미국의소리(VOA) 중문판은 5일 철거 현장을 담은 영상을 공개했다. 철거 현장의 한 주민은 ‘디돤런커우라는 표현을 들어본 적 있는가’라는 질문에 “무엇이 디돤런커우인가. 모두 중국인이다. 무엇을 하층이라고, 무엇을 상층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돈을 얼마나 버는가로 하층과 상층을 구분하면 안 된다. 인간은 높고 낮은 귀천의 구분이 없다. 그렇게 평가할 수 없다”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퇴거 대상 주민들은 “물도 전기도 끊긴 지 한참 됐다. 밥을 할 곳도, 먹을 곳도 없다. 살 곳을 찾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쑨(孫)모 씨는 “국가가 (내가 입은) 피해를 배상할 수 있겠나. 철거가 법의 범위를 넘어섰다”며 “부자는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진다”고 일침을 놓았다.

5일 홍콩 밍(明)보에 따르면 칭화대 학생 15명이 철거 지역에서 ‘정부가 폭력을 사용했는지, 새로 살 곳을 마련해 줬는지’ 등을 조사하자 공안이 이들을 감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베이징#중국#하층노동자#퇴거#반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