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해결 못하는 유럽 정치… 분노한 노동자 극우-극좌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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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이전-해고 막을 뾰족한 대책 없어
佛 올랑드, 높은 실업률에 재선 포기… 마크롱, 월풀이전에 “해법없다” 고백
정부, 법인세 감면 등 투자 유치 안간힘

“누가 무책임하게 행동하는지, 예상 가능한 문제와 장기적인 해법도 내놓지 못하고 태클을 걸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23일 독일 전기전자기업인 지멘스의 조 케저 회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제1야당인 중도좌파 사민당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지멘스는 이보다 한 주 전에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확대하기 위해 화석연료 부문 근로자를 중심으로 전 세계 6900명을 감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마르틴 슐츠 사민당 대표는 공개적으로 “63억 유로(약 8조1279억 원)의 이익을 내는 회사가 6900명의 직원을 해고한다는 건 반사회적인 행위”라며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면서 정부를 향해 “지멘스와 맺고 있는 많은 정부 계약을 줄인다고 압박해서라도 해고를 막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자 케저 회장은 “세금으로만 200억 유로를 내고 있는 기업을 향한 무책임한 비판”이라며 사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지멘스와 사민당과의 이례적인 논쟁은 실업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별 카드가 없는 무기력한 정치권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전 세계적으로 실업률은 정권의 운명을 좌우하는 지표다. 프랑수아 올랑드 전 프랑스 대통령은 임기 내내 두 자릿수 실업률에 시달리다 “임기 내 한 자릿수로 내리지 못하면 재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결국 출마하지 못했다.

4월 프랑스 대선 2차 투표를 앞두고 가장 논란이 된 사건은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의 고향 아미앵에 있던 미국계 가전업체 월풀 공장의 폴란드 이전이었다. 286명의 노동자가 실업 위기에 처하자 마크롱 후보와 국민전선 마린 르펜 후보가 같은 날 방문했다. 르펜 후보는 당시 “내가 대통령이 되면 공장 이전을 막겠다”고 말해 노동자들의 환호를 받았다. 반면 마크롱 후보는 “기적 같은 해법은 없다. 공장 이전을 막을 수도 없지만 정리해고를 당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솔직하게 말했지만 야유를 받았다.

마크롱 대통령 당선 이후 월풀 공장의 폴란드 이전 계획은 바뀌지 않은 대신 다른 프랑스 기업이 공장을 일부 인수해 이 지역 노동자 대부분을 재고용하기로 했다. 지난달 월풀 공장을 다시 방문한 마크롱 대통령은 “노동자 재고용은 반가운 소식”이라는 말 외에 할 말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유럽 정부에서는 법인세를 깎아주고 규제를 풀어 기업 투자를 유치하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아일랜드는 지난해 8월 애플로부터 체납세 130억 유로(약 16조7700억 원)를 받으라는 유럽연합(EU) 판결 이후에도 미적거리고 있다. 아일랜드 정부는 거액의 세금을 받는 것보다 기업 유치로 실업률을 낮추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무기력한 정치권에 분노한 노동계층의 표심은 그동안 사회 평등을 지향한 사회민주 계열에서 극단적인 극우나 극좌로 향하고 있다. 한때 프랑스 최대 철강 지역이던 북부 하이얀지는 최근 실업률이 75%까지 치솟아 노동자 4분의 1이 국경을 넘어 룩셈부르크로 출근하는 처지에 놓였다. 늘 사회당이 1, 2위를 다투던 대선에서 올해 사회당 후보는 5위로 처졌고 극우와 극좌 후보가 1, 2위를 차지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실업#유럽정치#법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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