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서영아]분열하는 미국, 일치단결 일본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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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아 도쿄 특파원
서영아 도쿄 특파원
 “어, 예상외로 경합이네.”

 미국 대통령 선거 개표가 한창이던 9일 오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관저를 찾은 중의원 의원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로부터 몇 시간 뒤 판세가 도널드 트럼프로 기울자 그는 외교담당 보좌관에게 바로 미국 출장을 지시하고 트럼프 진영에 트럼프와의 통화를 신청했다.

 아베는 대선전이 한창이던 9월에만 해도 뉴욕에서 힐러리 클린턴만 따로 만나는 등 노골적으로 클린턴 당선을 전제로 움직였다. 트럼프 당선인과의 발 빠른 통화는 물론이고 아베 총리의 즉석 제안으로 17일 뉴욕 회담이 확정되자 외무성에서는 “아베 총리와 트럼프 간에 주파수가 잘 맞았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한 주간지는 “트럼프 당선이 일본에는 기회”라며 “아베-트럼프는 1980년대 ‘론-야스’처럼 좋은 사이가 될 수 있다”는 성급한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1980년대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과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일본 총리는 미일관계에 ‘밀월’이란 표현이 붙을 정도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으로 미국의 분열상에 지구촌의 관심이 쏠린 가운데 이변에 대처하는 일본 사회의 일치단결하는 모습이 돋보인다. 일본 사회 대부분이 클린턴 당선을 예상했던 터라 충격파는 더욱 컸다. 하지만 일본의 강점은 일말의 가능성에 대한 대처를 반드시 해둔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외무성이 만약에 대비해 트럼프 진영과의 네트워크를 갖춰놓은 덕에 아베-트럼프의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었다.

 그리고 정부와 기업, 학자와 언론까지 일본의 국익을 위해 똘똘 뭉친다. 학계와 재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미일경제연구회 2016’이 11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상에게 향후 미일 간 경제 협력의 포인트를 담은 제언을 전달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연구회는 미국에서 새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 대비해 9월 외무성 산하에 설립됐지만 오랜 논의를 거친 듯 대선 결과가 나오자마자 양국 간 경제협력 방향을 제시했다.

 일본의 외교안보 전문가들도 미국의 새 정권에 줄 제언을 준비하고 있다. 안전보장의 축을 아시아로 옮기는 리밸런싱(rebalancing·재균형) 정책을 이어갈 것을 촉구하고 미일동맹 역할이나 연대의 방식, 대(對)중국 정책을 구체적으로 내놓을 방침이다. ‘제2의 아미티지-나이 보고서’라고도 불리는 이 제언은 미일 간 정재계 요인들의 연례 국제회의인 ‘후지산회의’ 멤버들이 맡았다. 6월 초 도쿄에서 열린 후지산회의에는 미국에서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무부 부장관, 커트 캠벨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미셸 플러노이 전 국방차관,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 등 80여 명이 왔다. 일본 측에서는 기업과 싱크탱크 관계자는 물론이고 전직 외상과 방위상이 거의 모두 참석했다. 아베 총리도 리셉션에 나왔다. 미 대선을 앞두고 향후 미일 관계를 위해 미리 각계각층이 지혜를 모아온 것이다.

 선거 다음 날인 10일 산케이신문은 1면에 “이 기회에 자주국방을 해야 한다. 평화헌법 같은 것을 논할 목가(牧歌)적인 시대는 갔다”고 주장하는 편집국장 칼럼을 실었다. 며칠 뒤에는 아사히신문에 “일본도 자체 나침반을 가져야 한다”는 인터뷰가 실렸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대해선 미국 없이 일본이 주도하면 된다는 주장도 나오는 판국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만에 하나 동아시아에서 발을 뺌으로써 힘의 공백이 생긴다면 일본은 동북아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나설 것이다. 중국 또한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할 게 분명하다. 한반도를 둘러싼 환경은 숨 가쁘게 긴박하게 돌아가는데 한국에선 리더가 보이지 않는다. 답답할 따름이다.
 
서영아 도쿄 특파원 sya@donga.com
#트럼프 행정부#미국 대통령 선거#일본#외교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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